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상담
창백한꾀꼬리65
‘“우리”라는 표현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라는 표현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우리’라는 말이 늘 따뜻한 말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공동체적이고 정서적으로 포근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무적으로, 관계의 구조 안에서 보면 이 말은 때로 집단 정체성으로 개인을 압박하는 프레임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자기 기준이 약하거나, 혼자 서는 힘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집단 언어를 과하게 붙잡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종종 성실해 보이고, 애사심이 있어 보이고, 조직적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확신보다 집단의 승인과 소속감에 더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들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우리가 뭘 잘못했냐”
“우리 회사는 원래 이래”
“우리 다 그렇게 생각해”
이 말들은 얼핏 집단 전체의 입장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특정 개인의 판단이나 감정을 집단의 목소리로 포장하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책임을 흐리고, 듣는 사람은 홀로 분리됩니다.
결국 상대는 ‘이상한 사람’, ‘우리와 다른 사람’으로 고립되기 쉽습니다.
더 문제는, 실제로는 특정인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으면서도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해 그 힘의 출처를 감춰버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직장 내 따돌림, 조직 내 배제, 사회적 압박의 현장에서
‘우리’라는 표현은 유난히 자주 등장합니다.
저는 바로 그 지점이 불편합니다.
‘우리’라고 말하는 순간, 정작 ‘나’는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회사”
“우리 팀”
“우리 업무 ”
“우리 가족”
“우리 아내”
“우리 남편”
이런 표현은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들리지만, 때로는 그 안에서 개인의 감정과 판단, 책임이 지워지기도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반대로 저는 이런 표현이 더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회사”
“나의 동료”
“나의 아내”
“나의 아이”
“나의 마음”
이 말들은 소유를 과시하는 표현이 아니라,
내가 관계 속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나는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판단하는지,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지 분명히 하는 언어입니다.
‘우리’ 속에 무조건 흡수되지 않고, 나의 자리와 나의 목소리를 잃지 않겠다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건강한 관계는 ‘우리’를 먼저 강요하지 않습니다.
먼저 ‘나’가 분명히 서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이 분명한 사람들끼리 만났을 때 비로소 건강한 ‘우리’가 만들어집니다.
반대로 건강하지 못한 관계는 ‘나’를 지워버리고 ‘우리’를 먼저 요구합니다.
소속을 강요하고, 동조를 충성처럼 포장하고, 다름을 배신처럼 취급합니다.
제가 아는 한 지인은 가족과 다툴 때도, 부부싸움을 할 때도, 심지어 아이와 부딪힐 때조차 “우리가 뭘 잘못했냐”고 말하곤 한다는 거에요
그러나 그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우리’라는 방어막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돌아보는 태도였을 것입니다.
개인이 감당해야 할 책임의 자리에 집단을 세우는 순간, 관계는 해결이 아니라 방어로 기울어집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함께의 언어가 아니라, 책임을 숨기는 은폐의 언어가 됩니다.
그 지인 처럼 어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그렇게
‘우리’ 안에 들어가려 합니다.
그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소속은 보호막처럼 느껴지고, 배제는 생존의 위협처럼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사랑의 말이 될 수도 있고, 폭력의 장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단 하나 일지모릅니다
‘우리’ 안에 정말 ‘나’는 존재하는가?
우리’는 연대의 언어일까요, 아니면 방어의 언어일까요? 왜 사람들은 갈등 앞에서
’나 ‘대신 ’우리‘를 내세우며 증명하려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