명나라의 특급 첩보원인 사세용 장군은 누구?
사세용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일본에 파견한 첩보원이라 합니다. 그는 명나라 황제 직속의 정보기관인 금의위 소속 무관입니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조서을 돕기 위해 첩보원으로 발탁되어 일본이 기밀정보 수집과 일본군이 동향을 파악하였습니다. 일본이 조선분할통치안을 명군에 제시했는데, 사세용이 일본의 의도와 협정 내용을 폭로하여 협상 결렬과 조선의 분단 위기를 저지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사쓰마 번에 잠입하여 현지 중국 귀화인들의 이용해 일본의 군사 동향을 수집하여 명에 보고하였습니다. 즉, 그는 명나라 특급 첩보원으로 조선 분단 위기를 막는데 기여했으며, 일본내에서 정보원 네트워크 설치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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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 이미륵 작가님은요,,
이미륵은 1899년 3월 8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950년 3월 20일 독일 뮌휀 교외 그래펠핑에서 51세 나이에 위암으로 사망하였습니다. 그는 천석꾼 지주 이동빈 가문의 3대 독자로 태어났는데, 어머니가 미륵불에게 기도하여 얻은 아들이라 미륵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그는 18세의 나이로 경성의전에 합격하였으며,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수배당하다가 1920년 압록강을 건너 상하이를 거쳐 독일로 망명했습니다. 그리고 독일에서 47세 나이에 어린시절과 고향, 가족에 대한 향수를 담은 자서전적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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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리와 궁녀는 어떤 점에서 달랐나요?
궁궐에서 궁녀는 궁중의 모든 여인들의 총칭이지만 일반적으로 상궁과 나인들만 의미합니다. 궁녀는 가장 높은 관품인 정5품의 제조상궁 이하 정9품 주궁에 이르기 까지 관품을 제공받았습니다. 나인은 상궁 아래에서 시중을 드는 일반 궁녀를 말합니다. 이들은 왕, 왕비, 후궁의 시중을 들고, 왕의 침전 관리, 왕실 문서 보물 관리, 왕실 의례를 주관합니다.무수리는 몽골어로 '소녀'를 말하며, 궁궐에서 청소나 세숫물 등 허드렛을 하는 여자 노비를 말합니다. 천민 신분으로 궁궐 청소, 물 긷기, 불때기 등의 잡일을 합니다. 따라서 궁녀는 내명부 소속으로 왕실의 공식 시녀이며, 무수리는 노비입니다. 하는 일도 궁녀는 왕과 왕비를 시중을 드는 고급 업무, 무수리는 허드렛일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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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령 당시에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었나요?
1895년 을미개혁으로 급진적인 여러 개혁이 단행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단발령입니다. 단발령은 순검이 거리를 순회하다 단속에 걸리면 강제로 상투를 자르는 방식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신분에 관계없이 잘라버리는 방식이었습니다.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단발령을 공포했습니다. 단발을 하지 않은 관리는 파면하고, 따라서 관청에서 단발하지 않은 경우는 직무 수행이 불가능했으며, 관공서 출입도 불가능했습니다. 최익현 선생 등 강력하게 저항하기도 했으며, 의병 저항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강압적인 시행으로 반발이 컸으며, 아관파천 이후 중단되면서 개혁 자체가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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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의 무덤은 중국이 왜 발굴을 중지 했나요?
진시황 무덤은 현재 발굴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그 아유는 유물 보존 기술의 한계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병마용 발굴 당시 채색이 발굴 직후 몇분에서 몇시간 만에 벗겨지고, 변색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즉 현재 기술로는 유물이 원래 상태를 완벽하게 보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수은 문제입니다. <사기>에 따르면 무덤 안에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었다고 기록이 있습니다. 수은 증가는 작업자에게 치명적 손실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도굴 방지를 위한 자동 발사 장치, 복잡한 지하 구조 등으로 불굴의 어려움도 있습니다.중국 정부는 앞으로 30~50년간 발굴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는 보호 우선, 과학 연구, 적절한 개발의 원칙을 바탕으로 향후 보전 기술이 발전할 때 기다리겠다는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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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녕왕릉이 한국사에서 가지는 의미는 뭔가요?
백제 시대의 고분 가운데 무령왕릉은 유일하게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는 왕릉입니다. 무령왕릉은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배수로 공사중에 1971년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무덤에서 29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무령왕릉은 삼국 시대 왕릉 무덤 가운데 주인이 명확히 확인된 유일한 사례입니다. 무덤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지석을 통해 무령왕의 사망, 안장, 왕비의 사망과 안장 시기를 정확하게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굴되지 않은 유물이 1500년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백제 문화의 찬란한 문명과 국제적 위상을 확인시켜줍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는데, 발견 후 불과 14일만에 발굴을 졸속으로 종료하여 충분한 연구와 기록이 부족하고, 물에 잠긴 유물들이 급격히 산화되며 일부 손상과 보존 처리가 미흡하였습니다. 또한 발굴 전후 연구가 미흡해 학술적 가치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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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역사에서 사람들에게 돈이나 물건을 빌린 뒤 갚지 않은 인물은 누구인가요?
조선시대에도 채무를 지고 떼어먹는 사례는 많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역사적으로 유명인 가운데, 인조반정으로 공신이었던 김자점은 고리대금으로 백성들을 착취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왕족 가운데 숙종 때 평해군은 채무자가 도마가자 그 아내를 잡아들여 한달 동안 채찍질해 죽였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조 때 안동에 사는 사족 김성암은 사채를 갚지 않아 채권자에게 몽둥이로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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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어떻게 도시 국가에서 지중해와 유럽을 전체를 지배한 나라가 되었나오?
로마는 티베르 강변의 작은 언덕에서 출발하엿지만 지중해와 유럽을 수세기 동안 지배한 국가입니다. 로마가 세계 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인구가 많아서가 아닙니다. 기원전 4세기 로마의 인구는 불과 10~20만명 정도로 카르타고, 그리스 국가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적었습니다. 하지만 로마는 동맹국들의 병력을 포함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로마가 세계 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효율적인 정치 체제입니다. 로마의 공화정 체제는 정치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군단 조직을 체계적으로 운영하였으며, 전장에서는 밀집부대 전술, 공병대 활용, 삼중 전열 등의 효율적인 전술로 적을 압도했습니다. 또한 로마는 도로망을 제국 구석까지 연결하여 전시에는 병력 투입, 평시에는 상업과 행정 활성화에 활용했습니다. 그 외에도 도시, 수로, 목욕탕, 극장 등의 공공 시설을 짜임새 있게 운용하였습니다. 이상과 같이 로마는 인정적인 정치, 체계적인 군사 조직과 전술, 도로 인프라 등과 동맹 체제의 활용, 개방적인 동화 정책을 활용하여 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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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은 왜 경국대전을 완성해서 반포했나요?
조선시대는 유교적 법치주의 국가로 평가하는데 있어 경국대전은 매우 중요한 근거로 작용합니다. 세조는 정변을 통해 즉위한 직후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률 체계 일원화가 필요했으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햇습니다. 그리고 성종 16년(1485)에 최종 완성하게 됩니다.경국대전이 성종 때 완성된 이유는 세조 때부터 약 30 년에 걸친 편찬 작업의 축적과 성종의 정치적 안정, 법치주의 확립 의지가 결합되었기 때문에 완성된 것입니다. 경국대전의 완성은 국가 운영의 근본 원칙 정립과 성리학적 유교 국가로서의 법치주의를 확립한 것입니다. 또한 이후 500년간 조선이 지속될 수 있는 안정적 통치 기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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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상황을 보면 정말 3차 세계 대전이 발생 할 것 같습니다?
원하지 않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국제적 위기감은 전쟁을 불러옵니다.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교착상태로 지속되고, 미중 패권 경쟁, 한반도와 중동 분쟁으로 갈등 요소가 상존합니다. 게다가 서방 5개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0%이상이 5년내 3차 대전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하였다고 합니다. 비록 전문가들도 3차 대전의 발생 가능성은 낮지만 위험은 존재한다고 봅니다. 발생 가능성이 낮은 이유로는 핵 억제력, 경제 상호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라 봅니다. 반면 오판과 계산 착오, 지역 갈등의 연쇄 확산이 위험 요소로 분석되며, 푸틴과 트럼프 같은 지도도자들이 변수가 위험 요소라 분석하고 있습니다. 즉 3차 대전은 피할 수 있는 위기이지만 현재와 같은 긴장 상태가 지속된다면 국지전 연쇄 위험은 계속 존재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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