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고조선부터 삼한시대 삼국 초기의 역사를 어느정도나마 아는것은 중국 역사서때문인가요?

세계 각국을 보면 2000년대 이전의 역사를 아는 나라들은 극히 드문데요

그런 소수의 나라중에서 우리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느정도는 알고 있는데요

우리가 고조선이나 삼한시대 삼국시대 초기 역사를 어느정도나마 아는것은 중국 역사서가 이웃나라들에 대한걸 기록했기 때문이죠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우리가 고조선부터 삼한, 삼국 시대 초기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상당 부분 증국의 고대 역사서에 기록된 이민족 전 내용 덕분인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대 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고려 시대에 집필되었기 때문에 고조선이나 삼한 시대의 당대 실상을 직접 담은 1차 사료가 되지 못합니다. 반면 중국의 관찬 사서인 관자, 산해경을 비롯하여 사마천의 사기, 그리고 삼국지 위서 동이전 등은 기원전후 시기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기록했습니다. 특히 삼국지 동이전은 삼한의 사회 구조, 제천 행사, 풍습, 의복 등을 매우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이 시기 역사를 복원하는 데 절대적인 강점을 가집니다.

  • 그 시절 역사를 파악하는 데 있어 중국 역사서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고대 기록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고조선과 삼한이 까마득한 과거로 지나간 후인 고려시대(12~13세기)에 쓰였습니다. 반면, 중국의 역사서들은 그 시대를 직접 보고 들으며 기록한 '동시대(교차) 기록'이기 때문에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고조선과 삼한 시대의 우리 자체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자가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전쟁(고조선 멸망 등)을 거치며 실전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당시 중국은 사관을 두고 주변국과의 외교, 전쟁, 풍습을 꼼꼼히 기록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조상들의 삶을 알기 위해 중국 측 기록을 뒤져야 하는 상황인 것이죠.

    《사기 (史記)》 (한나라 사마천 저)

    위만조선이 어떻게 세워졌고, 한나라 무제와 어떻게 1년간 치열하게 싸웠는지, 그리고 고조선의 지배층 내부 분열로 망하게 되는 과정이 매우 상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위나라 진수 저)

    초기 국가들(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의 풍습이 소름 돋을 정도로 자세히 나옵니다.

    "삼한 사람들은 제사장을 '천군'이라 부르고 소도라는 신성지역에 살게 했다", "신지, 읍차 등의 지배자가 있었다", "5월과 10월에 씨뿌리기와 추수를 마치고 계절제를 지내며 술 마시고 춤을 추었다" 같은 내용이 전부 이 책 한 권에서 나온 것입니다.

    《한서》

    고조선의 유명한 법률인 '8조법(범금8조)' 중 남아있는 3가지 조항(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 등)이 바로 이 책의 지리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