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서그런데요 국경일의 관한질문인데요.
제헌절은 1948년 7월 17일 헌법 공포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따라서 2026년 제헌절 78주년입니다. 이날에 사이렌은 울리지 않습니다. 보통 사이렌은 현출일 같은 국가적 추념 행사에 울립니다.제헌절은 1949년 국경일지 공휴일로 지정되었으나 2008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됬습니다. 즉, 2008년부터는 제헌절은 국가 기념일이지만 공휴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2026년 헌법 제정의 의미를 되새기고 5대 국경일을 모두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의견을 모아 국회와 국무회의를 거쳐 공휴일로 재지정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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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과거를 미화하는 경향이 있을까요?
인간이 과거를 미화하는 아주 자연스러운 심리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회상 왜곡입니다. 사람은 과거를 떠올릴 때 그 시점의 사실을 그대로 꺼내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감정과 지금의 상태를 뒤섞어 재구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인간은 선택적 기억을 합니다. 기억 전체를 떠올르는 것이 아니라 선명한 장면이나 즐거운 장면이 부각됩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정체성 보호에 기인합니다. 과거의 좋은 기억을 통해 현재의 흔들림을 견디는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즉 힘든 현재일 수록 과거가 더 안전하고 따듯하고 느껴져 미화하는 것입니다.사회적으로는 이런 현상이 세대간 불신을 키우고 옛날이 더 좋았다라는 식의 '나때' 현상을 비교를 늘릴 수 있습니다. 반면 적당한 향수는 위로와 소속감을 주는 긍정적 역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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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왜 당나라와 손을 잡고 같은 민족인 백제, 고구려를 공격했나요?
6세기 신라가 한강 유역을 장악한 이후 백제와 고구려의 공격으로 신라는 궁지에 몰렸습니다. 특히 7세기에는 백제의 압박이 심해 하루도 편한 날이 없을 정도로 신라는 위기였습니다. 신라는 백제의 공격을 모면하기 위해 우선 김춘추를 보내 고구려의 협조를 구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는 수나라를 대신하여 중원을 지배했으며, 이후 당에 위협적인 고구려를 제압하려 하였으나 실패했습니다. 그 당시 신라가 고구려의 협조 외교에 실패하고 당에게 협력을 요청한 것이고, 당의 상황과 일치하여 648년 나당 연합군을 결성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신라가 민족을 배신했다고 볼 수 있지만 7세기 삼국시대 관점에서는 같은 민족이라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정치 핵심은 혈연적 민족성보다 국가 생존과 영토 확장, 패권 경쟁이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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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은 언제부터 겨울 간식으로 자리잡게 된건가요?
붕어빵의 원형은 일본의 도미빵에서 왔는데, 이 것이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붕어빵으로 변경된 것입니다. 1950~60년대 밀가루 공급이 늘면서 값싸고 배를 채우기 쉬운 서민 간식으로 퍼져나갔으며, 70년대 이후 겨울철의 노점 간식으로 유행했습니다.특히 겨울은 뜨거운 음식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계절이라 더욱 눈에 띄기 쉽습니다. 붕어빵은 반죽을 틀에 넣어 바로 구워 내어 따뜻하고, 달콤하여 어린이, 성인들의 간식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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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왜 대한민국(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하지 못했나요? 궁금합니다.
영국도 조선에 대한 문호 개방을 요구하였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이 조선의 식민지화까지 않은 것으로 판단합니다.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 암허스터호가 1832년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암허스트호 사건은 조선이 서양과 본격적으로 마주한 이양선이었습니다. 그리고 갑신정변 이후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1885 거문도를 점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조선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은 조선보다 중국 시장과 해상 교통로 확보, 그리고 인도, 홍콩, 말레이시아 등 이미 확보한 거점 유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또한 러시아 남하를 견제하는데 관심이 있었기 일본의 영일동맹을 통해 한반도를 활요한 것을 판단합니다. 즉, 영국이 한국을 식민지하지 않은 것은 중국 등에 집중하였기 때문이며, 러시아 남하를 견제하기 위한 영일동맹 카드로 활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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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아르헨티나는 역사적으로 사이가 좋았나요, 아니면 좋지 않았나요?
19세기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관계는 무역과 투자 덕분에 밀접한 관계였습니다. 아른헨티나는 영국의 자본과 무역에 크게 의존했으며, 철도, 금융, 항만 같은 분야에 영국 영향력이 매우 컸습니다.하지만 본래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포클랜드를 놓고 갈등이 있었는데, 아르헨티나가 독립한 이후에도 후계라는 논리로 영유권을 놓고 갈등했습니다. 이 갈등은 1982년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국내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섬을 점령하면서 전쟁이 벌어졌으며, 영국이 승리하면서 영국령이 되었습니다. 이후 두 나라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았지만 영토 문제에 대해서는 대립하는 양태를 보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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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사람들은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 유럽계 혼혈이 많은데도 평균 키가 대한민국보다 4cm 이상 작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궁금합니다.
맥시코는 스페인의 식민지로 백인과 원주민 혼혈인 메스티소 등 다양한 혈통이 생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유전적으로 라틴계인 스페인인의 평균키 자체가 남성 175~176, 여성은 약 163cm로 게르만 계열의 인종에 비해 적었습니다. 따라서 멕시코 혼혈인이라도 키가 혈통적으로 큰 키가 아닙니다. 그리고 키는 혈통 뿐만아니라 성장기 영양, 감염병, 의료, 위생, 소득 차이, 자연 환경 등 후천적 영향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유렵계 혼혈이 있어도 평균키가 크지 읺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반면 한국인은 수십년 동안 경제 성장과 의료 수준이 좋아 평균 신장이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멕시코 인들과 비교해서도 우위에 있다고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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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 시절 영국은 왜 남미의 스페인 식민지를 대부분 빼앗지 않았나요? 궁금합니다.
남미는 일찌기 스페인과 포루투갈이 진출하여 식민지화 하였으며, 이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유럽 국가들과 다투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를 전쟁을 위해 탈취하거나 지배하기 보다는 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는 편으로 관리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게다가 거리상으로 너무 멀고 광대한 대륙을 군사적으로 점령한 뒤 유지하는 비용이 컸을 것입니다.그리고 이후 19세기 스페인의 국력이 약화되었을 때도 남미를 점령하는 것보다는 독립운동이 성공하여 새로운 무역 시장으로 활용하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영국은 이들과 자유 무역을 확대하여 더 쉽게 시장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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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는 국경의 의미가 약해질 수 있을까요? 내용
과거의 국경은 국민의 이동은 물론이고 물류도 통행이 어려웠던 분리된 경계였습니다. 하지만 미래의 국경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약화되거나 변화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은 세계화와 디지털 기술 때문에 물리적 이동은 통제할 수 있어도 정보, 돈 등은 쉽게 이동할 것이라 봅니다. 즉, 예전처럼 단단한 '벽'보다는 선별적으로 통제하는 경계가 될 것입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은 국경을 넘어 협업하는 일을 쉽게 만들기 때문에 경제와 문화에서는 국경의 체감이 옅어질 수 있습니다. 반면 전쟁, 테러와 같은 충돌이나 팬더믹, 난민 등이 커지면 오히려 스마트한 안보 국경으로 관리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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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공통점은 무엇이 존재할까요?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인류는 직립 보행과 도구 사용, 언어를 사용하면서 환경에 적응해 진화했습니다. 인류의 공통점은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살아남고 관계를 맺고 의미를 만들려는 성향이 있다고 봅니다. 우선 배고픔, 두려움, 애정과 같은 기본 감정은 물론이고, 가족과 집단을 만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규칙과 질서를 세우려는 성향, 죽음과 고통을 설명하는 종교,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예술 욕구 등이 공통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공통점이 있기에 개인이 존재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즉 인류 보편적 공통점때문에 정체성을 안고 안정감을 느낍니다. 사회적 차원에서도 이런 공통점을 바탕으로 법, 종교, 교육, 문화 등을 만들면서 사회를 유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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