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무라카이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어떤 내용의 책이며 어떤 메세지를 우리에게 전해주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민수 전문가입니다.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는 일본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 (ノルウェイの森)'입니다. 비틀즈의 동명 노래에서 제목을 따왔으며 하루키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힙니다.책의 내용: 주인공 와타나베 토루가 37세가 되어 비행기 안에서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을 듣다가 스무 살 무렵의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1960년대 후반 일본의 격동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상실, 죽음, 사랑, 고독, 방황, 그리고 성숙을 다룹니다.주요 인물과 그들의 관계:와타나베 토루: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 주변 사람들의 죽음과 상실을 겪으며 고독과 혼란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인물입니다.기즈키: 와타나베의 가장 친한 고등학교 친구이자 나오코의 남자친구. 어느 날 갑작스럽게 자살하여 와타나베와 나오코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나오코: 기즈키의 여자친구이자 와타나베가 사랑하게 되는 인물. 기즈키의 죽음 이후 깊은 상실감과 정신적인 불안으로 요양원에 입원하며, 결국 다시 한번 자살로 삶을 마감합니다.미도리: 와타나베가 대학에서 만나는 발랄하고 솔직한 성격의 여성. 나오코와는 대조적으로 현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매력을 가지고 있어, 와타나베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습니다.레이코: 나오코가 입원한 요양원에서 만나는 인물. 나오코의 룸메이트이자 선배로서,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관계를 지켜보며 조언과 위로를 건넵니다. 그녀 역시 과거의 상처를 지닌 인물입니다.이 소설은 와타나베가 기즈키와 나오코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현실적인 삶과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나오코와의 애틋하고도 비극적인 사랑, 그리고 미도리와의 현실적이고 건강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며 성장하는 와타나베의 내면이 섬세하게 묘사됩니다.책이 주는 메세지: 상실과 죽음의 보편성: 소설은 죽음이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늘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 등 피할 수 없는 상실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고통받고,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극복해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모든 사람이 언젠가 상실을 경험하며, 이는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청춘의 방황과 고독: 1960년대 후반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혼란과 변화의 시대를 상징합니다. 소설 속 젊은이들은 기존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들은 고독과 불안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며, 사랑과 관계를 통해 위로와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 이는 비단 그 시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의 젊은이들 역시 겪는 보편적인 고민과 방황을 대변합니다.삶의 지속과 성장: 소설은 상실의 아픔에 갇혀 죽음을 향해 가는 나오코와, 그 아픔을 극복하고 삶을 향해 나아가는 와타나베를 대비시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어떤 진리나 강인함으로도 치유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아픔을 겪더라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며, 그 상실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해야 함을 강조합니다.현실을 살아갈 용기: 와타나베는 결국 나오코라는 과거의 상실과 작별하고, 미도리라는 현실의 삶과 사랑을 선택합니다. 이는 불완전하고 상처투성이일지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 여기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나아갈 용기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결론적으로 '상실의 시대'는 죽음과 상실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그림자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삶의 고통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성숙하며, 결국은 현실을 긍정하고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는지를 묻고 답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천사와 악마와의 관계에 있어서, 미카엘과 사탄의 전투는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나요?
안녕하세요. 김민수 전문가입니다.미카엘 대천사와 사탄의 전투 형태에 대한 질문인것 같습니다.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성경의 기록을 토대로 유추하고 의미를 추론해야할 것 같습니다. 우선 성경의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요한계시록 12장 7절에서 9절"그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맞서 싸웠습니다. 용과 그의 부하들도 맞서 싸웠지만, 당해 내지 못하여, 하늘에는 더 이상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큰 용, 그 옛날의 뱀,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 온 세계를 속이던 그 자가 떨어졌습니다. 그가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그의 부하들도 그와 함께 떨어졌습니다." (공동번역 성서)이 구절에 따르면, 전쟁은 미카엘 대천사가 이끄는 천사 군단과 '용'으로 묘사되는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벌어졌습니다. 이 전쟁의 결과는 미카엘의 완전한 승리로, 사탄과 그의 세력은 하늘에서 패배하여 땅으로 쫓겨나게 됩니다.질문자께서는 이 싸움의 의미와 의의보다는 싸움의 진행 형태에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싸움은 신학적으로 물리적 전쟁이라는 접근 방식보다는 영적인 힘의 충돌, 힘보다는 진리와 권위의 싸움, 실제 칼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의 선포라는 점에서 이해야셔야 하는게 맞습니다. 또한 미카엘이라는 이름 자체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Mī-khā-’ēl)라는 의미이므로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외침을 대신한다고 이해하셔도 되겠습니다.물론 예술 작품 속에서는 실제의 싸움으로 묘사되고는 합니다만(미카엘이 거대한 용[사탄]을 발로 짓밟거나 창으로 꿰뚫는 모습), 이는 단지 영적 싸움을 시각화하여 상징적으로 표시한 것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감사합니다.
Q. 글을 잘 쓰기 위한 단어 선택은 어떻게 골라야 하나요?
안녕하세요. 김민수 전문가입니다.글이라는 것은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한 문장을 가지고도 사람에 따라 좋고 싫음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하겠습니다. 따라서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입니다.그러나, 좋은 글이라 평가 받는 글들이 존재하고 있으니 그 글들을 읽어보고 판단하여 스스로에게 체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본인의 훌륭한 문체, 글이 완성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글이라는 말하는 바가 명확해야하고 그 말하려는 바를 정확히 뒷바침해 줄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플로베르가 주장한 일물일어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는 한 가지 사물을 표현하는 가장 정확한 단어는 하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이 원칙이 진리이고 모든 글에 모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글에 대한 독자의 감상에서 혼란을 피하게하고 명확한 이해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또한 중언부언하지 않는 것입니다. 같거나 유사한 의미를 가진 단어나 수식어의 반복은 글을 지루하게 하고 독자의 이해를 방해합니다.지나치게 현학적이거나 어려운 단어를 쓰는 것도 지양해야합니다. 너무 어렵거나 생경한 단어들은 글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주제를 향해 쓰여지고 있는 글에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그리고, 남의 글을 많이 읽어 어휘에 대한 노출을 늘리고, 그 어휘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모든 글은 무(無)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다른 사람의 글이나 말의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좋은 글들, 내가 본받고자하는 글들을 많이 읽어보고 그 글에서 쓰인 단어의 쓰임과 문맥상 쓰이는 단어의 뉘앙스를 정확히 파악하여 나의 것, 나만의 것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내가 전달하려고 하는 의미에 가장 적합한 어휘를 찾는 연습도 중요합니다. 막상 글을 쓰다보면 단어선택에 어려움이 있거나 내가 표현하려는 의미와 의도를 전달하게에 가장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를 극복하게 해주는 것은 끊임없는 독서와 익숙한 것에 관심두기 입니다. 독서의 중요성은 앞에서 이야기해 두었으니 주변의 것에 관심두기를 이야기하엤습니다. 매일매일 쓰는 단어들, 인터넷에서 떠도는 너무도 익숙한 단어나 표현들에 대하여 당연히 그런 뜻이겠거니 생각하고 넘어가지 말고 사전이나 믿을 만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그 정확한 뜻을 찾고 공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주 쓰이는 표현인 '신박하다'의 원래 뜻은 '이틀밤을 머무르다(信泊하다)'이고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신기하면서도 참신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신조어이고 표준어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글이나 공공성을 가진 방송에서는 사용하기에 적절한 단어가 아닙니다.위에서 언급한 것들이 작문 시 좋은 어휘를 선택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은 아닐 지라도 기본적으로 자녀야 할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좋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