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유명한 한국 철학자는 누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서양철학사와 동양철학사를 원조로 구분한다면,서양철학은 그리스 플라톤이 남긴 기록 속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철학이겠죠.서양철학은 여전히 이원론, 즉 영원한 세계와 물질계로 구분하는 플라톤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서양철학은 제국주의라고 부정적으로 폄하할 수도 있는데,끝도 없는 전쟁으로 승자와 패자의 관점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동양철학은 가까운 중국, 그리고 인도와 페르시아, 더 나아가 아프리카대륙의 신앙과 관련된 사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신앙이라는 것은 현실세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이 지배적인데요.한반도 땅에서 발생한 철학이라고 한다면,일연의 삼국유사에서 언급하는, 환인이 환웅에게 태백에 홍익인간, 재세이화를 시행하도록 했다고 하는 사상은 한반도에서 지속적으로 철학적 기반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일연은 몽고의 침략으로 한반도가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한민족의 근원을 환인에게 두고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시민정신을 고취시켰다고 할 수 있겠죠.한반도에 남아있는 기록으로 최치원이라는 이름과 그의 남긴 기록이 있지만, 그는 화랑이나, 풍류를 언급할 때, 도교의 신선사상이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해 봅니다.불교는 전쟁을 600번이나 겪은 한반도에서 호국불교로 변했고, 이에 기여했던 승려들도 한반도의 철학사상에 크게 기여했을 것입니다.원효대사나 의상같은 분들의 이름이 남아있죠.한반도지역에 철학적인 영향을 가장 크게 끼친 사람은 정도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삼봉 정도전은 경국대전에 남긴 기록으로 보면, 왕권을 견제하고 재상에게 정치권을 맡기는 입헌군주제를 주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토지제도개혁도 주장했는데, 민본주의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그가 쓴 불씨잡변에 "만일 지옥이 없다면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 악한 짓을 안 하겠습니까?라는 스님의 질문에,"군자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함은, 마치 좋은 색을 좋아하고 나쁜 냄새를 싫어함과 같아 모두 마음 속에 우러나오는 것이지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번이라도 악명이 있게 되면 그 마음에 부끄러워하기를 마치 시장에서 종아리를 맞는 듯이 여기니, 어찌 지옥설 때문에 악한 짓을 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까?"라는 답변을 남겨, 술수에 미혹되지 않도록 분별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함이라고 했다. 성리학의 현실참여 정치사상으로 민중의 의지를 꺾는 혹세무민, 권모술수에 반대했다고 볼 수 있겠죠.정도전의 사상은 여전히 한반도에 살고 있는 시민정신의 근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성호 이익도 당쟁의 폐단을 지적하고 과거제도의 혁신과 양반중심의 관직제도가 아닌 생업을 중시해야한다고 주장하죠.덕치도 중요하지만, 엄격한 법 시행과 법률 적용 방법의 형평성을 논했습니다.다산 정약용은 주자학에서 실학으로 유학의 본질로 돌아가자고 주장했습니다.당시 100% 사대부에게 독점된 토지를 무상분배, 공동 노동과 공동 분배를 주장하여 토지 불평등을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애민 국가, 애민 사회를 주장하여 조선이 복지국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정약용의 수원 화성 건축을 위해 거중기를 고안한 이야기도 유명하죠.그가 쓴 책, 목민심서도 유명하기는 마찬가지이고요. 손병희의 인내천 사상도 한국철학의 맥을 잇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일본의 식민지배와 이후 미국 군정 하의 대한민국 건국으로 현대 철학은 대부분 서양철학을 근거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가장 한국적인 철학이라는 것이 정립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고요.조심스럽게 ^^방탄소년단의 유엔연설을 보면서, 가장 한국적인 철학의 계보를 이어가는 것 아닌가 생각했습니다.한류의 바탕이 되는 것이 한국철학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철학적인 사상적 배경이 없다면, 한 때의 이벤트가 되겠지만, 철학이 담겨있고, 가장 한국적인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전세계의 시민들은 그리스철학으로 시작된 서양철학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널리 사람과 천지만물을 이롭게 하려는 고조선건국이념을 받아들이고 평화와 공존의 길을 함께 걷자고 동의하지 않을까요?
Q. 그리스가 특히 철학적으로 발전한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만약에 말입니다.대한민국이 현재 전세계 패권국가가 되었다면, 배달민족, 인내천사상, 금속활자, 원효, 이황, 이이같은 사람들의 사상을 이어받아 학문을 발전시킨 사람들이 일본과 중국을 거쳐 동남아, 중앙아시아, 중동, 인도로 가서 제국의 패권을 가지고 학교를 세우고 종주국 한반도를 추종하는 인문학과 예술을 하도록 이끌지 않았을까요?한반도와 거의 유사한 지리적 환경을 가진 곳이 그리스이고,서구 유럽이 세계 패권을 쥐었기때문에, 일단 한반도의 철학은 주류에 들지 못하고요 ㅠㅠ그리스인류가 상형문자를 표의문자로 전환한 곳은 메소포타미아지역의 수메르문명으로 보입니다. 토판에 글을 새기고 도서관을 운용한 제국이었죠.히타이트인들이 인류 최초로 철기문명을 일으켰다고 보는데,청동기 무기와 철기 무기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고, 이 무기의 힘이 제국확장을 계속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었을 것입니다.히타이트족이 철기 기술만 가졌을 뿐, 제국을 스스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현재의 터키, 그리스, 이집트, 팔레스타인 등 주변 지역으로 이주하여 철기를 전해주고 히타이트는 소멸합니다.철기문명이 발달하면서 메소포타미아는 제국확장을 위한 전쟁만 끊임없이 일삼았던 반면,그리스는 철기문명을 해상무역에 집중시킵니다.한반도주변으로 생각해 본다면, 중국 본토가 끝도 없는 중원의 전쟁을 일삼을 때, 한반도는 해상무역을 통해, 동남아시아는 물론 인도까지 교역을 확대했죠.한반도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는 해상무역을 통해 교역의 기술 중 수학, 측량, 가치평가, 화폐단위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의 근원에 대한 탐구, 변하지 않는 진리, 천문학, 우주와 존재의 창조의 근원, 신 개념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유를 가졌던 것이죠.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했고,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이 수라고 했습니다.자신도 3번이나 전쟁에 참전했던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에게 끝없는 질문을 통해 무지에서 벗어나라고 했고요.플라톤은 변하지 않는 이데아가 모든 사물의 근원이자, 원인이라고 했는데, 인류의 철학적 논의가 시작된 출발점이 그의 가르침과 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물론 이러한 생각은 세계 패권을 장악한 서구 유럽을 중심으로 사고할 때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동양 철학은 20세기 들어서야 깊이 연구되고 있죠.어쨌든, 부유해진 상인들을 중심으로 인류 역사에서 최초의 민주적 결정방식이 그리스지역에서 채택됩니다.현재 터키와 시리아지역의 패권을 장악한 바벨론제국과 그 뒤를 이은 페르시아제국은 그리스의 부를 약탈하고 싶어지겠죠?그래서 그 먼 길의 원정에 나섭니다.페르시아군대는 용병이고, 그리스지역의 군대는 시민군이었죠.그리스지역의 시민군은 자발적으로 자국을 지키기위해 군인이 된 사람들이었기때문에, 숫적으로 몇 배가 넘는 페르시아군대와 전쟁을 계속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당연히 전쟁은 영웅을 낳게 마련이고,이렇게 전쟁 영웅을 칭송하는 신화와 사상이 전파됩니다.전쟁으로 희생당하는 젊은이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어른들이 있었고,전쟁으로 인간성을 상실하거나, 전쟁영웅으로 부와 명성을 쫓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려는 선생들이 있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대왕의 스승으로 유명하죠.알렉산더대왕은 그리스어와 그리스문명, 그리스철학, 그리스식 통치방식을 전세계에 전파하는 것이 신이 자신에게 준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헬레니즘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했던 그리스문명 전파는로마가 그리스를 침략한 후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사실 로마는 문명이라는 것이 없었기때문에 그리스문명을 그대로 채용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로마의 패권은 문명으로 보면, 그리스문명 패권이라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결국 로마가 그리스를 점령했지만, 철학과 예술은 그리스에게 흡수되었다고 볼 수 있겠죠.우리나라 역시 일본과 중국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들이 한반도를 침략한 후에 심각한 오류에 빠지는 것이 철학과 예술의 차이였다고 보입니다. 한반도를 군사력으로 삼키는 것은 곧 철학과 예술에서 한반도에 흡수될 수 밖에 없기때문에 뱉어내거나, 아니면 한반도문명으로 침략국의 문명을 바꾼 로마처럼 해야했을 것입니다.어찌되었건, 그리스라는 나라는 지증학적으로 반도에 있어서 무역일 발달하고, 그 풍요를 누리면서 철학이 발달했고, 발달한 철학이 침략국의 문화를 흡수해버렸고, 로마 이후 서구 유럽이 세계 패권을 쥐면서, 그리스철학이라는 것이 인류의 최고 지성처럼 홍보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쓰다 보니, 너무 길게 썼네요.한반도가 중국, 일본, 동남아, 중앙아시아를 거쳐 실크로드를 타고 전세계 인문철학의 패권을 , 키보드 입력 언어로 한글이 전세계에서 채택되는 날이 곧 오기를 기대하면서.......
Q. 프랑스가 예술의나라로 유명한 이유는 뭐죠?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프랑스라는 이름이 쓰여지는 이유는 프랑크왕국이 분열하면서일 것입니다.동프랑크(현재 독일), 서프랑크(현재 프랑스), 중프랑크(현재 이탈리아)로 나뉘고,영국과 백년전쟁을 겪고,1494년부터 1559년까지이탈리아와 전쟁을 계속했고,이 전쟁기간동안 이탈리아로부터 예술이 프랑스로 약탈된 것이죠.1562년부터 1598년까지위그노전쟁,1618년부터 1648년까지30년 전쟁으로 1648년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항복을, 1659년에 스페인의 항복을 받아내죠.전쟁을 통해 확장하는 프랑스는 루이14세라는 유명한(?) 왕의 통치 아래 문화가 급속도로 발전합니다.물론 루이14세의 재위 기간 72년 4개월 중 31년 동안 끝도 없는 전쟁을 통해 영토확장, 식민지배, 식민착취를 이어갑니다.이 때 프랑스 보병은 당대의 세계 최초의 근대화 군사력을 갖게 되죠.이 시기에 프랑스에는 공립 예술학교들이 줄줄이 세워지게 됩니다.오히려 발달하는 문화는 루소, 몽테스키외, 볼테르 등 계몽주의자들의 활동이 가능했고, 그 결과는,프랑스대혁명으로 루이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 당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죠.혁명정부의 무능은 다시 나폴레옹을 탄생시킵니다.그 이후 나폴레옹의 실각, 왕정복고, 나폴레옹황제 즉위, 프로이센전쟁 패배, 프랑스 제3공화정제로 뒤죽박죽이 된 역사는독일이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는 세계1차대전까지 이어지죠.프랑스가 승전국이 되고, 독일이 패전국이 되었다가,제2차세계대전으로 프랑스는 독일에게 짓밟히게 됩니다.프랑스 예술은 전쟁의 결과물이죠.15세기 프랑스는 이탈리아에서 먼저 시작된 르네상스가 전쟁으로 획득한 부를 예술발전에 쏟아부으면서, 문화예술 운동을 가속화시킵니다. 끝도 없는 전쟁 중에 프랑스인들도 이탈리아를 점령하면서 탈취해 온 예술을 통해, 삶에 대한 갈구, 인간에 대한 연구, 인간성에 대한 보편적 지식, 자유에 대한 갈망, 인간이 갖는 자유의지에 대하여 추구합니다.르네상스사상이 유럽에서 가장 발달하게 된 원인이 프랑스가 오랜 전쟁을 치렀기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이 시기 프랑스는 프랑수아1세와 앙리2세같은 왕들이 이탈리아와 피렌체의 화가, 조각가들을 고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프랑수아 1세는 안드레아 델 사르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같은 이탈리아 예술가를 프랑스로 망명시켰습니다.금세공, 벤베누코 첼리니, 화가, 줄리오 로마노, 프란체스코 프리마티초에게 왕실을 치장하게 하였으며, 이탈리아의 중개상을 통해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라파엘로의 그림을 프랑스로 사들였습니다. 최후의 만찬도 프랑스왕실로 옮겼죠.예술가들이 프랑스로 몰려들었습니다. 16세기에는 그 유명한 메디치가문도 피렌체에서 프랑스로 옮기죠.프랑스에는 몽테뉴가 있습니다. 그는 1인칭 문학의 창시자로, '수상록'을 발표한 사람이죠.이 시기에 프랑스에는 '살롱'이 탄생하고, 문학과 예술에 관한 대화가 끊이지 않는 공간이 마련됩니다.그러나 무엇보다 프랑스 예술은 이탈리아와의 전쟁을 통해 예술품, 예술가를 약탈(?)해 왔기때문에 가능해졌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또한 프랑스 정치권의 예술지원정책도 적절했다고 볼 수 있죠.전세계 모든 예술품을 사들일 재력을 보유하기도 했고요.루브르박물관의 수많은 소장품들이 식민지나 패전국들로부터 약탈해간 것이기 때문에 ‘거대한 약탈 전시관’이니 ‘문화제국주의의 신전’이니 하는 대명사로 불리기도 하죠.우리나라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협상도 있었죠.루이14세가 직접 발레의 주인공이기도 했고, 프랑스의 지폐에는 음악가의 초상이 들어있죠.가장 먼저 혁명이 일어나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시작했죠.대통령제까지 다양한 정치실험이 어떤 나라보다 먼저 일어났고,그래서 탈권위의 예술이 가장 먼저 실험되었습니다.음악, 소설, 철학, 미술, 조각, 건축, 디자인 모든 분야에서 프랑스인들은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해졌습니다.코로나19에도 개인의 자유를 부르짖는 이유는 전쟁 중에 페스트를 경험했었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그 어떤 경우에도 개인의 자유스러운 표현을 막아서는 안된다는 시민들의 의식이 강하게 예술에 표현되고 있기때문에 프랑스는 예술의 나라라고 불릴 것입니다.프랑스는 예술이라고 하면, 그 어떤 것도 허용이 되는 나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우리나라도 예술과 문화 컨텐츠를 지난 수십년간 발전시켜왔는데, 그 배경에는 역시 경제발전과 국가적 지원,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의식의 발전이 중요했다고 볼 수 있겠죠.
Q. 바나나를 벽에 테이프로 붙여놓은게 왜 작품이 되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탈리아 예술가인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코미디언’이라는 작품을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바나나 한 개를 공업용 덕트 테이프로 벽에 붙여놓은 작품은 페로탕을 창립한 예술품 딜러, 에마뉘엘 페로탕이 “세계무역을 상징하고,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 고전적인 유머 장치”라고 평가했다고 합니다.재미있는 것은,페로탕갤러리에 전시 중이었던 12만달러 작품 속 바나나를 떼어내 먹어버린 예술가.그는 미국 뉴욕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행위예술가인 데이비드 다투나랍니다.행위 예술가다운 답변은 없었습니다."배 고프다"라고 말하고 나서 떼어내 먹어버렸습니다.그리고는 "맛 있었다"라고 말했다네요.당연히 페로탕갤러리측은 다른 바나나 하나를 다시 붙였습니다.바나나는 거기서 썩어갈 것이 뻔하기때문에, 페로탕갤러리는 바나나를 준비해 두었던 것이고,데이비드 다투나는 이 바나나를 먹음으로써 '코미디언'의 작품성을 증명한 것이 되겠습니다.우리 돈 1억이 넘는 돈을 주고 이 작품을 산 사람들은, 바나나를 산 것은 아니죠.그 작품성을 인증하는 인증서를 산 것이라고 해야겠죠.오픈씨에서 판매되는 NFT들도 이 세상에 유일한 것이라는 스마트계약 상의 인증서를 사는 것이니까요.현대미술이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오히려 미술은 가까이 다가왔지만, 미술에 대한 감상자의 선입견이 가로막을 뿐이죠.현대미술의 성지는 프랑스 몽마르뜨언덕일 것입니다.미술은 왕과 귀족의 노예같은 화가들의 작품이었는데, 당연히 권위의 상징이며, 종교적 그림들이었죠.처형하기에 좋은 탁 트이고 어디에서나 잘 보이는 언덕인 몽마르뜨에,무명의 가난한 화가들이 권력의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권위와 종교를 내던지고, 일상과 노동, 민중의 삶을 그리기 시작하죠.물론 풍경이 좋기때문에 풍경화도 그리는 화가들이 자리잡습니다.가난한 화가들이 오두막에 걸어놓은 그림을 사기위해서 귀부인들이 줄을 서면서 미술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죠.마네, 모네, 드가, 피사로, 반 고흐가 그들 중에 있었습니다.몽마르뜨언덕에는 선술집이 들어서고, 시설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숙소들이 등장합니다.이렇게 미술은 권력층에서 민중 속으로 들어옵니다.현대미술은 인상파 화가들이 현실세계를 캔버스에 담은 그 숭고한 뜻을 이어가고 있습니다.권력과 금융과 정부와 자본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려고 애쓰는 것이죠.바나나는 썩어갑니다.Neo-Colonialism(신식민주의) 관점에서 보면, 바나나가 썩는 것이곧 현대사회의 자본이 무역이라는 방식으로 가난한 이들의 가축의 사료인 바나나를 선진국에 팔기위해 모두 빼앗아가는 것을 의미하겠죠.쟝 미셸 바스키에는 미국 4살 때 천재성을 드러낸 화가였죠.뉴욕에서 권력과 인종차별로 얼룩지는 미국사회의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SAMO그룹의 일원으로 벽화를 그리다가,당대의 유명한 엔디 워홀에게 발탁되어 세계 미술계의 슈퍼 스타로 떠오릅니다.물론 SAMO그룹원들은 자본시장을 멸시하며 바스키아와 결별합니다.엔디 워홀이 사망하자, 바스키아는 마약 중독에 빠져 1년 후 27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만약 누군가 소의 방귀를 담은 비닐봉지를 예술로 승화시킨다면,그것은 인류가 육식으로 사용할 재료인 소를 키우는 산업을 풍자하는 것일 것입니다.15억마리의 소가 사육되고 있고, 트림과 방귀로 35억톤의 온실가스를 지구에 배출합니다.인류는 쇠고기를 먹기위해 수백종의 생물체를 멸종시키고 있는 것이죠.만약 치킨을 먹은 후, 한 줌의 흙과 함께 닭뼈를 담아 예술이라고 한다면,그것은 미국이 1727만 6천톤을 매년 생산하는 것,우리나라 사람들이 매년 먹어대는 닭이 10억마리나 된다는 것,후손들이 쓰레기더미 위에 만들어 놓은 공원을 파헤쳐 유적을 발견한다면, 닭뼈 산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겠죠.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이게 무슨 예술이냐?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예술은 현대사회의 일상으로 인간의 욕망과 그 결과가 어떤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지를 보여주는 통로라고 해야겠죠.바로 그 풍자를 가치로 사는 것이고, 그래서 바나나 하나 붙여놓고, 그 작품의 이름을 "코미디언"이라고 했을 것입니다.2022년 새 해가 밝았네요.올 한 해, 예술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넓어져 가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