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 장군이 가지고 도주한 12척의 배가 없었다면 명량대첩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배설 장군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활동한 조선의 무신입니다. 그는 원균이 지휘한 조선 수군이 칠천량 해전에서 크게 패할 때 전선 일부를 이끌고 후퇴하여 12척의 배를 보존했습니다. 이후 이는 이순신 장군은 1척의 배를 더해 13척의 배로 명량해전을 치르는 중요한 전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순신 장구이 다른 배를 새로 만들거나 육지에서 병력을 모아 다른 방식으로 일본군을 막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과 자원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조선 수군의 마지막 핵심 전력으로 배설이 유지한 12척의 배를 바탕으로 한 것은 사실입니다.하지만 배설은 명량해전에 직접 참전하지 않고, 전쟁중 군영을 이탈한 혐의로 1599년 체포되어 처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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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당시 원균의 후손은 친일을 했나요?
임진왜란 당시 원균은 이순신이 파직되고 나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지만 칠천량 전투에서 패배하여 조선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원균은 이순신, 권율과 함께 선무공신 1등으로 책록되었으며, 좌찬성에 추증, 원릉군의 작위를 받았습니다. 비록 무능한 장수로 평가되지만 공적을 인정받은 인물입니다. 그리고 원균의 후손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어떻게 이어졌는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친일인명사전, 독립유공자 자료 등에 친일, 또는 독립유공자의 선친이 원균과 관련된 근거도 찾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친일 여부를 판단하기 곤란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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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시대의 마무리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은 경제 공황과 전체주의 등장으로 벌어진 세계 대전입니다. 하지만 이전의 1차 대전의 요인이 되었던 제국주의의 종식을 의미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영국, 프랑스 등 세계 열강은 급속하게 세력이 약화되었으며, 이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식민지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제국주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아, 아프리카 식민지들의 독립 계기가 되었습니다. 반면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초강대국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그러나 제국주의가 완전히 사라진것은 아닙니다. 식민지 지배가 무너진 뒤에도 미국과 소련은 냉전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따라서 2차 대전은 식민 제국의 붕괴를 초래했지만 미소 강대국 중심으로 새로운 국제 질서가 확립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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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한국을 향해 몽니를 부리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최근 행위는 한미 동맹을 끌내려는 것보다는 방위비, 무역, 무기 구매, 중동 문제 등에서 한국과 협상에서 양보를 얻어내려는 압박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강조하면서 한국을 배제한다면 한반도 안보에 위험이 생길 숭 있습니다.한국은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무조건 요구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침착하게 원칙적으로 대응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주한미국 지원과 한국의 방위 기여를 미국 정부에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방위비 부담 및 해외 군사 협력 등을 각각 분리하여 극익을 따져 대처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 판단합니다. 즉, 동맹은 유지하되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차분한 대처가 필요한 시기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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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수도였다는 익산은 얼마만큼 수도였나요.
일반적으로 백제의 확실한 수도는 한성, 웅진, 사비입니다. 하지만 무왕은 익산은 거점으로 국왕에 즉위하였기 때문에 임시 수도 또는 별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한성은 현재 서울로 백제 건국 이후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에 의해 함락될 때인 475년까지 수도였습니다. 그리고 문주왕이 급하게 옮긴 웅진은 538년까지 수도였으며, 성왕에 의해 천도한 사비는 이후 백제 멸망인 660년까지 수도였습니다. 익산이 수도였을 가능성은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 쌍릉, 오금산성 등을 통해 수도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삼국사기> 등에는 무왕이 수도를 익산으로 옮겼다는 기록은 전무합니다. 하지만 문헌상으로 근거를 찾기 못하나 여러 유적과 유물을 바탕으로 일부에서는 4번째 수도였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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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조선시대에 3대포구는 어디인가요?
조선시대의 포구는 물산이 집산하는 곳으로 선상, 객주, 보부상들의 상거래가 활발하고,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였습니다. 강경포구는 현재 충남 논산시 강경읍으로 금강을 통해 서해와 내륙을 연결했으며, 쌀과 곡무르 해산물의 집산지였습니다. 그리고 원산포구는 현재 강원도 원산시로 동해안 대표 항구입니다. 명태 등 수산물과 북방 물자 교역의 중심지입니다. 그리고 한양의 마포는 한강 수운을 통해 새곡과 전국의 물자들이 모이는 곳으로 일찌기 수도권의 핵심 포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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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계는 어쩌다가 쌀을 주식으로 삼게 된 걸까여?
아시아 사람들은 처음부터 쌀만 먹었던 것은 아닙니다. 중국의 화북 지방은 밀을 먹었지만 강남 지방의 양쯔강 유역은 1만년전부터 야상벼를 채집하여 먹었습니다. 이후 쌀농사는 중국 각지와 인도, 동남아시아로 퍼졌고, 한반도에서도 청동기 시대 이후 쌀을 생산하여 먹기 시작했습니다.쌀은 물이 풍부하고, 기온이 높은 지역에서 잘 자랍니다. 따라서 중국의 양쯔강 유역 이남, 동남아시아 지역은 강수량이 풍부하고 기온인 온난하여 쌀 재배에 적합했습니다. 또한 쌀은 익혀 먹기 쉽고 저장도 가능하여 인구가 늘어나는데 유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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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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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탈춤의 사자춤은 인도와도 관련이 있는지
봉산탈춤의 사자춤은 인도와 연관성이 있다고 봅니다. 사자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동물입니다. 사자는 인도에서 불교와 함께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으며, 불법을 수호하는 존재로 표현됩니다 사자의 상징과 사자춤은 비단길을 타고 중국으로 들어와 한반도로 전해진 것으로 봅니다. 사자는 불교, 벽사, 권위의 상징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봉산탈춤의 제 5과장에서 사자는 부처님이 파계한 먹중들을 벌하기 위해 보낸 존재입니다. 먹중들이 잘못을 뉘위치면서 사자는 그들을 용서하고 함께 춤을 춥니다. 따라서 이 장면의 사자는 단순히 동물이 아니라 부처의 사자이자 악을 물리치는 신성한 존쟁입니다. 즉, 인도에서 사자가 불교를 수호하고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고, 이러한 상징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해져 봉산탈춤에 반영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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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대규모 토목공사를 추진하는 비용은 어떻게 감당했나요?
옛날 대규모 토목공사는 국가가 주도로 추진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처럼 국가 예산으로만 충당하지만은 않습니다. 옛날에는 백성들의 백성들의 노동력과 세금, 물자를 동원해 감당했습니다. 성벽, 궁궐, 도로 등을 만들 때 농민들에게 역을 징발하여 건설하였으며, 필요하면 세금 형태로 쌀, 베, 돈 같은 현물로 거두어 예산으로 충당했습니다.하지만 공사의 필요성보다 백성들의 부담이 커지면 백성들의 불만이 증폭됩니다. 특히 농번기나 기근 등 어려운 시기에 부역을 징발하면 농사를 망치고, 생계도 막막해집니다. 그리고 세금까지 막대하게 거두면 백성들의 저항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옛날 국가의 대규모 토목 공사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백성들에게 부역, 세금 징수에 따른 노동과 희생이 어느정도가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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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대사 양인살 건록 황은대사....
사주명리학의 신살을 나열한 것인가요? 왕인살은 강한 추진력으로 안정된 기반을 뜻하는 길하다는 것으로 해석되며, 건록은 자기 힘과 자립심, 안정된 기반을 말하는 좋은 요소입니다. 또한 급여성은 배우자, 생활의 안정과 품위와 복을 상징힙니다. 글고 천을귀인은 어려울 때 돕은 사람을 만난다는 기운을 말합니다. 월덕귀인은 주변의 도움으로 큰 화를 피하는 기운입니다. 또한 천문성은 학문, 직관, 정신적 관심을 말하며, 관귀학관은 공부, 자격, 관직 전문성을 말합니다. 따라서 황은대사는 모든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좋은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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