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립은 선조 때인 1589년 역모를 꾀하였다는 고변 때문에 역모 사건에 연루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여립이 대동계를 조직하고 반란을 준비했다는 주장은 있었지만 실제로 모반을 기획한 것은 아닙니다.
즉, 황해 감사 한준의 고변으로 시작되었지만 정여립의 모반을 입증할 확신한 문서나 무기 같은 물증은 충분히 남아 있지않았습니다.
하지만 한준의 고변이 있게된 이유는 서인이 정권을 되찾기 위해 정여립을 이용한 것입니다. 이 사건(기축사옥)으로 약 2년 동안 1000여명의 동인계 인사가 처벌받은 것에서도 붕당간의 권력 쟁탈을 위해 정여립을 모함한 것이라는 근거입니다. 즉 단순한 역모 사건이라기보다 붕당 간 정치투쟁과 숙청의 성격이 강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