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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에 나온 대회전이란 전술은 실제 존재하던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 답변 주시는 분들 미리 감사드립니다.

최근 고려거란전쟁을 보고 있는데

대회전이란 전술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실제로 역사에 기록된 전술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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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018년 12월 초 소배압이 이끄는 거란의 20만 대군이 개경을 향해 침공하기 시작했습니다. 거란군은 흥화진, 삼교천 전투에서 패배하고, 고려의 청야 전술로 개겨을 점령하지 못하고 1019년 1월 후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019년 2월 10만 거란군이 귀주에 도착하고,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도 귀주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나라 대군은 두 하천을 건너 배수진을 치고 대회전을 하게 됩니다. 귀주대첩, 대회전에 대한 역사 기록은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거란) 군사들이 다하, 타하 두강을 건널 즈음에 추격하는 고려의 군사들이 쫒아왔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고려의 군사들로 하여금 두 강물을 건너게 한 다음 공격하려고 했다. 그런데 야율팔가 혼자서만 안된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적들이 만약 두 강물을 건너게 되면 반드시 결사적으로 싸울 것인바, 이는 위태로운 방법입니다. 그러니 두 강물 사이에서 치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소배압이 그 의견에 따라 두 강물 사이에서 싸웠다.'(요사 권 80)

      '...2월에 거란의 병사가 귀주(龜州)를 지나자 강감찬 등이 동교(東郊)에서 맞아 싸우는데 양쪽의 군대가 서로 비슷하여 승패가 결정되지 못하였다. 그런데 김종현이 군사를 끌고 달려오자 갑자기 비바람이 남쪽으로부터 와서 군대의 깃발이 북쪽을 가리켰다. 아군이 기세를 타고 용기백배하여 격렬히 공격하니 거란병이 패하여 달아났다. 아군이 추격하여 석천(石川)을 건너 반령(盤嶺)에 이르니 시신이 들을 덮고 사로잡은 사람⋅말과 낙타⋅갑옷⋅무기를 모두 헤아릴 수 없었다....'(고려사 권94, 열전 강감찬)

      이상과 같이 귀주 대첩은 두 강물 사이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대회전에서 고려군이 거란 10만 대군을 격퇴한 전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