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9년 기축옥사의 정여립의 난은 조선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사건입니다. 그는 '천하공물설'에 따라 천하는 공적인 것이니 임금의 아들이 아니라 누구든 왕위 계승 자격이 있으며, 누구를 섬기든 임금이라는 '하사비군론', 대동계 조직은 왕조 측면에서 위협적이라 여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정치적으로 정여립의 본래 이이와 성혼의 문하였으나 이이가 죽은 후 동인으로 전향하여 서인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이런 정황을 바탕으로 전통적 학계에서는 모반을 꾀했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하지만 재야 사학계에서는 정여립의 난은 서인이 동인을 축출하기 위해 조작한 정치 보복극이라 날조라고 주장이 있습니다. 그 근거로 대동계 조직 자체가 역모의 증거라는 직접적 증거가 되기 어려우며, 정여립 본인을 직접 잡아 문초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정철 등 서인 세력들이 사건을 의도적으로 확대하여 권력을 장악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