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충흔 전문가입니다.
머리카락 색을 프린터 잉크와 카트리지에 비유하신 것은 인체에 대해 잘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바탕으로 질문하신 의문들을 풀어나가면 이해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먼저 노화로 인해 생긴 흰머리가 관리를 통해 다시 까매질 확률은 안타깝게도 거의 없습니다. 스트레스성 새치는 모근의 잉크 공장이 잠시 파업을 하거나 원료 공급이 끊긴 상태라 관리를 잘해주면 공장이 재가동됩니다. 하지만 노화로 인한 흰머리는 잉크가 떨어진 것을 넘어 공장 자체가 문을 닫고 기계까지 철거된 상태입니다. 즉, 머리카락 색을 만드는 멜라닌 줄기세포가 완전히 고갈되었기 때문에 영양이나 두피 환경을 개선해도 잉크가 다시 채워지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의 머리가 다시 까매지는 기적 같은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이는 정말로 잉크가 새로 충전되었다기보다, 아주 특수한 자극 때문에 세포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낸 현상에 가깝습니다. 주로 특정 항암제나 파킨슨병 치료제 같은 강한 약물을 복용할 때 그 부작용으로 닫혔던 색소 세포가 일시적으로 자극을 받거나, 큰 병을 앓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면역 체계가 교란되어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될 때 이런 일이 생깁니다. 세포 수명의 마지막 단계에서 유전자 신호 오류로 잉크를 뿜어내는 일종의 착시 현상인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흰머리가 유전이 잘 되는 이유는 색소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기보다 잉크 공장의 내구성을 결정하는 타이머를 물려받기 때문입니다. 우리 유전자에는 모근 세포가 활성산소 같은 스트레스를 견뎌내는 기간이 설계되어 있습니다. 부모님의 흰머리가 빨랐다면 그 내구 수명이 조금 짧은 프린터를 물려받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몸의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불필요한 색소 공장부터 문을 닫는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이지만, 눈에 잘 띄다 보니 유독 유전이 강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