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단 기간에 금식 외에 또 무엇을 지켜야 하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슬람에서 무슬림이 지켜야 할 5대 의무 중 하나에 속하는 달로 이 달 동안은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해야 하며담배와 성관계 및 자위행위도 이 기간 동안에는 금해야 한다. 가톨릭과 정교회에는 이와 비슷하지만 다소 느슨한 사순절이 있어 이와 비교해 보면 좋다. 개신교에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고난주간이라는 개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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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불기2567년 부처님오신날이라고하던데 불기의 기준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불교의 기원은 석가모니가 타계한 연도, 즉 입멸(佛滅) 연도로부터 시작되므로 불기는 석가모니가 입멸한 이후부터 경과된 햇수를 가리킨다.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현재 신앙의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불기는 남방불교권에서 전설적으로 통용되어온 전통을 채택한 것이다. 남방의 불교국가들은 1956년이 불멸 2,500년이라 하여 대대적인 행사를 개최했는데, 이를 계기로 남방불교의 불기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한국 불교는 1967년부터 세계불교도우의회(WFB)의 결의에 따라 이 불기를 따르고 있다. 이에 의하면 입멸 연도는 BC 544년이며 석가모니의 생존 기간은 80년이므로 출생 연도는 BC 624년이 된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로서의 연대 추정은 그 자료의 선택에 따라 크게 양분되는데, 남방불교의 자료를 채택할 경우가 북방불교의 자료를 채택할 경우보다 100여 년이 앞선다.입멸 이후 매년 안거가 끝날 때마다 율장에 점을 찍어 표시했다는 중성점기설(衆聖點記說)이나 스리랑카의 사료를 근거로 하는 남방설의 경우, 입멸 연도는 BC 480년대가 된다. 인도 최초의 통일국가를 건설한 아소카 왕의 즉위 연도가 입멸 후부터 100~160년이 경과된 후라는 논서들의 기록을 근거로 하는 북방설의 경우, BC 380년대를 입멸 연도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이러한 견해 차이는 아소카 왕의 즉위 연도가 다르게 전하는 데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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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이 무슨 사건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학계에서는 이를 제 1차 중·영전쟁으로 부른다. 전쟁의 빌미가 된 것은 아편문제였으므로 일반적으로는 아편전쟁이라고 부른다. 영국에 대한 중국의 최대수출품은 차였고, 영국의 주요수출품은 모직물과 인도 면화였다. 영국은 차 수입을 결제할 은이 부족해지자,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지방무역상인을 통해 청에 밀수출하여 벌어들인 은으로 차를 수입했다. 이는 청의 농촌경제 파탄과 국가 기능의 마비, 은 유출로 인한 재정 궁핍을 초래했다. 이에 황제는 임칙서를 광둥에 파견했고, 그가 아편을 모두 몰수·파기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자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나며 중국은 최초의 불평등 조약인 난징 조약을 체결했고, 이는 중국에 대한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의 발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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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은 실제 있었던 일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아닙니다. 실제 있었던 우리나라 3대 대첩중 하나입니다.612년(영양왕 23년),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의 대표적인 전투. 살수에서 고구려의 을지문덕의 주도 아래 이루어낸 대첩이자 한국전쟁사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승전 중 하나이다. 흔히 강감찬의 귀주 대첩,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과 함께 한국사 3대 대첩이라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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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토지제도중 시정 전시과와 개정전시과, 경정전시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개정전시과의 특징은 첫째, 전지의 지급기준에서 인품이 빠지고 관직의 높낮이가 기준이 되었다는 점이다.이때는 모두 18등급으로 나누어 등급별로 해당관직과 전지지급애액을 규정했다.무반직과 문반직을 차별했다. 일례로 무반 정3품 상장군은 5과의 대우를 받는 데 반해, 문반 정3품은 4과의 대우를 받았다. 산직(散職)인 경우는 격차가 더욱 심했다. 셋째, 시정전시과에서는 한외과(限外科)로 분류되었던 잡색원리·유외잡직이 16과와 18과 사이로 편입되었다. 넷째, 마군(馬軍)과 보군(步軍)이 수급대상에 포함되었다. 이는 고려의 병제가 정비된 결과를 반영한 것이다. 다섯째, 시정전시과에서는 모든 품등에 전지와 시지가 지급되었으나 개정전시과에서는 16이하에는 전지만을 지급했다.경정전시과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과별로 전지의 지급액을 축소했는데, 특히 시지가 현저히 감소했다. 둘째, 무반의 등급이 상승했는데, 등급별 지급액이 축소되어 실제 지급액에는 큰 차이가 없다. 셋째, 산직이 제외되었다. 넷째, 개정전시과에서 빠졌던 향직이 포함되었는데, 지급대상은 대상(大相:4품)·원윤(元尹:6품)뿐이고 나머지는 제외되어 있어 이 점이 의문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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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서원을 정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고종 때 서원이 당파싸움의 뿌리라는 이유로 흥선대원군이 내린 서원철폐령의 실체가 처음 확인됐다.고종실록에 따르면, 대원군은 서원철폐령(1868ㆍ1871년)을 내려 전국의 미사액ㆍ사액서원(약 1700여곳)을 47개소(사액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폐를 명했다.이번 사액(1711년, 숙종37) 관산서원 사당터 조사에서는 온전히 확인된 매납시설을 통해 서원을 철폐하고 신주를 묻은 역사적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관산서원은 창녕에서 유일한 사액서원이자 영남5현(嶺南五賢, 김굉필ㆍ 정여창ㆍ이언적ㆍ이황ㆍ정구)의 한 분으로 숭앙(崇仰)된 영의정(추증) 문목공 (文穆公) 정구(鄭逑, 1543~1620년)를 기려 그가 사망하자 세운(1620년, 광해군12)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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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때 미국이 조약을 무시하고 무력개입을 한 이유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과 미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전쟁.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 대한 항의와 조선의 강제 개항을 목적으로 1871년 미군이 강화도를 침공한 사건이다.미국은 일본을 강제 개항시킨 흑선 사건을 통해 포함외교(gunship diplomacy)를 한 뒤, 조선도 마찬가지로 수월하게 개항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판단에는 조선군의 전투력이 별볼일 없을 것이라는 판단도 한몫했는데, 맞는 사실이었으나 순순히 문을 연 일본과는 달리 격렬하게 저항했기 때문에 약탈군을 이끄는 로저스 제독도 당황했다.배 구경만 시켜주었을 뿐인데 알아서 오픈한 일본의 선례도 있으니 행동 개시 전에 한번 찔러볼 요량으로 신미양요 발발 직전인 1871년 2월 21일에 제너럴 셔먼호 사건의 공동 조사와 통상 요구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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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정변에 관해 궁금한점들을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당시 4.19혁명으로 장면총리 정부가 출범했는데, 그동안 이승만 시절에 억눌려 있던 사회불만,혼란이 폭발하면서사회가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이때 이사회 혼란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게 5.16 쿠테타의 명분입니다.또한 육사선배들은 6.25를 통해 승진(육군참모총장)을 빨리했지만 3년후배(중령)는 언제 승진할지 기약이 없어 벌어진 육사생들의 쿠테타이기도 하죠. 거기에 군 상층부의 부패도 한몫했습니다.역사적 의의는 또한번의 군사쿠테타를 가능하게 했지요. ㅠㅠ 얼마전에 반성과 사죄도 없이 죽은놈. 물론 손주가 사죄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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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 있어서 최초로 여성들의 참정권을 인정한 나라는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헌법인 ‘임시헌장’을 공표했고제3조에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무하고 일체 평등임'을 천명함.1919년 4월 25일에는 ‘대한민국임시의정원법’을 공포했는데, 여기서 여성의 참정권을 선언함.중등교육을 받은 만23세 이상의 남녀 모두에게 피선거권을 부여했음.이건 1920년 수정헌법 19조로 여성 투표권을 인정한 미국보다 빠름다른 아시아 나라들의 여성 참정권 인정 시기는 다음과 같음.1945년 - 일본1946년 - 중국과 북한1949년 - 인도이는 한국의 여성들이 항일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로 보는 이들이 많다. 1898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인 ‘여권통문’을 발표하면서 여성의 정치참여권을 최초로 촉구한 이후 한일합병까지 체결되면서 여성들은 항일 독립운동과 함께 여성운동을 함께 전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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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서의 자화상에 관하여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윤두서의 자화상. 몸은 완전히 생략하고 얼굴만 확대하여 표현한 특이한 형식의 자화상으로 그 유례가 없다.날카로운 눈은 정면을 응시하면서 마치 자기 자신과 대결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굳게 다문 두툼한 입술에서 강인한 인상이 느껴진다. 얼굴의 수염 한올까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보는 이들을 압도시킨다. 일반적인 인물화들과는 달리 머리위의 탕건과 양 귀가 생략되어 있는걸로 보이고 독특한 그림이다.현재로서는 얼굴밖에 보이지 않는 그림이라서 한때는 윤두서가 얼굴만 그리고 나머지를 그리지 않은 미완성 작이거나 파격적으로 얼굴만 그린 실험작이라는 추론이 많았으나, 일제 강점기때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사료집진속" 제3권에 윤두서 자화상의 옛 사진이 실려있는데 그 사진에 보면 상반신의 윤곽이 뚜렷한 걸로 나타나 있다.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최첨단 기기를 동원해 정밀 조사한 결과 상반신의 의복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게다가 생략된걸로 여겨진 귀도 붉은선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상반신 의복 윤곽이 보이지 않게 된데에는 후손들이 표구를 잘못해서 그렇다는 의견이 설득력이 높다. 1960년대에 말려져 있던 이 그림을 펴서 표구하는 과정에서 그림을 두꺼운 배지에 그냥 붙여버린 탓에 상반신의 의복 윤곽선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보라서 함부로 손댈 수도 없는 상황이라 다시 표구를 한다는건 불가능하고 사진들을 보면서 실물을 감상할 때 상상력으로 결합하거나 그림을 모사한 다음에 옷부분도 같이 그려서 감상하는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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