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튀르키예 사람들의 얼굴은 백인인지 황인인지 궁금합니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인종적으로 백인, 즉 코카소드계통으로 불류됩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중앙아시아 유목민, 서아시아, 유럽, 지중해 인종이 혼합되어 형성된 민족입니다. 실제로 피부색이나 머리색, 눈동자가 백인에 가깝습니다. 과거 터키인을 황인종으로 분류된 적도 있으나 유전학적으로도 백인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조선 후기 실학과 실학자들을 알려주세요.
실학은 조선 후기 현실 개혁적 학문 경향으로 기존 성리학이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등장한 실용적인 학문입니다. 실학은 실용, 실증, 개혁 등의 의미하며, 사회 및 경제,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제로 백성의 삶을 개선하고 국가를 개혁하려는 사상이었습니다. 실학은 크게 중농주의와 중상주의로 구분됩니다. 중농주의는 토지 개혁을 바탕으로 제도 전반적인 개혁을 추구했습니다. 유형원, 이익, 정약용이 해당됩니다. 그리고 중상주의는 상공업 진흥과 기술혁신을 통해 백성들의 후생을 주장하였습니다.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등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국학, 과학 등에서도 실학적 측면이 반영되었습니다.
Q. 명나라는 왜 과거에 해상무역과 교역에 대해서 배타적이엇나요?
명나라 해상 무역과 교역에 배타적이었던 주된 이유는 해적과 연해 지역 군벌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입니다. 해금 정책은 1371년 홍무제가 청므 시행되어 민간의 해외 무역과 출해를 금지하고 외국과의 교역을 조공무역으로만 제한했습니다. 이는 해적과 밀무역, 지방 세력의 성장, 국부 유출을 막고자 한 조치였다고 봅니다. 또한 명 태조의 폐쇄적 정치 이념과 내치 강화 의지도 작용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명나라는 국제적 고립과 밀무역, 해적 증가 경제적 비효율 등 부작용도 겪었습니다.
Q. 당나라시대에 당대의 불교와 도교는 어떤 식으로 공존하거나 충돌했나요?
당 왕조 시기 불교와 도교는 서로 공존과 경쟁하며서 유지되었습니다. 당 왕조는 자신들의 시조를 노자로 내세우고, 도교를 국가적으로 보호하고 우위에 "도선불후" 정책을 일관되게 시행되었습니다. 황제는 도교를 국교적 위상에 올려놓고, 도사가 승려보다 우선하도록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당대에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인도, 서역과의 교류 경전 번역, 선종 등 다양한 종파의 발전, 대규모 사찰과 승려 집단의 성장 등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불교와 도교는 의례, 사상, 용어 등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두 종교는 국가 후원, 신도 확보, 사회적 영향력 확대를 두고 경쟁했습니다. 특히 9세기 회창 연간에는 당 무종이 대대적인 폐불 정책을 시행해 불교 사찰과 승려를 대거 탄압했습니다.
Q. 당나라의 천문학과 의학은 어떤 수준이었나요?
당나라 시기에는 이미 1400개가 넘는 별을 기록한 본격적인 천문도가 제작 활용되었습니다. 별자리, 행성, 일식, 월식 등 다양한 천체 현상을 관측하고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인도 등 외국에서 역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달의 위치 측정과 360분도 체계 등 선진적 지식을 활용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일본 등 동아시아 전역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의학적 측면에서도 당나라 시기에는 의학서 편찬, 약재 연구, 침구술 등 다양한 의학 분야가 체계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의학은 불교, 도교, 민간 요법과 융합되어 다양한 치료법과 활용법이 정립되었습니다. 당대의 의학 지식과 약재 연구는 이후 송·원·명대는 물론 한반도와 일본에도 전파되어 동아시아 의학 발전의 토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