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대군이 단종의 사형을 강력하게 주장한 이유가 무엇이엇나요?
양녕대군은 태종의 첫째 왕자로 태어났지만 폐세자되었던 불운의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폐위되면서 동생 세종 가문에 대한 불편한 마음과 원한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실제로 단종이 죽고 이어 금성대군 등 세종의 후손들이 서로 죽임을 양녕의 복수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오히려 세조편에 서서 '수양이 천명을 받을 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복위 운동 과정에서 수 많은 숙청은 오히려 왕실의 안정을 훼손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즉, 양녕대군은 세종, 문종, 단종 가문에 대한 원한과 세조편에서 신분적 안전 보장과 왕실 분열을 방지하려는 명분에 따라 단종의 처형 주장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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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지역의 호르무즈와 홍해는 어떤지역인가요.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에서 아라비아해로 나가는 아주 좁흔 출입구를 말합니다. 중세 호르무즈 왕국이 섬과 주변을 중심으로 아시아, 아라비아, 아프리카 교역을 장악했습니다. 16~17세기에는 포르투갈, 영국, 이란 등이 해협의 통제권을 놓고 싸웠습니다. 현재도 세계 원유의 20~25%가 이 해협을 거쳐 운송됩니다. 홍해는 아리비아 반도와 아프리카 사이에 위치하고 북쪽으로 수에즈 운하와 연결됩니다. 고대 이집트부터 홍해를 통해 아시아, 동아프카와 교역했습니다. 중세에서 부터 근대 수에즈 운하 개통이후 아라비아, 아프리카, 유럽간 핵심 교역로로 중요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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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중 말고도 피휘문화가 있던 국가가 있었을까요?
'피휘'는 이름을 피하는 제도로 한국과 중국 이외에도 동아시아 여러나라에서 시행되었습니다. 중국은 피휘가 가장 오래된 나라로 엄격하게 발달하였습니다. 황제, 세작 이름자, 연호 등을 문서에서 제외하는 관습이 왕조마다 있었습니다. 또한 일본, 베트남 등도 우리나라와 중국 처럼 각자 왕, 신성 어휘를 피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유럽에는 하나님, 신성한 이름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하였으며, 아랍과 이슬람권에서도 알라, 선지자 이름을 존중하게 여겨 일부 이름을 피하거나 존경 표현으로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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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에서 최초의 한이라는 나라나 한족이라는 이런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한 사료나 기록은 언제부터인가요?
'한' 이라는 기원전 202년 한나라 건국과 더불어 문헌에 등장합니다. 유방이 항우와 싸운뒤 자신이 분봉을 받은 지역의 한중의 이름을 따 '한'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나라가 400년동안 중국을 통치하면서 한인, 한자, 한문 등의 중국 문화이 기틀이 마련된 것입니다. 한나라부터 한인이 민족 개념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리고 한족은 명청 이후 한인을 뜻하는 공식 명칭으로 정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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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왜 주몽이 태조라고 부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고구려를 건국한 시조는 주몽이 맞습니다. 하지만 태조의 칭호는 6대에 와 태조왕때 사용됩니다. 우선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은 건국 시조로 상징적인 인물이라면, 계루부 고씨가 왕위를 세습하기 시작한 것은 태조왕때 와서야 가능했습니다. 즉 태조왕 때 실질적으로 고씨 세습 체제가 확립된 것입니다. 또한 태조라는 묘호는 후대 중국의 전통을 수용하여 만든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따라서 주몽은 설화적 건국주이며, 태조왕은 실제로 고대 국가를 구축하고 정통을 확립한 왕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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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가 조선백자로 이어지게 된 역사적 배경이 궁금합니다.
고려청자가 조서 백자로 변화되는 과정은 중국의 영향이 있었지만 이미 고려말 도자기 변화 과정에 따른 것으로 판단됩니다. 고려 후기 이미 청자 이외에도 분청사기, 백자도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청자는 불교와 귀족적이며, 궁중과 귀족층에서는 여전히 선호했지만 사대부들은 소박, 검소, 실용을 중시여겼습니다. 조선 건국 이후 불교 중심의 고려 문화 대신 성리학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 사대부들의 검소함과 실용성이 반영된 백제가 시대 정신에 맞았던 것입니다. 즉, 원명 교체시기가 고려, 조선의 교체 시기가 맞물려 있어 청자와 백제의 전환과 연관된 측면도 있지만 이미 백자가 제작 유통되었으며, 백자가 조선 건국을 주도하 사대부들의 취향과 부합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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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사남에서 나오는 한명회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이였나요?
한명회는 조선 세종에서 성종 시기 권신입니다. 그는 수양대군을 도와 1453년 계유정나을 통해 황보인, 김종서, 안평대군를 제거하고 수양대군과 함께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결국 그는 단종을 몰아내고, 수양대군이 왕이 되는 세조 쳬제를 사실상 만든 장본인입니다. 즉 세조의 쿠데타를 설계하고 왕권을 손에 쥔 조선 최고의 권신입니다. 한명회는 세조뿐만 아니라 예종, 성종 대까지 3대 왕권을 뒷받침한 권력자입니다. 그는 두딸을 예종과 성정에게 시집을 보내 외척으로써 권세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연산군 당시 1504년 갑자사화로 연산군 생모 폐비 윤씨 사건에 연루되어 부괌참시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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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랏산의 노아의 방주 목재는 진짜인가요?
튀르키예 아라랏산의 2009~2010년 홍콩과 터키 중국인으로 구성된 탐사대가 해발 4천미터 안팎에서 거대한 목재 구조물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목재 표본을 채취하여 측정하니 탄소 연대로 약 4800년전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이들은 99% 노아의방주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나무가 노아의 방주에 사용된 나무라는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과 문자, 각인 등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것이 노아의 방주라고 다정하기 못하고, 같은 시대에 지어진 다른 구조물(집, 배)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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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ta랑 중국이랑 싸우면 누가이길까요?
MIKTA (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호주)와 중국이 전쟁을 한다는 가상 전쟁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세계 2,3위의 군사력과 핵 보유국이며, 인구도 14억과 상비군이 200만이 넘습니다. 반면 MIKTA는 각각 중견국으로 모두 합치면 숫자상으로 중국을 넘을 수 있지만 지리, 지휘, 무기 호환성, 동맹 등의 혼란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중국이 유리하지 않을까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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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랑 한국이랑 싸우면 누가 이기나요?
군사, 지리, 전략적 측면에서 보면, 한국은 세계5위, 프랑스는 6위에 해당합니다. 대규모 전면전, 한반도 한국형 전개를 한다면 한국이 좀더 강한 전력이라 볼 있어요. 경제력은 한국은 GDP 15위, 프랑스는 7위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한국은 방산,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고도화된 산업 구조로 전쟁 중 장비, 무기 생산 등에서 효율이 높습니다. 프랑스는 경제, 핵, 동맹, 우너정 전력이 강하지만 한국을 공격해서만 이기는 구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k-pop 문화 영향력을 전쟁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 오히려 외교, 여론 등의 이미지는 도움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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