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역사를 파악하는 데 있어 중국 역사서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고대 기록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고조선과 삼한이 까마득한 과거로 지나간 후인 고려시대(12~13세기)에 쓰였습니다. 반면, 중국의 역사서들은 그 시대를 직접 보고 들으며 기록한 '동시대(교차) 기록'이기 때문에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고조선과 삼한 시대의 우리 자체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자가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전쟁(고조선 멸망 등)을 거치며 실전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당시 중국은 사관을 두고 주변국과의 외교, 전쟁, 풍습을 꼼꼼히 기록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조상들의 삶을 알기 위해 중국 측 기록을 뒤져야 하는 상황인 것이죠.
《사기 (史記)》 (한나라 사마천 저)
위만조선이 어떻게 세워졌고, 한나라 무제와 어떻게 1년간 치열하게 싸웠는지, 그리고 고조선의 지배층 내부 분열로 망하게 되는 과정이 매우 상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위나라 진수 저)
초기 국가들(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의 풍습이 소름 돋을 정도로 자세히 나옵니다.
"삼한 사람들은 제사장을 '천군'이라 부르고 소도라는 신성지역에 살게 했다", "신지, 읍차 등의 지배자가 있었다", "5월과 10월에 씨뿌리기와 추수를 마치고 계절제를 지내며 술 마시고 춤을 추었다" 같은 내용이 전부 이 책 한 권에서 나온 것입니다.
《한서》
고조선의 유명한 법률인 '8조법(범금8조)' 중 남아있는 3가지 조항(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 등)이 바로 이 책의 지리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