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자아. 그리고 이름 의. 유래. 궁금 합니다
이름이 당신의 존재 가치를 정하지는 않습니다. 이름이란 부모, 가족들이 당신을 부르기 위해 붙인 표지라 보면 될 것입니다. 옛 부모님들은 이름을 대충짓지는 않습니다. 항렬을 적용하여 짓는 것은 가문의 세대와 질서를 위한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월악산 꿈을 꾸고 ‘이워락’이라는 이름을 지으셨다면, 그것은 분명 당신에게 좋은 인연과 뜻을 빌어 준 이름입니다.이상기(李相起): ‘상(相)’은 서로, 돕다, 보필하다라는 뜻이고, ‘기(起)’는 일어나다, 떠오르다라는 뜻입니다. “함께 일어서라”, “남을 돕으며 일어서라”는 좋은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위락은 아버지께서 월악산을 꿈에 보고 지으신 이름이라면 산처럼 크고 단단하게 자라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다만, 이름이 놀림, 조롱으로 불편하다면 가정법원의 개명 허가를 받아 고칠수 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전한과 후한은 별개의 나라라고 생각하면 된느건가요?
전한과 후한은 같은 한나라이지만 후대 역사가들이 편의상 왕망이 찬탈하여 세운 신을 기준으로 구분한 것입니다. 전한은 기원전 202년 유방이 장안에서 건국하였으며, 9년 왕망에 의해 찬탈당했습니다. 후한은 25년 유수가 뤄양에 다시 한나라를 재건하여 세웠으며, 220년까지 지속됩니다.유수는 전한 황실인 한 경제의 6대 후손이었고, 국호도 ‘한’으로 유지했습니다. 그래서 후한은 자신을 전한의 계승 국가, 즉 한나라의 부흥으로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후한은 전한의 마지막 황제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신나라 붕괴 후 호족들에 의해 옹립된 정권입니다. 후한은 그를 한나라의 부흥자로 존중했지만 묘호를 세조로 정한 것은 사실상 새로운 왕조이 시조였음을 보여줍니다.
5.0 (1)
응원하기
안경과 콘텍트렌즈, 써클렌즈, 선글라스는 누가 언제 어디에서 발명했으며, 언제부터 안경과 콘텍트렌즈, 써클렌즈, 선글라스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나요?
안경은 특정 발명가는 아니지만 13세기 후반 피사, 피렌체 등 북 이탈리아에서 두개의 볼록렌즈를 연결한 '리벳 안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콘택트렌즈 개념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508년 구성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실제로는 1888년 독일의 안과의사 아돌프 피크가 만든 유리 콘텐트렌즈입니다. 그리고 1960년대 연질 렌즈용 하이드로겔 재료를 체코 화학자 오트 비히틀레가 개밣아ㅕ 1971년 미국 바우슈앤롬이 연질 콘택트렌즈를 상업출시하였습니다. 선글라스는 눈은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약 2000년전 이누이트의 눈부심 방지 고글입니다. 현대적 의미의 선글라스는 18세기 제임스 에이스코가 색안경을 실험한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1929년 미국의 샘 포스터가 대량생산하여 보급하였습니다. 서클랜즈의 기본 기술은 콘탠트랜즈와 같습니다. 1971년 이후 연질 렌즈가 보급되면서 색상, 무표정 패턴을 넣은 미용용 렌즈가 발전하였습니다.
5.0 (1)
응원하기
역사적 사건의 책임을 특정 지도자에게 집중하면 당시 사회 구성원의 책임은 과소평가되는가?
역사적 책임은 누가 잘못했는가 보다는 누가 어떤 권한을 가지고 어떤 선택을 가졌으며, 어던 행동을 했는가로 나눠어 봐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도자는 권한을 가지고 결정, 명령하는 위치에 있어 그 책임이 무겁습니다. 그리고 관료는 명령 여부와 자의적으로 행동했는가, 거부 가능성도 있는가를 바탕으로 집행 책임을 가집니다. 시민도 지도자와 같은 수준의 책임을 지지는 않지만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폭력과 차별을 지지하거나 투표, 선전으로 뒷받침할 경우는 책임은 커집니다. 또한 거부할 수 있었는데, 침묵했다면 책임이 있을 수 있습니다.평가 기준으로는 그 사람이 무엇을 결정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위치인가?, 피해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가?, 명령,실행, 지지, 침묵 중의 어느 위치인가?, 재도나 폭력으로 이익을 얻었는가 등입니다. 역사적 책임은 권한과 선택 가능성에 따라 지도자·실행자·제도·시민에게 서로 다른 무게로 나누어 져야 하며, ‘지도자 탓’이나 ‘모두의 탓’으로 단순화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평가
응원하기
사회가 용인해 온 관습이라도 개인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바뀌어야 하는가?
좋은 질문입니다. 전통이나 관습이라도 개인의 존엄을 침해하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관습이라도 강제성, 피해의 심각성, 차별성, 사회 구성원들의 동의의 결여 등의 문제가 있으면 변화가 당연합니다. 예를 들어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의 체벌이 수업 지도를 위해 관습처럼 여겼으나 학생들의 인권 침해 등의 문제 등이 부각되면서 사라졌습니다.변화의 병식에 사안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비교적 가벼운 불편이나 비효율적인 것은 대화나 선택권 확대로 점진적 개선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강제, 폭력, 건강 훼손 등은 강력하게 조치해야 합니다. 즉 금지, 보호 처분, 피해자 지원 등이 요구됩니다. 핵심은 “전통을 지키느냐, 인권을 지키느냐”의 양자택일이 아닙니다. 관습 안에서 차별적·강압적 요소만 제거하고, 공동체의 연대·예의·기억 같은 긍정적 가치는 유지·재해석하는 방식이 바람직합니다.세대간의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는 우선 대화가 중요합니다. 비난보다는 왜 관습이 지켜졌는지 먼저 이해하는 태도는 저항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종교인, 어른, 지역 유지 등 공동체의 리더의 협력과 참여는 세대 갈등 해소에 효과적일 것입니다. 물론 심각한 경우에는 법적 금지와 함께 피해자 보호, 상담, 지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인간의 친절은 상대방을 위한 순수한 배려와 자신의 만족을 위한 행동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친절에 대한 양비론적 질문이네요. 친절을 순수한 배려나 자기 만족이냐로 양분하는 것 자체가 부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동기는 보통 복합적이며, 상대를 돕고자 하는 마음과 자기 만족이 함께 있어도 친절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동기의 순수성이 아니라 상대의 이익과 자율성을 실제로 존중했는가로 판단합니다. 역사적 진실의 공개에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고 봅니다. 공개가 원칙이고, 비공개는 예외에야 합니다. 특히 국가 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는 피해자가 진실을 알 권리를 가집니다. 즉 사회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만으로 장기간 숨기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은폐는 불신과 불열, 가해자에 대한 면책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불편한 역사적 진실을 공개하지 않는 선택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좋은 질문입니다. 불편한 진실을 영구히 숨기는 것은 정당화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숨기려는 것은 불신과 갈등을 키울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의해 적극적으로 공개하도록 규정합니다. 다만 모든 자료를 즉시, 전부 공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의 보호, 목격자의 안전, 증거 보존, 조사 완결을 위함 등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일시적, 최소한의 공개 제한이 가능합니다. 공개는 원칙으로 하되 독립적 조사와 피해자 중심의 절차를 거쳐 단계적으로 공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비공개 사유가 시간이 지나 사라지면 기관은 그 정보를 다시 공개 대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김천 김밥축제는 언제부터 생겼고 왜 유명해졌나요.
김천시는 2024년부터 김밥 축제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김천이 김밥의 발상지라는 것이 아니라 "김천이 곧 김밥 천국"이라는 말장난에서 지역 브랜드로 바꾼 역발상입니다. 김천시는 2023년 MZ세대를 대상으로 김천하면 무엇이 떠오르나 설문 조사를 했고, 김밥천국이라는 답이 1위였습니다. 이를 받아들여 김밥축제를 열기 시작한 것입니다. 첫해 2만명을 예상했지만 10만명 이상이 찾았고, 준비한 김밥이 동나는 품절 사태까지 났습니다. 따라서 2025년에는 부스와 김밥 물량을 늘리고 셔틀버스·주차장을 대폭 확대해, 이틀간 15만~17만 명이 방문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서양 중세 봉건 사회를 지탱한 맹약 관계와 장원제의 경제적 구조는?
중세 유럽 사회는 봉건제 의해 질서를 유지했습니다. 봉건제는 정치, 군사적으로 주종제, 경제적으로 장원제로 맞물려 있습니다. 주종제는 주군이 봉신에게 봉토를 주고, 보호를 약속하며, 봉신은 주군에게 군사적 충성과 봉사를 바쳤습니다. 두 주체의 관계는 쌍무적 계약 관계에 의해 성사됩니다. 즉 주군의 의무는 봉신을 보호하고 봉토의 사용과 수익을 보장하며, 봉신은 군사적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장원제는 주군에게 받은 봉토를 장원으로 하여 농노를 관리하는 체제입니다. 장원의 토지는 영주 직영지와 농민 보유지, 공유지로 구성되며, 농노의 부역 노동에 의해 운영되었습니다. 즉, 농노는 영주의 토지에 묶여 이주의 자유가 제한되었고, 일주일에 며칠씩 영주 직영지에서 무상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암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난 역사 속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선택하기 위함인가요?
맞는 말씀입니다. 역사에서 연도나 사건의 이름을 외우는 것은 한국사 학습의 출발일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당시 사람들은 어떤 선택지를 가졌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역사는 교훈으로서의 학문이기도 합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단순한 교훈에서 부터 과거의 실패와 성공을 비교하면서 어떤 조건과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역사 공부는 자료를 읽고 출처를 확인하고, 여러 관점을 비교하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왜곡된 주장과 확증 편향을 걸려내고 스스로 근거 있는 결론을 내리는 능력이 길러집니다.
평가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