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장보고가 난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인가요?
장보고는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신라말 왕위 쟁탈전에 개입하였습니다. 신무왕(김우징)의 아버지 김균정 계열과 희강왕, 민애왕 계열이 왕위를 놓고 다투었고, 김우징이 아버지가 패배하자 청해진으로 도주하여 장보고에게 의탁하였습니다. 장보고는 군사 5000명을 지원하여 민애왕을 제거하고 김우징을 신무왕으로 즉위시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신무왕은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삼겠다고 약속했으나 즉위 180일만에 죽으면서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며, 뒤를 이은 아들 문성왕도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받아들이지 않자 불만을 가지고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결국 장보고는 중앙에서 파견된 자격 염장에게 암살당하며 난은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Q. 세종이 토지를 구분한 방식은 무엇이었나요?
세종은 1444년 공법을 제정하여 과전법 체제에서 조세 제도를 개편하였습니다. 공법은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전분 6등법으로 나누고, 또다시 풍흉을 기준으로 연분 9등법으로 나누어 세금을 부과하였습니다. 즉, 고려시대는 각 도를 상,중,하 3등급으로 구분하였으나 전분 6등으로 세분화한 것입니다. 1등전부터 6등전까지이며, 기준의 3등급보타 더 세분화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