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우리는 어떤 나라의 도움을 받았나요?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은 곧바로 안전보장이사회를 열어 유엔군 창설을 결의했습니다. 당시 유엔 참전국으로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터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그리스, 필리핀, 태국,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6개국입니다. 그 외에도 의료지원국, 물자 지원국, 전후복구국 등 여러 나라가 우리나라를 지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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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백자에 그려진 그림들은 주로 어떤 것이 대상이 되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나요?
조선백자는 16세기 조선 중기 순수백자, 17세기 이후 청화백자, 철사백자, 진사백자 등으로 발전했습니다. 순수백자는 절제와 청결함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화려한 장식이 없어도 그 자체에 품격을 드러냅니다. 이는 선비의 기상과 유교적 가치관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청화백자는 값비싼 코발트 안료로 푸른 무늬를 그리는 기법입니다. 품격과 장식성을 보여주는 백자로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로 상류층을 중심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백자에 그려진 장식에도 당대 사람들의 바람과 가치관이 담겨있습니다. 매화, 난초, 대나무, 국화는 절개와 고결함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학, 물고기, 박쥐, 연꽃, 모란은 장수와 다산, 부귀를 의미합니다. 용과 봉황, 구름은 주로 왕실과 같은 권위를 상징하며, 산수와 소나무, 바위는 이상향이나 장수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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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응은 조선시대에 화가도 했었나요??
흥선대원군인 이하응은 당대 서화에 능햇/다고 합니다. 이하응은 추사 김정희 계열의 서화 전통을 익히고 예서와 묵란에 능했다고 합니다. 이하응은 세도정치 시기 세력 없이 칩거하거나 파락호처럼 보이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시에도 서화 수련과 창작을 이어간 것으로 이해됩니다. 특히 묵란도 수준은 매우 높았습니다. 필치와 구도가 자기 색깔이 있는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따라서 서화에 능한 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즉, 이하응은 “대원군”으로 더 유명하지만, 예술적으로도 꽤 진짜였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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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신(하나님이나 하느님)은 있었을 까요?
하나님, 즉 절대자는 종교적 믿음과 과학적 해석으로 구분하여 판단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 믿음 측면에서는 신은 처음부터 있었고,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에도 있다고 봅니다. 반대로 무신론자는 신을 인간이 만든 개념으로 보며 믿지 않습니다. 과학적으로 현재까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다면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증명할 수 없습니다. AI는 점점 더 예측, 판단, 안내 같은 기능을 맡게 되면서 신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스스로 존재 이유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AI도 인간이 만든 도구입니다.
4.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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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은 왕위찬탈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는 어떻다고 평가받나요?
세조는 계유정난이라는 과격한 방법을 통해 조카 단종을 제거하고 즉위한 국왕입니다. 하지만 국정 운영측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세조는 왕권을 강하게 하고 육조직계제를 통해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였습니다. 의정부 중심보다 임금 중심의 통치를 강화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조는 경국대전 편찬을 본격화하여 유교적 법치 통치의 기반을 확립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을 위해서도 보법을 통해 군역을 정비하고, 직전법을 시행하여 조세제도를 개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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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소문은 직급에 상관없이 올릴 수 있었나요?
상소는 유생, 즉 양반들이 왕에게 건의하는 문서입니다. 한자로 글을 써야 했기 때문에 실제로 글을 쓸 수 있는 유생들에게만 국한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주로 사대부, 관료, 유생들이 활용한 것입니다.상소를 올리는 사람은 반드시 관료만은 아닙니다. 재야 유생들도 상소가 가능했습니다. 상소가 막히면 복합상소, 지부상소처럼 목숨을 걸고 올리는 방식도 있어습니다.백성들은 소청, 신문고, 상언, 격쟁 같은 통로를 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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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열강은 왜 19세기에 아프리카를 그렇게 빠르게 분할했나요?
산업 혁명 이후 축적된 독점 자본주의를 앞세운 제국주의 국가들은 유럽이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아프리카를 경쟁적으로 침략했습니다. 아프리카는 상품 시장뿐만아니라 원료 공급지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아프리카가 빠르게 유럽의 식민지화 된 것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 경쟁때문입니다. 다른 나라보다 더 빠르게 식민지를 확보하기 위해 빠르게 식민지화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탐험가의 활동과 지도 제작으로 관련 정보가 제국주의 국가에 제공된 덕분입니다. 그리고 제국주의 경쟁에서 사회진화론과 백인우월주의는 식민지 침략의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또한 자국민들에게는 민족주의와 과신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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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장을 지르다 표현 유래가 장보고가 맞나요?
'염장을 지르다'의 한자어 '염장(鹽醬)'과 통일 신라 시대의 '염장(閻長)'은 별개입니다. 염장의 염은 소금, 장은 간장을 의미합니다. 즉, 소금이나 간장을 뿌려 상처를 더 아프게하는 행동으로 남의 속을 긇어 화나게 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그리고 장보고를 배신하고 암살한 인물도 염장이라는 인물이지만 한자어로는 다릅니다. 즉, 실제 염장이라는 인물이 장보고를 칼로 찔러 죽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같은 소리 글자이지만 다른 말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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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당시의 생활상과 문화는 어떤 게 있었는지 답글여!
대한제국은 1897년부터 1910년까지 존재했던 구한말 시대를 말합니다. 이 시대는 근대화로 인해 근대 시설이 유입되고, 새로운 사회 문화가 등장했습니다.서울같은 중심지는 서양식 건물로 호텔, 공사관, 학교가 생겼습니다. 특히 정동 일대는 외국 공사관이 밀집되어 있었으며, 신식학교와 호텔이 모여있던 곳입니다. 그리고 1898년 한성전기회사가 운영하는 전차, 가로등, 철도, 전신 등의 인프라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의복에서도 단발에 서양식 복장, 양산, 모자 등을 한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직도 전통적인 모습의 비중이 컸으며, 새로운 문물이 일부 혼재된 사회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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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도 한국처럼 하얀소복의 긴 검은머리의 귀신이미지를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중국에서도 우리나라 귀신 처럼 '흰 소복을 입은 여성 귀신'이 존재하기 하지만 대표적인 귀신상은 아닙니다. 중국은 '강시'가 대표적 귀신으로 청나라식 복장에서 팔을 뻗고 뻣뻣하게 걸어다니는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저승으로 영혼을 데려가는 '흑백무상'이 있습니다. 또한 원한을 품은 여성 귀신이나 백골정같은 이미지로 여귀, 원귀 계열의 귀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흰 소복을 입고 생머리를 늘어뜨린 처녀 귀신과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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