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노르웨이가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세계 행복의 날인 3월 20일에 발표된 2023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주관적으로 가장 행복도가 높은 국가는 핀란드로 발표되었습니다. 핀란드는 무려 6년 연속 1위를 차지하였으며, 상위권은 북유럽 국가들이 대부분 차지했는데요. 이게 얀테의 법칙이라는 생활규범과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얀테의 법칙(Jante's Law)이란 얀테의 십계명이라고도 하며 스칸디나비아 반도, 노르딕 국가(북유럽에 있는 다섯 나라)에 알려져 있는 생활 규범, 행동 지침, 태도를 말합니다. 북유럽 국가의 평등주의를 잘 보여주는 문화입니다. 개인주의, 개인의 성공에 몰두보다는 집단주의, 공동체의 성공을 중시하는 태도를 중요시하며, 북유럽 국가 사람들이 흔히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입니다.얀테의 법칙 10가지 계명1.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2. 당신이 남들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3.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4. 당신이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마세요.5. 당신이 남들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6. 당신이 남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7. 당신이 모든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8. 누군가를 비웃지 마세요.9. 누군가 당신을 걱정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10. 누군가에게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세요.얀테의 법칙과 행복지수북유럽 국가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가 얀테의 법칙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남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불행하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얀테의 법칙은 평등을 중요시하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 모두가 비슷하게 입고, 비슷하게 먹으며, 비슷한 곳에서 살기 때문에 비교할 일이 적어집니다. 또한 자신이 남들보다 특별하거나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북유럽 사람들은 항상 평등과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하며, 공동체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 행복하며, 모두가 비슷하니 남들과 비교할 일도 적어지고, 삶의 만족도가 높게 나오는 것입니다.
Q. 동학농민혁명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동학 농민 운동은 전라도 땅 고부에서 시작된 농민 봉기가 발단이 되었습니다. 고부 땅은 농토가 기름지고 해산물이 풍부하여 사람 살기가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1892년에 고부 군수로 부임한 조병갑의 횡포로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아주 나빠지기 시작했고 이에 전봉준은 1894년 1월에 1천여 명의 농민들을 이끌고 고부 관아를 습격하여 횡포한 군수를 쫓아내고 관리들을 벌 준 후에 곡식 창고를 풀어 어렵게 살던 농민들에게 나누어 줬습니다. 뿐만 아니라 감옥을 열어 죄 없이 갇혀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풀어 주었죠.고부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는 보고를 들은 중앙 정부는 깜짝 놀라 조병갑을 군수 자리에서 쫓아내고 새로운 군수를 임명해 내려 보냈으며, 봉기가 일어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하여 조사관인 안핵사를 고부로 보냈습니다. 신임 군수는 농민들에게 나쁜 정치를 없애겠다고 약속했고, 이 말을 믿은 농민들은 무장을 풀고 해산했습니다. 그런데 안핵사가 문제가 되었죠.사건을 조사하러 온 안핵사 이용태가 봉기의 책임을 농민들에게 모두 돌리며 주동자를 색출하여 옥에 가두고 마을을 약탈을 한겁니다. 이에 전봉준은 동학 교단의 지도자였던 김개남, 손화중과 손을 잡고 제폭구민, 보국안민을 구호로 본격적인 투쟁을 시작 했습니다.전봉준이 정부와 싸움을 시작하며 전라도 부안 땅에 있는 백산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하자, 목숨을 걸고 달려온 농민들이 8천여 명에 달했으며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백산에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이 서 있을 때는 입고 있는 흰 옷 때문에 산 전체가 백색으로 보였고, 앉아 있으면 머리 위로 솟은 대나무 창 때문에 대나무 산으로 보였다고 합니다.그래서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죠. 동학 지도부는 백산에서 다음과 같은 격문을 발표하고 정부를 상대로 투쟁에 들어갔습니다.우리가 의로운 깃발을 들어 이곳에 온 것은 그 뜻이 결코 다른 데 있지 아니하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어려움 속에서 건지고 국가를 튼튼하게 하기 위함이다.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쫓아내고자 함이다.
Q. 중국이 다민족국가가 된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국은 한족이 대다수인 다민족국가 입니다. 인구의 92%(정확히는 91.6%)를 차지하는 한족을 비롯해 현 중앙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5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중국은 1949년 수립 이래로 한족과 소수민족을 따로 구분하여 인구조사를 했는데 소수민족들은 한족 주거 지역의 변방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들이 다른 나라에 병합되거나 독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수천 년 전부터 국경 지역, 특히 소수민족들이 거주하는 변방에 한족을 이주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한족 이주 정책은 해당 지역 소수민족과의 끊임없는 갈등을 초래하고 있습니다.90% 이상을 차지하는 한족 외에도 좡족, 후이족, 몽골족, 다우르족, 에벤크인, 허저족, 만주족, 시버족, 조선족, 먀오족, 위구르족, 티베트족 등이 있고 대개 한족들은 소수민족들이 사는 지역에도 많이 거주하며, 많은 소수민족 지역에서는 절반 이상 또는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소수민족에 따라 자신들의 언어를 구사하는 경우도 많지만 중국어를 쓰는 경우도 많으며 한족화 때문에 고유언어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만, 후이족은 의복, 생활, 종교를 제외하고 한족과 구별이 없고 중국어도 사용합니다.중국의 민족은 공식적으로 56개이지만, 중국의 민족 분류는 비슷한 소수민족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묶는 경우가 많은 편이라 실제로는 이보다 많은 숫자의 민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령 중국에서 '고산족'으로 분류하는 대만 원주민의 경우 대만(중화민국) 정부는 16개 민족으로 분류하고 있고 미식별민족까지 치면 중국의 민족은 더 늘어납니다.부모의 민족이 다른 경우에는 자식은 아버지-어머니 중 하나의 민족을 선택할 수 있는데 대체로 소수자 혜택(대학입시, 계획생육정책 면제 혜택) 이 많은 소수민족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Q. 바나나 현상과 님비현상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님비현상은 유해물질로 인한 환경오염과 인체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거나, 재산 하락이나 지역 발전 후퇴를 야기하는 시설물을 거부하는 현상입니다. 주로 공동묘지, 화장터, 쓰레기 소각장 등이 있습니다.바나나현상은 좀 더 극단적이고 광범위한 지역이기주의를 뜻하는데 '어디에든 아무것도 짓지 마라' 'Build Abosolutely Nothing Anywhere Near Anybody' 단어의 앞자만을 따서 만든 용어로 님비 현상은 모두에게 필요한 시설이지만 내가 사는 곳 근처 설치를 반대하는 것이라면 바나나 현상은 내가 사는 지역권에 시설물의 건립 자체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Q. 대한민국 국명 후보가 다양했다고 하는데요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 국민은 강제 병합 이후 비밀결사형태의 항일운동을 전개하면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여러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지만, 주제와 관련 있는 사건은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대규모 민족해방운동입니다.3·1 운동은 현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역사적 기원으로 임시정부의 설립 주체인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의장 이동녕)이 1919년 4월 10일 밤 10시 중국 상하이에서 개원하고,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 조를 철야 심의한 후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했습니다.이때 국호도 정했는데,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는 신석우(申錫雨) 선생의 의견이 지지를 받아 국호가 대한으로 정해졌고, 주권이 황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 있다는 의미로 백성 민(民)자가 붙어서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국호가 탄생했습니다.그리고 광복 이후 유엔 결의에 따라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적 선거인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제헌국회를 구성했고,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했습니다.참고로 당시 총선거에는 만 21세 이상의 유권자 813만2517명 중에서 96.4%에 해당하는 784만871명이 선거인 명부에 등재됐고, 이중 95.5%가 투표에 참여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Q. 대만의 장제스에 대한 평가는 어떤게 맞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장제스에 대한 기존의 평가는 무능력하며 봉건적 사고를 답습한 군벌이라는 등의 부정적 평가가 주류였는데 이는 국공내전의 패배의 원인을 장제스에게 찾거나 장제스를 몰아낸 중국 공산당의 공산혁명 신화 만들기로 인한 영향이 큽니다. 그런 이유로 학계 및 민간에도 장제스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주류로 자리잡게 되었는데요.문화대혁명 등의 사건으로 인해 중국 공산당의 신화가 파괴되었고 학계에서도 중화민국 시기의 사건은 중화민국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관이 일본에서 대두되면서 1970년대부터 중화민국과 장제스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 됐습니다. 1996년 레이 황은 지적하길 장제스는 비윤리적이고 전근대적인 수단으로라도 근대 국가를 강제로 만들어냈어야 했다고 말했으며 2003년 영국의 저널리스트 조너선 펜비가 장제스 평전에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장제스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을 시도, 장제스의 단점들에 대해 혹독히 비판하면서도 장제스가 없었을 중국의 파멸적인 결과를 지적하고 장제스의 정권이 결국 최초의 근대 국가의 기구들을 중국에 제공했으며 마오쩌둥의 정권과 달리 최소한의 정상적인 정권이었다고 규정함으로 매우 전향적인 재평가를 시작했습니다. 국민 혁명군 장교 출신의 학자 레이 황, 영국 학자 라나 미터, 미국 외교관 출신의 제이 테일러 등의 연구자들이 장제스에 대해 매우 전향적인 재평가를 하게 되면서 무능한 장제스 사관은 학계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장제스와 적대한 중국 조차도 장제스의 항일 일대기에 대해 재평가하며 장제스의 위상이 올라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