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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메이지 유신후 일본왕궁은 교토에서 도쿄로 옮긴건가요?

일본왕들이 교토에서 자리를 잡은후 천년이 넘게 일본왕궁은 교토에 있었는데요ㅡ 이런걸 메이지 유신후 일본왕을 도쿄에서 살게 했는데 왜 그렇게 한건가요??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당시의 에도(동경)은 이미 세계 최대급 도시 중의 한 곳이었습니다. 이 곳으로 당시 상징적이었던 천황을 옮김으로서 메이지 유신을 추진하는데 탄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쿄토 지방은 아무래도 전통,보수 세력이 장악하고 있어 유신 추진이 어려우니가요.

    풍수적으로 보면 쿄토는 전통적인 배산임수의 형태라서 안정적인고 보수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반면 동경은 안정성은 떨어지지만 남동쪽으로 도쿄만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재물,정보의 교류,개방, 그리고 미래와 발전을 암시하게 됩니다.

    또한 동경은 예부터 수로가 많아 재물운이 좋은 곳입니다. 지금은 세계 주요 금융 도시 중 하나죠.

    수도를 이전한 후, 그들은 메이지 유신의 시행으로 빠르게 근대 국가로 올라설 수 있었고, 30여년이 경과한 시점에서는 당시 최강국이었던 러시아를 격파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합니다. 유럽을 제외하고 후발적으로 개혁,개방에 착수해 열강의 대열에 낀 나라는 일본이 유일합니다.

    하지만 풍수적으로 동경은 안정성이 쿄토에 비해 떨어지는 점이 문제인데..

    군사적인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그들이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한 때는 중국 동남부,인도네시아, 베트남,태평양 섬등까지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갑니다. 하지만 폭주는 계속될 수 없었고, 미국의 참전과 함께 군국주의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풍수적으로 본다면 현대 사회에서 동경이 좋은 곳이지만 한번씩 폭주할 우려는 있겠습니다.

  • 교토에는 보수적인 공가 세력이 많아 신정부의 개혁 정책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들과 물리적 거리를 둠으로써 천황을 중심으로 한 중앙 집권적 통치 체제를 보다 원활하게 구축하고자 했으며 교토는 서쪽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근대 국가로 나아가며 북쪽을 개척하고 국력을 집중하기 위해 국가의 중심부에 위치한 도쿄가 수도로서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