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악보인 정간보는 한자로만 되있어서 악기를 배우고 익히는데 오래걸릴까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간보는 조선 시대 세종대왕이 만든 국악 악보로, 한자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에 악기를 배우고 익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간보를 현대적인 악보로 변환하거나, 정간보를 쉽게 읽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있어서 이전보다는 쉽게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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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지명은 언제 체계화 되었는지 역사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의 지명은 역사상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첫 번째 변혁은 신라 35대 왕인 경덕왕이 고유 지명을 중국식 2글자 지명으로 바꾼 것이며,두 번째 변혁은 일제강점기 때 전국의 지명을 조사,정리하는 과정에서 일본식 명명과 더불어 고유어 이름이 살아있던 지방의 작은 행정단위까지 한자어로 바뀐 것입니다.현재 주요 대도시 가운데는 서울만이 유일한 고유어 명칭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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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톨라니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헝가리 출신의 투자자이자 작가로, 유럽의 워렌 버핏으로 불립니다. 1906년에 태어나 1999년에 사망하였으며, 파리, 런던, 프랑크푸르트 등의 금융 기관에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습니다. 주식, 채권, 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투자를 하였으며, 투자에 있어 감정과 심리적인 요소가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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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장이라는 것은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장이라는 단어 자체는 러시아의 옛 지명인 '고리'와 매장을 뜻하는 '장'이 결합하여 생긴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는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이 조부모나 증조부모의 사체를 묻어둔 뒤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뼈를 수습하여 분골하는 관습을 러시아인들이 보고서 '고리장'이라고 부른 데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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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을 거부한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을 거부한 사람들은 다양한 상황에 직면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일부는 강제징용을 피하기 위해 숨어다니거나 다른 지역으로 도망쳤을 수도 있고, 일부는 강제징용을 거부하다가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고문이나 처벌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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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의자왕을 웅진성에서 생포한 예식진이 배신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예식진은 백제의 지방 구분인 5방 중 하나를 담당한 북방령이자 웅진 성주였으나, 의자왕을 나당연합군에게 항복시킨 배신자이자 매국노로 예식진이 백제를 배신하고 당에 협조하면서 당으로부터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로 인해 그의 배신 행위가 이루어졌을 수 있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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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도와 파키스탄은 계속적으로 전쟁이 일어날까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도-파키스탄 분쟁은 종교적, 인종적, 영토분쟁으로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독립된 이후 양국 간에는 갈등과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갈등은 이슬람교(파키스탄)와 힌두교(인도)의 대립에 기인하고 있으며, 특히 양국은 1947년 10월 카슈미르 지역을 둘러싸고 전면전을 벌인 이후 이 지역을 둘러싼 대립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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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가 다른나라보다 일본과 가까웠던 이유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가 다른 나라보다 일본과 가까웠던 이유는 지리적 요인, 문화적 요인, 경제적 요인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백제의 경우 전반적으로 일본의 전신인 야마토(왜) 정권과 매우 친하게 지냈습니다. 한반도 계열 국가 중 일본과 가장 친한 국가를 선정하면 백제가 제일 먼저 언급될 정도로 백제와 왜의 우호관계는 근초고왕 시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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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인종이후 무신정권이 된계기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 무신정권의 성립은 1170년정중부 등에 의한 무신정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무신정변의 원인은 문신 중심의 정치가 행해져 상대적으로 무신들에 대한 차별 대우가 있었다는 점과 의종의 방탕한 생활로 인해 국가 기강이 무너져 권력을 가진 문신들이 상대적으로 무식했던 무신들을 무시하기 시작했다는 점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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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영업전은 어떻게 변화했나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훈최질 난은 고려시대 말기에 일어난 대표적인 민란 중 하나로, 영업전(永業田)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고려 조정은 영업전을 폐지하고 대신 새로운 토지 제도인 '전시과'를 제정하였습니다. 전시과는 경종 때 처음 실시되어 목종 때까지 수정·보완되었으며, 문무관리로부터 군인, 한인에 이르기까지 18등급으로 나누어 곡물을 수취할 수 있는 전지(田地)와 시지(柴地)를 주었습니다. 이는 기존의 영업전과 달리 토지의 소유권이 아니라 수조권(收租權)을 지급하는 제도였습니다. 즉, 관리들은 받은 토지에서 세금을 거둘 수 있었지만 토지 자체는 국가나 개인 소유였습니다. 그러나 전시과도 점차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어 무신정권 시기에는 붕괴되었으며, 이후 몽골 간섭기에는 권문세족들이 대토지를 차지하게 되면서 고려의 토지 제도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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