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은 1896년 2월 일본의 탄압에서 벗어나 아관파천을 단행했습니다. 하지만 1년 후인 1897년 2월 러시아 공사관을 나와 경복궁이나 창덕궁으로 가지 않고, 경운궁에 머물었습니다.
그가 경복궁으로 가지 않은 것은 을미사변이 일어난 장소이고, 다시 일본의 위협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경운궁 주변에는 러시아, 미국, 영국 등 외국 공사관이 모여 있어 일본이 함부로 고종을 협박하거나 개입하기 어려운 지역에 있었습니다. 즉 위급할 때 서양 열강의 외교적 보호를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운궁은 새 왕궁으로 하고, 주변 열강의 공사관이 가까워 근대적 개혁 정책을 추진하기 유리한 장소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