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만민공동회와 관민공동회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독립협회는 1896년 7월 독립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시민들을 동참시켜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단체로 탄생하였습니다. 독립협회는 민중 계몽을 위해 독립 신문을 발행하고, 강연회와 토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특히 고종의 환궁과 1897년 10월 대한제국의 수립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습닏. 그러나 러시아의 이권 침탈과 간섭이 계속되자 이를 극복하고자 1898년 2월 구국운동 상소문을 올렸으나 성사되지 못하자 1898년 3월부터 종로에서 만민공동회를 열었습니다. 만민공동회는 독립협회가 주도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집회입니다. 만민공동회의 영향으로 절영도 조차 철회, 고문 철수, 한러은행 철회 등 러시아의 간섭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독립협회는 자유 민권 운동과 자강 개혁 운동을 더욱 강화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개혁적인 박정양 내각이 구성되었으며, 1898년 10월에는 정부 관료들까지 집회에 참여하면서 관민공동회도 열렸습니다. 이 곳에서 헌의 6조를 건의하여 고종의 재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즉 관민공동회는 관료와 민중이 함께 참여한 집회입니다. 이를 통해 민중의의 의지가 국정에 반영되는 결과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