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왜 유럽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나요?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유럽을 변화를 초래한 것은 책을 대량으로 인쇄하여 지식을 퍼지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필사본 시대에는 책이 매우 희귀하여 지식은 성직자, 학자, 귀족들만 독점했습니다. 하지만 인쇄술은 그 장벽을 무너뜨린 것입니다.우선 인쇄술은 복제 비용과 시간을 금감시켰습니다. 손으로 필사할 때보나는 인건비가 매우 줄고, 속도도 빨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싼값에 책을 구매하여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을 보급하여 사람들이 교회의 해석만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서도 신앙의 세계에 다다를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로 인해 교황, 성직자의 권위를 약화시켰습니다. 이는 르네상스, 인본주의, 과학혁명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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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나기는 한가요?
2026년 8월 현재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쟁을 지속하는 이유로는 전쟁을 끝내는 조건 자체가 서로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점령지와 안정보장 문제, 우크라이나는 영토 보전과 주권 회복을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민간인 피해가 계속 커지고 있으며, 군사적으로도 한번에 끝낼 수 있는 국면이 아니라 소모전이 되고 있습니다. 강대국들은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재정을 지원하고 있지만 병력을 직접 보내는 방식의 개입은 피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러시아와 직접 충돌하면 전쟁이 훨씬 커질수 있고, 핵 보유국끼리의 정면 충돌 위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나토 회원국이 아니어서 나토가 자동으로 개입할 의무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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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구소련에 속해 있었던 나라들의 언어와 문화차이
구소려은 러시아를 비롯한 15개 공화국이 연합한 대민족, 다언어 국가였습니다. 러시아가 공용어지만 각지역의 민족 언어와 종교, 문화는 달랐습니다.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동유럽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몰도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남카프카스에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젠이 있으며, 중앙아시아에는 카자흐스탄, 우즈베크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기스탄이 포함됩니다.언어적으로 우크라이나, 벨라루시는 러시아와 함께 동슬라비아 언어지만 에스토니아어는 러시아어와 계통이 다르며, 조지아어도 완전히 다른 계열입니다. 중앙아시아는 카자흐어, 타지크어 등 다양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문화도 다른데, 발트 지역을 유럽의 북동부 성격이 강하고, 남카프카스는 코카서스 문화권 색채가 강합니다. 그리고 중앙아시아는 이슬람 문화와 유목 전통의 영향이 큽니다. 다게스탄과 체첸은 지역명이지만 현재는 러시아 연방 안의 공화국입니다. 두 공화국은 독립국가는 아니며, 러시아에 속한 자치 공화국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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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날짜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지적한 대로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1945년 8월 15일에 일본군이 모두 철수한 것은 아닙니다.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의사를 발표했으며, 9월 2일 도쿄만 미주리함에서 항복 문서를 조인했으며, 9월 8일에 미군이 인천항에 상륙했습니다. 그리고 9월 9일 한국내 일본군과 총독부가 미군에 공식 항복한 것은 사실입니다.따라서 8월 15일은 엄밀히 말하면 일본군의 패전 시작일이며, 9월 9일이 한반도 남부에서 일본군의 통치권이 공식적으로 이양된 날이라고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8월 15일은 우리 민족이 공식적으로 식민지배가 끝나기 시작한 상징적 전환점으로 광복절의 의미가 충분하며, 9월 9일은 별도로 기념하거나 역사 교육에서 강조한 부분으로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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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일본보다 먼저 징병제를 실시했다면 일제강점기가 없었을까요?
흥선대원군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흥선대원군이 반대로 근대화 정책을 추진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징병제도 마찬가지입니다.하지만 징병제 하나만 가지고 조선의 국력의 큰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고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징병제 실시로 병력 규모는 커졌을 것이며, 서양식 무기와 군사 훈련의 조기 도입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러시아, 일본의 침략에 대한 저항력이 증가했을 것입니다.즉, 흥선대원군이 일본보다 먼저 징병제를 실시했다면 조선의 군사력과 국가 통합력이 강화되고, 일본의 침략을 늦추거나 더 강하게 저항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징병제 하나로 일제 강점을 막을 수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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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관련하여 이슈가 많은데 재산을 몰수하면 국가에 귀속되나요?
친일반민족 행위로 축적된 재산에 대한 몰수가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2005년에 제정되어 2006년에 시행되기 시작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얻은 토지, 건물 재산, 친일 재산임을 알면서 후손이나 제 3자가 증여받은 재산, 친일 재산을 처분하고 얻은 대금 등에 대해서는 몰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일반적인 형사상 '몰수'라기 보다는 처음부터 국가 소유였던 보아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입니다. 반면 친일행위자로 해도 후손이 정당한 노동, 사업, 상속 등으로 얻은 재산까지 일괄적으로 몰수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핵심은 “친일파의 가족 재산 전부를 빼앗는가”가 아니라, “일제 협력의 대가로 형성된 재산을 밝혀 국가에 환수하는가”입니다. 최근 제도나 조사기구의 재가동 여부처럼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은 별도의 법률 개정과 시행 상황을 확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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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기록이 서로 다를 때는 어떻게 검증하나요?
역사적 기록은 당시 모든 일을 빠짐없이 적는 일기는 아닙니다. 왕실과 관청의 행정 문서, 전쟁 보고서, 외교 문서, 편지, 비문 등을 역사가들이 모아 정리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중요한 사건은 날짜와 함께 기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적인 것은 일일이 날짜를 기록하지는 않습니다.기록이 서로 다를 때는 어느 하나만 무조건 믿지 않고 먼저 문서가 실제로 그 시대에 작성된 것인지 확인합니다. 그리고 당시 관직명, 지명 등이 시대와 일치하는지도 대조합니다. 그리고 작성자가 사건을 직접 목격했는지 확인하고, 어떤 목적과 입장에서 기록했는지 정치적 편견이나 과정이 없는 분석합니다. 후대 학자들은 1차 사료에 신뢰를 가지고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여러 자료의 독립적 일치가 중요하기 때문에 왕조 기록과 외국 사신 기록, 묘지명, 고고학적 발굴 결과 등과 비교 분석하여 사건에 대한 신뢰도를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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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텍 문명은 왜 인신공양을 국가적 종교의식으로 삼았나요?
아즈텍인들은 신들이 자신을 희생하여 태양과 세계를 만들었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인간도 피와 생명을 바쳐 신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인신 공양이 거행된 것입니다. 특히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태양의 운행과 우주의 질서가 중단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인신 공양이 살인이라기 보다는 세계를 작동시키는 종교적 의무로 정당화되는 것입니다. 또한 인신공양은 주로 전쟁 포로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정복 전쟁의 명분이 되기도 합니다. 전사에게 용맹과 명예를 증명하는 기히를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왕과 사제는 제사를 주관하며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존재로 자신들의 권위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사회 질서와 집단 정체성을 유지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즈텍의 인신 공양은 단순한 잔혹 행위라기 보다는 우주 질서에 대한 종교적 의무, 전쟁과 제국의 통치, 사제와 왕권의 권위가 결합된 제도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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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읽지않은사람이랑은 이야기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삼국지를 꼭 읽어야할 이유가 있나요?
흔히 말하는 삼국지는 진수의 정사 <삼국지>가 아니라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인물의 성격과 사건을 극적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충성과 배신, 명분과 실리, 신뢰와 의심, 인재를 얻고 활용하는 문제, 이상과 현실 등 인간관계가 작품 안에 폭넓게 등장합니다. 따라서 삼국지를 읽어보면 인간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략과 선택의 결과를 생각하게 합니다. 즉 삼국지를 통해 인간 관계, 전략, 처세를 알 수 있다는 의미로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이야기하지 말라'라고 할 정도의 과장적 표현이 생긴 것이라 판단합니다. 하지만 삼국지를 반드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이미 줄거리를 알고 있으며, 관련 대화에도 참여할 수 있다면 특별히 교양면에 큰 결핍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있을 때 경험해 볼만안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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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사형된 인물은 누구인가요?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제가 폐지된 나라로 평가됩니다. 즉 사형제는 있지만 실제로는 집행되지 않은 지 30년이나 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날은 1997년 12월 30일로 당시 전국 교도소 사형수 23명에 대해 교수형이 집행되었습니다. 당시 사형이 집행된 인물로는 김선자(음료에 독극물을 넣어 여러 사람을 죽인 연쇄독살사건), 김용제(여의도 광장 찰량 질주 사건), 김준영(경찰관 일가족 살해)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사형 집행은 중단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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