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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남생이120
조용한남생이12023.04.06

왜 고종은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신을 간것인가요???

고종이 있을 당시 많은 서양 열강들이 우리 조선에 들어와 있었는데 왜 하필 러시아 대사관으로 아관파천을 한 것인지 역사적 배경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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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11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06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당시 대한제국 내에 공사관을 설치한 외국은 청과 일본,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였습니다.

    청은 청일전쟁(1894)에서 일본에 밀린 이후이고 영국은 일본의 동맹국이고 프랑스는 영국의 동맹국이었습니다. 신분 안전에 불안하여 러시아 공사관이 안전 보장을 약속하였기 때문에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였습니다.


  • 1895년 일본은 조선을 장악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명성황후를 살해합니다.

    이 사건이 을미사변입니다. 고종은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살해당한 후

    일본과 친일 세력으로부터 경복궁에 감금당합니다.

    고종은 신변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첫 번째 시도는 미국 공사관으로 피신하려다가 실패하였습니다.

    고종은 일본의 감시 속에 생활해야 했습니다.

    궁녀도 믿을 수가 없어, 식사도 러시아 공사관에서 실어와 먹을 정도로

    독살의 위협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왕이 살해되면 나라 자체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고종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합니다.

    이것이 아관파천의 배경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아관파천 전에 을미사변으로 인해 고종은 신변의 불안을 느꼈습니다. 우선 친일정권을 타도하기 위해서 친미, 친러파에 의해 궁밖으로 탈출하려고 하나 실패 합니다. 이것이 춘생문 사건입니다.


    제 생각은, 그 후 고종은 미국이 일본과 친하니, 러시아로 가면 안전하다고 판단해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간 것 입니다.

    그나마 러시아가 일본이랑 대립을 펼친 게 가시화 되어서, 같은 황제가 다스리는 러시아로 갔다고 판단됩니다.

    결국 나중 러일전쟁이 발발하고 미국과 일본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네요.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95년 7월, 일본이 조선에 대한 영토 확장을 추진하면서, 조선 정부는 일본과의 전쟁을 예상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비하여 조선은 외교적 지원을 받기 위해 러시아와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조선에 대한 영향력이 크고, 조선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1895년 11월, 일본과 조선 간의 전쟁이 일어나면서, 고종은 일본군의 서울 진입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신하였습니다. 이후 고종은 러시아 대사관에서 약 1년간 체류하였습니다. 이때 러시아는 고종의 피신을 통해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고, 조선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의도를 나타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러시아의 조선에 대한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져서 조선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는 조선의 국내외적인 문제로 이어지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당대 을미사변으로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를 당하자, 일본을 견제할 수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러시아 공사관으로 고종이 피신을 했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일본이 자기도 죽이려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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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청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이 내정간섭과 정권을 휘어잡으려 하자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는 러시아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고 명성황후는

    고종한테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었는데 당연히 일본의 걸림돌이 였던 명성황후는 일본한테 시해 당했습니다. 이로인해 고종은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신했습니다.


    (명성황후가 시해 당한게 을미사변)


    (고종이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신간게 아관 파천)


    그리고 1년 뒤 대한제국 선포를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일본이 고종 암살 고종을 너무 집요히 공격하니 피하고 싶어서 그나마나 자신의 입장에서강대국인 러시아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일본으로 부터 독립 추구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아관파천(1907년)은 당시 조선에 대한 각자의 이해관계와 이익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열강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이때 러시아 대사관이 왜 아관파천을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과 추측이 있지만, 확실한 역사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러시아 제국은 조선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추구하면서 조선에 대한 간섭을 강화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러시아는 당시 일본과의 영토 분쟁에서 조선을 중재국으로 선정하면서 그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상황에서 러시아 대사관이 아관파천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러시아 제국이 당시 조선의 내정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대담하게 간섭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러시아 대사관이 아관파천을 한 정황은 여러 가설과 추측이 있지만, 러시아 제국이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면서 조선에 대한 간섭을 더욱 강화하고자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러시아는 군사력으로 막강한 나라였고 일본이 청일전쟁으로 가져간 중국의 땅 일부를 러시아의 방해로 반납했던 일본이므로 러시아는 조선이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나라였기 때문에 조선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 안녕하세요. 노인옥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성 황후가 경복궁에서 일본놈들에게 무참히 살해된 뒤, 고종은 자신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끼며 살았다고 합니다.

    이 때 조선에서 세력 확장을 꾀하던 러시아는 고종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며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길 것을 권유했고 이에 고종은 왕세자와 함께 '아관파천' 즉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게 됩니다.

    이후 고종은 친일 관료를 몰아내고 친러 인물을 등용했습니다. 친일 내각이 무너지고 친러 내각이 들어서면서 러시아는 조선의 정치에 깊이 관여하기 시작했고 조선의 국가 산업에 관한 여러 가지 이권을 가져갔다고 합니다.

    그러자 다른 열강들도 러시아와 동등하게 대우해 줄 것을 요구했고 일본까지 경제적인 이권을 요구하며 압박했으며 고종은 이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 많은 이권이 일본과 서구 열강들에게 넘어갔습니다.

    이때문에 조선의 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나라의 힘이 강해야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답변이 도움이 되셨다며 '좋아요'와 '추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종이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신을 간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904년에 발발한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한국은 일본의 강제적인 통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저항으로 고종은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신을 갔습니다. 그는 러시아 대사관에서 6년간 생활하면서, 러시아와의 동맹을 이루어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무산되면서, 고종은 일본의 압박으로 1910년에 체제를 포기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