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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을 공유하고 모르는 것을 함께 공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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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준 전문가
맑은글터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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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국은 왜 유일하게 음력 양력 두개 다 사용하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태양력의 경우에는 지구의 공전주기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계절을 정확하게 구분하는데 좋기 때문에 사용합니다. 태음력의 경우에는 달의 변화에 따른 공전주기(지구를 한바퀴 도는)를 측정한 날짜 계산으로 한달이 29.5일이 되어 농경사회에서 24절기에 따른 농업 및 달의 주기에 따른 간만조의 확인으로 어업에도 활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오차가 생겨 계절이 맞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래서 보정이 필요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하는 태음태양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태음력과 태양력의 오차 11.25일를 보정하기 위해서 19년에 7번의 윤달을 넣어 계절과 맞게 보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약 3년 주기로 태음력이 13개월이 되게 하여 태양력과 태음력의 절기에 따른 계절이 맞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태음태양력을 사용하는 이유는 태양력은 만국공통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표준과 계절의 구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사용하고, 그것만을 사용해도 상관이 없으나, 과거부터 농경, 어업 생활을 기초로 살아오던 관습이 있고, 해당 절기(절기는 파종 및 수확 시기 등과 관련되어있습니다) 중 명절로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태음력도 동시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실리와 전통을 모두 지키고 있는 것이니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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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가수들의 음악 저작권은 사후에도 보장이 되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대한민국의 저작권법에 있어서 저작재산권은 저작자의 생존기간과 사후 70년까지 보장이 됩니다. 상황에 따라 저작권의 만료기간은 다르게 선정하는데 공동저작물의 경우는 가장 나중에 사망한 저작자를 기준으로 사후 70년까지 보장합니다. 그리고 저작자의 사망시점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무명, 이명의 저작물이나 업무상 저작물, 영상 저작물의 경우에는 해당 저작물이 공개된 후 70년을 저작권 보장기간으로 두고 있습니다. 보통 저작자가 사망하거나 저작물을 공개한 다음해 1월1일부터 적용합니다. 해당법안은 2013년 7월 1일에 개정된 것인데 그 이전에 보호 기간이 만료된 저작물의 경우에는 저작자 사후 50년까지 보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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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당전쟁이 일어나계된 계기가 뭔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나당 연합군은 660년 백제를 멸망시킨데 이어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키며 삼국시대는 통일 신라시대로 이어지게 되는 혁혁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과정부터 삐걱대고 있었습니다. 신라는 당나라와의 밀약인 삼국통일 후 동맹국으로서의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말을 믿었지만, 당나라는 약속을 어기고 한반도 전체를 그들의 영역에 두려 했습니다. 먼저 백제가 멸망 후 당나라는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했고 항복한 백제의 왕 부여융을 책임자로 임명했으며, 이에 더해 당나라는 신라 땅에도 계림대도독부를 설치하여 문무왕을 책임자로 임명하는 만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당나라는 신라를 그들의 지역으로 포함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입니다. 신라는 그들이 멸망시킨 백제의 땅을 그들의 영역으로 포함시키지도 못했고 망한 백제의 왕자를 대등한 입장에서 예우해야 했으며, 665년 당나라는 신라 문무왕과 백제 왕자 부여융을 지역의 도독으로 하여 상호 동맹의 맹약식 하도록 강요하게 됩니다. 이에 신라는 화가났지만, 고구려와의 전쟁을 앞둔 시점에 당의 군사력이 필요했기에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고 신라는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때마침 고구려의 핵심세력들이 후고구려를 내세우며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기에 신라에게는 당의 눈을 돌릴 좋은 기회였습니다. 신라는 당나라를 상대로 한 본격적인 군사작전을 시작했습니다. 라는 옛 백제지역의 영토를 조금씩 잠식하면서 영토를 넓혀왔고 백제 유민들의 포용하며 백제 지역에서 지배권을 공고히 했습니다. 당나라를 상대로 한 적극적인 외교전으로 신라의 주장을 관철하는 노력도 병행했고, 오랜 세월 신라와 교류 및 대결 관계에 있었던 왜와 외교적 소통을 하며 관계를 개선했습니다. 향후 당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한 일이었죠. 당나라 역시 이를 알고 있었기에 더 노골적으로 한반도 지역의 지배권을 강화하려 했고 신라 사신을 통해 그들의 의도를 명확히 하는 문서를 보내기도 했지만 전쟁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670년 신라는 고구려 유민들과 연합해 요동지역의 당나라 군을 공격함으로써 나당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신라는 공세적으로 작전으로 당나라의 시선을 요동으로 돌린 이후 백제 영토를 차지하며 당나라 군을 내쫓았습니다. 신라는 지금의 익산 지역에 고구려 유민들이 그들의 나라 보덕국을 세우는데 지원을 하면서 고구려 유민들과의 관계를 강화 하며 우군으로 삼았고 고구려 유민들은 고구려 부흥을 위해 신라의 지원이 필요했기에 도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개전 초기 신라는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신라군의 강한 저항에 당나라 군을 초반 밀렸다. 하지만 672년 석문 전투에서 신라의 주력군이 대패하면서 전세가 당나라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신라는 김유신이 673년 세상을 떠나면서 공세보다는 수성을 택했습니다. 신라는 당나라에 일종의 사죄단을 파견해 각종 진상품을 바치고 당나라의 선처를 구하는 식으로 당나라에 읍소를 하는 굴욕을 감수하는 등 저자세 외교로 당나라와의 전쟁을 피해가는 계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전쟁 대비하여 여러 요충지에 성을 축조해 전력 거점을 확보하고 당나라의 남하를 막았습니다. 또한 신라 내부의 친당 세력들을 숙청하며서 내부를 결속을 다졌고 고구려, 백제 유민을 적극적으로 포용하여 위세를 키워갔습니다. 군사적으로는 당나라 군에 맞설 특화된 부대를 육성하고 무기를 개발하였는데 특히, 당나라의 주력인 기마병에 대응할 무기 배치와 함께 맞춤형 전술을 만들어 대비하였습니다. 신라는 이후 거듭된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전쟁의 승기를 잡고는 675년 지금의 동두천 지역에서 벌어진 매소성 전투에서는 3만의 병력으로 20만의 당나라 군을 격파하였고 서해 기벌포에서 당나라 해군과의 전투에서도 승리하며 당나라를 꺾었습니다. 이후 잔여 전투에서도 거듭 승리한 신라는 마침내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676년 나당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는 확실한 삼국통일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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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년일 365일로 다같이 정한건 어떻게 정한건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도는 시간을 측정하여 365일로 잡았습니다. 날짜를 계산하는 방법으로는 태양력과 태음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둘다 사용하죠.양력으로 계산하면 1년은 365.2425일로 지구 공전인 365.2422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태양의 움직임을 거의 정확하게 포착하여 계절을 파악하기 용이합니다.하지만 공전주기가 365일로 떨어지지 않고 매년 0.2422일이 남기 때문에 이를 보정하기 위해 보통 2월을 28일로 하고 4년마다 2월에 하루를 추가하여 29일이 들어가게 하여 보정합니다.음력은 달의 움직임을 보면서 날짜를 계산하는 방법으로 보름달이 뜨고 다음 보름달이 뜨는 기간이 29.5306일이기 때문에 한 달에 29일과 30일을 번갈아 가면서 쓰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계산하면 12개월을 354일로 구분하기 때문에 지구의 공전 주기에 비교하면 3년만 지나도 30일 이상이 부족해서 계절이 뒤죽박죽 섞이게 됩니다. 그래서 윤달을 넣어주어 보정합니다. 결론적으로 양력 음력 모두 공전주기인 365일을 기준으로 하고 오차를 일부 보정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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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삼국시대에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국 중 가장 강한 나라는 고구려였으나 당시 오랜 기간 당과의 전쟁과 백제, 신라의 견제 등으로 쇠약해진 상황이었습니다. 신라는 백제가 대야성을 공격하여 빼앗고 당시 김춘추의 사위와 딸이 죽게 되어 이를 복수하고자 고구려에 도움은 청하였으나 도움을 얻지 못하고 신라로 돌아가 복수를 계획하게 됩니다.고구려에서는 핵심 전력이자 권력가인 연개소문이 사망하자 그의 세 아들이 권력을 차지하고자 욕심을 부려 각자 그를 따르는 세력들로 내분이 일어났고, 그 중 장자인 연남생은 당으로 망명하여 역으로 고구려를 탐하게 됩니다. 같은 시기에 신라는 당에 고구려 백제를 함께 치자는 취지로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당은 신라를 돕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를 치고 한반도를 차지하고자 하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계백이 선봉이었던 백제가 패하고 결국 멸망하게 되어 아래에서는 신라가 위에서는 당이 공격하였고, 고구려는 군부핵심세력이었던 연개소문도 없고, 권력싸움으로 내분도 있는 상황으로 외세의 침략을 막지 못하고 멸망하게 됩니다. 고구려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에 충분히 삼국통일을 할 수 있었으나 백제는 형제국가라 인정하고 머리를 조아리면 복속하지는 않았으며, 신라는 당시 가장 약소국으로 고구려에 도움은 요청하던 시기였으므로 자신들의 영향력에 있다고 생각했지 지배하지 않았습니다. 삼한의 한민족이니 힘을 합쳐 북진해야 한다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인정이 주변국이 힘을 키우게 된 패착이었습니다.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 장수 중 대중상과 그 아들인 대조영이 옛고구려 영토에 후고구려라 칭하며 대중상을 황제로 세우고 건국을 하고 완전히 자리를 잡은 대조영이 황제로 오른 뒤에는 국호를 진으로 바꾸고 대진국이라 불렀으며 연호를 따로 썼습니다. 당에서는 그 위세를 무시할 수는 없었으나 동등한 국가로는 인정할 수 없다 하여 낮추어 중국 발해군 지역을 근거로 하는 발해국왕이라 하사하였다 합니다. 당시 당이 가장 강력한 시기라 주변국도 발해라 불렀고, 당의 속국처럼 여겼었지만, 지금 밝혀지는 자료로만 봐도 독자적민 연호를 쓰고 유물에 황후라는 명칭을 쓴 것으로 보아 당과 대등한 국가였음이 분명하다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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