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교육대라는 것은 언제 왜? 없어졌죠?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삼청교육대는 1980년~1981년에 진행된 군대식 수용소로, 당시 계엄 선포와 함께 시행된 특수 기구였습니다. 1981년 1월 24일 계엄 선포가 종료되면서 삼청교육대도 없어졌지만, 당시 A급 사범과 B급 사범으로 분류된 인원들은 1~5년간 강제 노역형에 쳐해지기도 하였습니다.그리고 삼청교육대를 수료한 인원들은 관심사범으로 등록되기도 하였기에, 억울하게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사람들은 현재까지도 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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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상반기 380만명, 이 인기 비결이 뭘까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정확하게 이거다! 라고 하긴 어렵기에, 개인적인 생각으로 답변드리겠습니다.개인적으로는 2018년 이후로 거의 매년 6~7회 정도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우선 전시 방식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각 시대별 유물들을 많이 전시하기 위해서였는진 모르지만 전시 공간이 거의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유물 자체에 대한 설명은 상세하게 있었지만, 당시의 역사적 흐름이나 시대상은 반영이 잘 안된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와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이 정말 친절해졌습니다. 전시되는 유물의 절대적인 양은 줄었을지는 몰라도, 당시의 시대상과 그것을 설명하는 유물, 그리고 역사적 흐름을 정말 잘 이어놓게 만들어 놓았다고 느껴집니다.그리고 현재 박물관이 일종의 예술관 처럼 느껴지게 잘 만들어 두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유의 방에 가보면, 진짜 경건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스타에서 핫플로 안내되기도 하여, 20~30대들도 많이 찾아오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성덕대왕 신종의 소리를 듣는 공간도 가보시면, 경건해지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것 입니다. 이처럼 단순하게 유물을 보는 공간이 아닌 예술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변모한게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게 된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마지막으로 블랙핑크 도슨트 콜라보라던가 분장놀이 같은 기획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보면 외국인들도 정말 많이 볼 수 있는데, 케데헌에 나왔던 호랑이 기념품이라던가 달항아리 / 반가사유상 등 기념품들이 정말 인기가 많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게 컨셉을 잘 잡은 기획도 크게 한 몫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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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이 청일전쟁까지 이어진 이유가 뭔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동학농민운동은 그 규모 자체가 어마어마하였고, 당시 조선 정부는 이를 막을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고종은 청나라에 파병 요청을 하게 되는데, 당시 제국주의 확장을 꿈꾸던 일본이 이때 같이 들어옵니다. 임오군란의 배상금을 요청했었던 제물포 조약에 일본 공사를 지킬 병력이 상주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를 빌미로 들어오게 된 것 입니다.동학농민운동이 결국 실패고 끝나게 되고, 청군은 철군을 하려고 하였지만 일본군은 남아서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였습니다. 청군이 공동 철군을 일본군에 제의하면서 남아있게 되자 일본군이 조선 영토에서 먼저 청나라 군대를 공격하였고, 이것이 청일전쟁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게 됨으로써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은 없어지게 되고, 일본이 주도하여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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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문명은 어떤 문명들을 칭하나여? 답글 바랍니다만…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문명의 어원은 도시에서 왔습니다. (라틴어 civitas ->Civilization) 즉 도시를 중심으로 사회가 형성된 것을 문명이라고 부릅니다. 위에서 서술해주신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황허(중국) 문명은 세계 4대 문명이라고 불리우는 문명입니다. 각 지역에서 최초로 형성된 문명이며, 이들이 발전~전파되어 세계 각국으로 퍼져갔기에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그리고 어원에 따라서 한다면 "고대 문명"은 말 그대로 고대 시대의 문명들을 모두 아우르는 말입니다. 즉 이후에 생겨난 그리스 문명, 로마 문명, 페르시아 문명 등등 수많은 문명들도 고대 문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모두 도시를 이루고서 성장하였고, 고대 시대에 있었으니까요. 고대 문명의 마지막이라고 한다면 흔히 중세시대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서로마 제국의 멸망부터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전의 문명들은 모두 고대 문명으로 볼 수 있구요.연구자들에 따라서 중세의 시작을 다르게 보기도 하지만, 가장 정설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인한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시작아로 이후 크리스트교 중심의 중세 국가들의 건립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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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은 조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을미사변을 일으킨 것 자체가 일본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협박성 메세지였습니다. 당시 조선은 명성황후와 고종이 주도하여 친러의 방향으로 가려고 하고 있었고, 이에 일본은 조선에서 영향력이 약해질까 두려워했습니다. 이에 자신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인 명성황후를 대놓고 죽임으로써 고종에게 강력한 메세지를 남겼습니다. (다음은 너다 같은 메세지로 볼 수 있습니다.)이후 일본은 고종에게 노골적으로 친일성향 중심의 내각을 만들기를 종용하였고, 실제로 김홍집을 필두로한 내각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신변에 두려움을 느낀 고종은 러시아로 도망가는 아관파천이 일어나게 됩니다. 고종은 외세를 외세로 막기 위해서 한 선택이긴 하였지만, 이로 인해서 많은 이권들을 해외 세력들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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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이 비잔틴 제국의 모체가 되었다던데 비잔틴 제국과 로마제국은 어떤 부분에서 닮았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비잔틴 제국은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리되어서 만들어진 동로마제국에서 시작한 나라입니다. 그렇기에 로마제국을 이어서 건국되었다고 하는 정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로마제국은 이전까지는 원로원이 중심이 되는 원수정 중심의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황제 중심의 전제정으로 변경하였고, 나중에는 넓은 영토를 통치하기 위하여 각각의 군주가 다스리는 사두정 체제로 변모하였습니다. 중앙집권화를 위하여 영토를 나우어 다스리는 사두정 체제가 로마의 분열을 가져왔고, 공식적으로 선포하진 않았지만 서방제국과 동방제국은 각각 서로마제국, 동로마제국으로 따로 통치하게 됩니다. 이때 국호는 서로 똑같이 로마제국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이후 서로마제국이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인하여 멸망하게 되면서 동로마 제국만 유일한 로마제국으로 남아있게 되었고, 이후 비잔틴 제국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면서 비잔틴 제국이 로마제국의 정식 후계자다 라고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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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라는 오로지 왕들만 해당되었는지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이집트 시대의 미라 문화는 왕족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가능한 작업이었습니다. 실제로 일반 시민의 무덤에서 미라화된 시신이 발견되기도 하였고, 미라 중에서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의 미라도 발견되었습니다. 즉 미라를 하는 것에 대해서 왕족만 가능하다는 강제성은 없었습니다. 당시 미라 작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군이 있었다고 하니, 상당히 사용화된 풍습이었습니다.다만 비용적인 측면에서 미라화의 비용이 워낙 높긴 하여서 일반 시민들은 간소화하는 방식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박물관이나 현재까지 보존된 미라는 방부처리를 잘 하고 보존도 잘 해낸 왕족들의 미라들이 많이 남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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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평 운동이 진주에서 일어난 배경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형평운동은 진주에서 만들어진 단체인 형평사가 주최한 신분 해방 운동이었습니다. 당시 형평운동이 진주에서 일어난 이유는, 그 지역에서 백정들이 많이 거주하였기 때문입니다.백정들은 삼남지방, 즉 지방에 많이 거주하였는데 특히 진주쪽에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진주의 지리적 위치 자체가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쪽에 위치하고 있기도 하고, 또 항구가 있기에 많은 인구들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형평운동이 일어났던 1920년대에는 사회운동와 인권 교육이 활발했던 시기이기도 하였습니다. 진주는 지리적으로도 외부의 이념들이 들어오기 좋기도 하였기에, 자연스럽게 형성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형평사 자체가 백정 뿐만 아니라 진주 지역의 사회운동가와 유지들도 참여하여 진행하였기에, 이러한 단체가 중심이 되어 진주에서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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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문명 중에는 어떤 문명이 있나여?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근대 문명은 어떤 문명이다라고 따로 정해놓진 않고 있습니다. 근대라는 뜻 자체가 중세와 현대를 잇는, 그 중간의 기간을 근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문명의 뜻은 물질, 기술, 사회적으로 발달한 인간의 집단을 뜻합니다. 그로 인해 "근대 문명" 이라고 하면 근대 시대에 있던 모든 인간 공동체를 근대 문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근대시대에는 거의 대부분의 인간 사회가 나라로 구분되어 있으면서, 민족이나 종교로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나라로 보았을때는 한국과 일본, 중국이 구분되지만 동아시아 문화권으로 보면 하나의 문화권으로 볼 수 있고, 또 종교로 보면 유교문화권으로도 묶이기도 하는 것 처럼 근대에서는 문명의 범위를 나누기 어려워지기도 하였습니다.그나마 근대 시대에 발달한 서구권 문화를 근대 문명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것 또한 상대적인 개념이라서 대표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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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침략과 삼별초 항쟁에 대해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삼별초는 당시 고려의 중심 세력이었던 최시 무신정부의 사병집단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단순한 군사 단체가 아닌 어느 정도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군사 조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삼별초가 제주도에서 항쟁을 할 시에, 왕족을 내새워서 새로운 고려 왕을 앉히기도 하였습니다. 즉 고려의 입장에서는 반란이기도 하였습니다.몽골은 고려를 복속시킨 후 다음 목표는 일본이었습니다. 즉 일본으로 출정하기 위한 전초기지가 고려였던 셈 입니다. 그런데 일본을 가기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제주도에 삼별초(반란군)이 있으니 이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일본 정벌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려 왕실에서도 반란군의 성격인 삼별초를 없애달라고 하기도 하였구요.몽골이 삼별초를 제주도까지 가서 공격한 이유는 고려에 대한 지배력 강화+일본 진출을 위한 교두보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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