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여진족은 수많은 동아시아유목민족에서 오랜기간 강성하게 자리를 잡았나요
여진족은 동아시아 유목민족 중에서도 오랜 기간 강성하였습니다. 12세기 완옌부 아골타가 부족을 통합하여 1115년 금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1125년 북송을 멸망시키고, 화북 지방을 지배하였습니다. 전통 유목 생활에 더해 15~16세기는 농업을 적극적으로 도입, 발전시켰고 명, 조선과의 무역을 통해 경제력을 키웠습니다. 금나라 멸망 후에도 여러 여진 부족으로 몽골, 조선, 명의 견제를 받다가 1616년 누르하치에 의해 다시 통일되어 후금이 건국되었습니다. 이후 1636년 청으로 발전하여 중국 대륙 전체를 지배했습니다. 여진족은 유목민 특유의 군사력과 기동성, 그리고 한족·거란 등 주변 문명과의 융합, 실용적 제도 도입(예: 과거제, 농업, 행정제도)으로 장기적 존속과 발전을 이뤘습니다.
Q. 당나라와 당대 돌궐족과는 어떤 관계였나요
당 고조 이연은 돌궐의 지원을 받아 왕조를 세웠으나 이후 돌궐이 중원의 통일을 견제하며 당과 적대적 관계로 전환하였습니다. 돌궐은 당나라를 위협하며 여러 침공했고, 당태종 즉위 초에는 돌궐군이 장안 근처까지 진입하기도 했습니다. 7세기 중반 돌궐 내부 분열과 자연 재해로 약화되자 이이제이 정책을 써 돌궐을 분열시키고, 630년 동돌궐을 정복해 복속시켰습니다. 이때 당 태종은 ‘천가한(天可汗, 유목민의 칸)’으로 추대되며 돌궐을 포함한 북방 유목민을 통치했습니다. 당은 돌궐 왕족과 귀족을 지방 도독, 장군 등으로 임명해 통치에 참여시켰고, 돌궐 병력을 당군에 편입해 서역 원정 등 군사작전에 활용했습니다. 이후에도 서돌궐 등 일부 돌궐 세력은 독립을 유지하며 당과 충돌하였습니다.
Q. 중국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어떤 종교가 가장 대중적으로 미쳤던건가요?
중국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영향을 끼친 종교는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불교, 도교, 유교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불교는 한나라 이후 널리 퍼져 사찰, 문화, 예술,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도교는 중국 고유의 종교로 자연과 조화를 중시하며, 민간 신앙과 결합해 오랜 세월 생활 속에 뿌리내렸습니다. 유교는 철학이자 사회 윤리 체계로 조상 숭배와 제사 문화, 국가 통치 이념 등 중국 문화와 사회 질서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Q. 당나라의 지방통치 체제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었나요?
당나라 시대에는 전국을 도로 나뉘고 그 아래 주와 현을 두어 3단계 체계로 운영되었습니다. 당 태종 때 10도를 설치하였으며, 이후 15도로 확대되었습니다. 각 도는 여러 주와 현을 관할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요 도시는 부로 승격되어 특별 행정구역으로 관리되었습니다. 모든 지방관은 중앙에서 임명되어 파견되었으며, 행정, 사법, 군사권을 통제하였습니다. 도에는 도독 또는 절도사가 파견되고, 주에는 자사, 현에는 현령이 파견되었습니다.
Q. 황건적의 난은 한나라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황건적의 난은 한나라 정치에 결정적 타격을 주었습니다. 황건적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후한 정부는 각지의 지방관과 군벌, 의용군에게 군사권을 위임했습니다. 이로 인해 지방 세력이 급성장하고 중앙 정부의 세력이 약화되었습니다. 난을 진압한 이후에도 각지의 군벌과 장수들이 독자적으로 세력을 키워 이후 동탁, 원소, 조조 등 군웅이 할거하는 삼국시대의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황건적의 난으로 인구가 급감하고, 경작지가 황폐화되어 경제력이 크게 손상되었습니다.
Q. 한나라 말기 황건적의 난 발생으로 당대에 어떤 인물들이 핵심으로 자리를 잡고 권력을 잡나요?
한나라 말기 황건적의 난 이후 중앙 정부 권위가 크게 약화되면서 여러 지방 실력자와 장군들이 부상해 권력을 잡았습니다. 이들은 훗날 삼국지의 주요 인물들로 난세의 주역이 됩니다. 하진은 황건적의 난 진압을 위해 대장군으로 임명되며, 동탁은 하진이 암살되고 나서 혼란을 틈대 군대를 이끌고 낙양에 진입하여 황제를 옹립하고 실질적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이후 폭정으로 반동탁 연합군이 형성되어 최후를 맞습니다. 이후 조조, 손견, 원소, 유비 등 황건족 토벌과 동탁 타도 과정에서 군사적 기반으로 각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였습니다.
Q. 한나라 시기의 천문학과 역법의 주요 성취는 무엇인가요?
한나라 시기인 기원전 104년 한무제 "태초력"이 공식 역법으로 채택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중국 최초로 태양년의 길이를 비교적 정확하게 산출한 태음태양력입니다. 이는 이후 동아시아 역법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한나라는 별자리, 행성, 일식, 월식 등 다양한 천체 현상을 정밀하게 관측하여 기록했습니다. 특히 28수 체계로 별자리를 분류하고, 달의 주기와 움직임을 정확히 계산하는 등 체계적인 천문학 체계를 발전시켰습니다. 또한 후한의 휴홍은 "건상력"에서 달의 운동이 등속이 아님을 최초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장형은 혼천의를 제작하여 천체의 움직임을 모형으로 재현하였습니다.
Q. 한나라 시대에 가장 강력한 왕조는 어떤 왕조였나요?
한무제 시기 한나라의 군사, 경제, 문화적 전성기로 평가받습니다. 이 시기 한나라는 흉노를 격파하고 영토를 중앙 아시아, 한반도 북부, 남중국, 베트남 북부까지 확장했습니다. 인구는 약 3700만명으로 당시 세계적인 대제국이었습니다. 그리고 유교를 국가 통치 이념으로 삼아 중앙집권적 체제를 확립하였습니다. 한무제는 강력한 황제권과 군사력, 경제력, 문화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중국 역사상 가장 위한 군주 중 한명으로 평가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