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가라테의 아시안게임 종목으로 채택되기까지 역사적 유래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7세기 일본 사쓰마번의 침공 당시 류큐 왕국 무인들은 중국 남권을 차용한 당수, 중국 무술을 수련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테의 모체가 됩니다.당시 류큐는 5세기 상씨 왕조때부터 개개인의 무기 소유가 금지되어 맞서 싸울 방법이 맨손 무술밖에 없었습니다.가라테의 기원은 정확하지 않으나 세가지로 나뉘는데 -1300년대 중국 복건성에서 중국인 36인이 이민해 오키나와에 중국 무술을 전수했다는 것으로, 당시 권법 발달에 대한 의문으로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1756년 중국 사신 공상군이 오키나와에 중국 남권을 전수했다는 것으로 1762년 일본 사쓰마번으로 공물을 바치러 가던 오키나와 인들이 풍랑을 만나 지금의 토사번에 표류, 이때 이야기를 기록한 대도필기에서 7년 전 오키나와에 공상군이라는 중국 사신이 중국 남권을 전수해줬다는 이야기 입니다.-자생설로는 오키나와 토착 무술과 인도와 중국 및 동남아 등지에서 무역을 하던 오키나와 인들이 그들에게 무술을 배웠고, 그 무술이 결합해 현재의 가라테의 원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Q. 우리나라 선조시대때의 매장문화에 대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백제의 경우 종교가 불교였으므로 시대별 장례문화인 화장을 한 후 뼈를 추려 땅속에 묻는 매장법으로 진행했고 삼국시대 장례문화는 신라대부터 변화를 보이게 됩니다.신라 지증왕때부터 왕과 부모, 처자가 사망했을 때 모두 1년동안 상복을 착용, 순장을 금지했습니다.통일신라 이후 불교의 법식에 따라 일반인들 사이에서 화장이 성행, 고려는 불교를 정신적 이념으로 삼아 유교를 사회 통치 이념으로 삼았으므로 화장과 매장을 병행했습니다.조선시대 이전 불교적 색채가 강하고 조선시대 불교식 제를 금하고 유학의 영향을 받아 주자가례가 기본이 되며 조선 초 초상이 나면 상여를 맬 향도를 불러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며 상주를 위로, 이후 일제강점기시대 매장풍습은 화장장과 공동묘지라는 새로운 장례문화가 탄생되었습니다.
Q. 혼불기념관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혼불문학관은 한국현대문학의 걸작 혼불 소설의 배경지인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520번지 노봉마을에 조성된 문학관 입니다.작가 최명희의 소설 혼불은 우리 풍속의 보고이자 모국어의 보고라고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전통문화의 원형을 잘 보존한 소설인데 남원시는 작가의 예술정신을 기리고 주변의 소설 배경이 되는 최씨 종가, 청호저수지, 달맞이 공원, 구서도역 등과 연계해 문학마을을 조성하기 위해 설립했습니다.두 채의 한옥으로 이루어진 문학관은 유품 전시실과 집필실인 작가의 방, 주제 전시실로 꾸며져있으며 유품 전시실에는 작가의 사진과 최명희 혼불 이라 쓴 자필 글씨, 생전에 작가가 사용한 만년필과 잉크병 등이 전시되며 , 작가의 생전 모습, 수상 경력, 작가로서의 삶, 동아일보에 연재되었을 때부터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혼불의 역사가 정리되어있습니다.유품전시실 다음에 작가의 집필 방을 재현해 놓고 소설 속 주요 장면을 입체 모형으로 재현한 디오라마 10점과 소설 혼불을 소개하는 매직비전, 인월댁 베짜기 시설등이 전시, 디오라마는 혼례식, 강모와 강실 소꿉놀이, 액막이연 날리기, 효원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며 그 정기르 ㄹ빨아들이는 흡월, 청암부인 장례식, 춘복이 달맞이 장면 등으로 구성, 꽃심관에는 사랑실과 누마루 소살소살 이 있어 문학관을 찾는 이에게 공부방, 쉼터 역할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