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나당 전쟁 시작의 이유와 전개 그리고 결과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신라 김춘추와 당 태종이 만나 나당 동맹을 결성할 때 고구려와 백제 멸망 후 대동강을 기준으로 북쪽은 당이 차지하고 남쪽은 신라가 차지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고구려와 백제가 무너지고 나니 당은 고구려의 옛 영토에는 안동도호부를, 백제의 옛 영토에는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여 직접적으로 한반도를 다스리려는 욕심을 드러냈습니다. 늘 자신들을 짓누르던 패배의식과 불안감의 원인인 한반도가 완전한 자기네 땅이어야 안심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합니다.원래도 당의 목적은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리고 나면 상대적으로 약한 신라를 나중에 다 집어삼켜서 한반도 전체를 당의 손아귀에 넣는 것을 목표로 했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하지만 신라는 철저한 전쟁 준비와 고구려부흥세력을 포섭하는 등 하여 웅진도독부를 쳐내고 백제의 옛 땅을 회복하였습니다. 신라도 당과 손절할 시기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은 한반도에 대한 야욕이 있었으나, 토번국도 견제해야 해서 계속해서 나당전쟁을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를 집어삼키겠다는 야욕은 버리지 못해 패퇴하여 요동으로 옮긴 웅진도독부 건안성에 백제유민을 옮기고, 백제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융을 대방군왕에 봉하여 이른바 소백제국의 세우고 한반도의 신라를 견제하고, 고구려유민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멸망한 고구려의 옛 땅과 그보다 더 넒은 영토를 차지한 대진국 발해의 등장으로 당은 더이상의 한반도에 대한 욕심을 부릴 수 없게 됩니다.지금도 그렇지만, 한반도는 산지형으로 되어있어 외세의 침략을 막을 수 있는 요충지이고, 삼면이 바다로 되어있어 무역과 교역에 탁월한 입지이며, 비옥한 토지로 곡창지대가 많아 식량조달에 좋은 전초기지가 될 수 있으니 당에서 욕심을 내는 것은 당연하였지 않나 추측해봅니다.
Q. 상의 티샤츠 가로, 세로 줄무니 옷 입는 사람 성향이 다른 건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시각적으로는 가로 줄무늬가 세로 줄무늬보다 뚱뚱해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로 줄무늬의 평행성의 간격이 넓거나 두꺼운 경우에 그렇게 보입니다. 하지만 줄무늬가 가늘고 그 간격 또한 좁다고 한다면 자신의 체형을 고려하여 날씬하게 보이기 위해서 가로 줄무늬 옷을 추천하고, 크게 보이기 위해서 세로 줄무늬 옷을 선택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일종의 착시 효과를 이용해서 이럴 때는 가로 줄무늬가 더 날씬해보이게 하는 착시를 가져옵니다. 심리적으로는 세로 줄무늬는 직선적, 상승에의 욕구, 공격적, 가로 줄무늬는 안정적, 평등, 자유로움 등을 표출한다고 하기도 하나 그냥 가로와 세로의 줄무늬를 선호하는 것은 기호의 차이로 보입니다. 한때 예술가적 표현으로 일탈, 자유로움의 상징이 줄무늬였는데(이것은 가로 줄무늬) 그것은 과거 마린룩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선원들은 대부분 가로 줄무늬의 옷을 입었는데 이것은 어떤 성향의 차이가 아니라 신분의 차이로 배에서 가장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 이러한 복장을 하였습니다. 이후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의 이미지로 드넓은 바다를 헤쳐나가는 것에서 자유로움, 일상에서의 탈출 등 일탈의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예술가들에게는 그러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피카소도 가로 줄무늬 티셔츠를 즐겨입었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저는 가로 줄무늬, 세로 줄무늬 다 입는데 어떤 것을 특별히 선호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Q. 성경에서 여성을 차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기독교에서는 이를 어떻게 설명하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성경에서는 남녀의 차별을 두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유대교에서 파생되어 발전해왔으니 뿌리가 같습니다. 지금은 유대교, 기독교(개신교, 카톨릭)로 나뉘어져 있지만 랍비, 목사, 신부 모두 남성만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부속적인 사상이 깔려있는 것입니다.
Q. 유교사상은 어떻게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전파가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국 명의 성리학이 고려 시대에 신진사대부들에게 전파되어 그 학문적 사상의 기반이 되었고, 고려 말 혼돈의 시대에 신진사대부 중 정도전 외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북방 세력인 이성계의 세력과 함께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였습니다. 조선의 건국이념은 정도전이 설계하여 성리학의 기반 위에 국가를 새로이 세우고, 성리학의 가르침에 따라 학자들이 국정에 대해 논하며 만들어가기를 바랐습니다. 이에 조선은 초기부터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를 그동안의 폐해를 들어 억제하고 성리학이 기반이 된 유교사상을 도입하여 숭유억불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백성들의 일상생활에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에 관혼상제 모두를 유교사상을 접목하여 하게끔 하였습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지속되었기에 발전하였고, 조선 중후기에 들어 너무 학문적 유토피아만 꿈꾸는 것이 아닌가 하여 몇몇 학자들 사이에 실제 생활과 밀접한 학문이 필요하다 하여 소위 실사구시, 실학 사상이 대두되기는 하였으나 전반적으로 유교사상은 퇴화되지 않았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중국보다 더 우리 실정에 맞는 유교사상으로 자리매김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니 언젠가는 그 색이 바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