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광종 때 시행된 과거제도가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것인가요?
고려 태조 왕건은 결혼 정책, 사성 정책 등을 바탕으로 호족 연합으로 왕권을 안정시켰습니다. 하지만 태조의 사후 호족들의 득세로 왕권이 약화되고, 정국이 혼란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즉위한 광종은 호족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과거제를 시행했습니다. 즉 유교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여 관료제를 통해 호족을 견제한 것입니다. 비록 몽골 침입, 원 간섭 시기에는 과거제가 약되었지만 고려말 공민왕이 다시 과거제를 강화하여 사대부를 우대했습니다. 조선 건국 이후 과거제도는 그대로 계승되어 고려 관료제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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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안동 김씨가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선 후기 세도 정치가 나타난 것은 정조 사후 어린 순조의 즉위를 배경으로 합니다. 특히 안동김씨 김조순의 딸은 순조비가 된 것이 계기입니다. 김조순은 겸손한 충성으로 정조의 신임을 받아 자신의 딸을 세자빈으로 간택하게 하였으며, 순조 즉위 이후 외척을 부상하였습니다. 안동김씨는 헌종비, 철종비 등 3대에 걸쳐 왕비를 배출했습니다. 안동 김씨 세도 가문은 비변사와 군영을 장악하고, 매관매직을 통해 경제력을 장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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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가 백제를 건국할 당시 그 땅에는 어떤 민족, 부족이 존재했었나요?
온조는 고구려를 떠나 한강 유역의 위례성에 정착하여 백제를 건국하였습니다. 한강 유역에는 마한 소국들과 한인과 예인 등 토착 부족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고조선의 후예인 '한인', 그리고 부예계 '예인' 그리고 여러 소국이 연합체입니다. 토착인 백제는 마한 54개국 가운데 하나로 한강 하류의 미추홀, 주변 소국을 병합하면서 성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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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와 사헌부는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나요?
암행어사는 왕이 비밀리에 임명하는 특명 관리입니다. 종 2품~3품의 고위 관료들을 대상을 선발하며, 지방을 돌며 비밀 감찰 업무를 수행합니다. 사헌부는 3사 가운데 하나로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며, 사간원과 함께 언관으로 활동하는 상성기관입니다. 정 1품 대사헌에서 부터 종 6품 전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조직입니다. 성종 때 사헌부 분대어사가 암행어사로 발전하여 중종 이후 왕 직속으로 운영된 것이 암행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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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의 객관성에 대한 철학적 논쟁은?
역사의 객관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는 '역사는 있던 그 자체"라고 하여 객관성을 강조했습니다. 즉 사실을 기반으로 한 역사를 중시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E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며, 기록 자체가 작성자의 시대·문화·이데올로기 관점에 물들어 있다고 비판합니다. 결론적으로 역사는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역사가의 주관적 해석이 필요합니다. 즉 비교적 개관적 서술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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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광개토대왕, 장수왕 시기 어떻게 넓게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나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기에 내부 안정과 탁월한 군사적 전략으로 광대한 영토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고국원왕 시기의 국난이 있었지만 4세기 말 소수림왕은 불교 수용, 율령 반포 등을 통해 체제를 정비하여 안정을 되찾앗습니다. 그리고 광개토대왕은 백제를 쳐 한강 이북까지 차지하고, 가야를 공격했습니다. 이어 장수왕은 남하정책을 통해 한강 유역을 장악하고 북위까지 위협하며 최대 영토를 넓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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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에서 숫자 5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있나요?
중국 역사에서 숫자 '5'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5행은 목,화,토,금,수 다섯 원소를 상징하며, 우주의 조화와 균형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황제의 상징도 발톱 5개, 5사단 군대 등 5가 권위와 안정성을 상징합니다.그리고 춘추 5패도 중용, 조화 때문입니다. 5라는 숫자는 오행처럼 완벽한 균형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례로 지리에서 오악, 오호, 인체에서 오장, 오관, 음악에서 오음과 오언시 등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5는 우주의 조화의 숫자로 인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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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세계대전이 일어닐 가능성이 어떻게되나요?
3차 대전이 일어날 확률은 높아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과 이슬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전쟁이 확대되고 있으며, 중국-대만, 북핵 문제, 인도-파키스탄 갈등 등 긴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3차 대전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불안합니다. 하지만 3차 대전이 일어나기에는 핵무기 위력이 너무 큽니다. 즉 강대국 사이의 전쟁은 핵무기 사용이고, 이는 공멸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일어나는 전쟁은 대리전, 지역전인 경우가 많습니다. 당사국들이 전면전을 치르기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일정 부분 브레이크를 거는 경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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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귀족들이 사용하는 작위는 어떤기준으로 나뉘나요?
1066년 노르만디 공국의 윌리엄이 영국을 정복한 이후 그는 장원 분배하며 귀족들의 작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15세기 5단계의 작위가 완성되었습니다.공작(Duke)은 14세기 국경 수비 영주에서 시작하여 왕실 직계에 주로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후작(Marquess)은 14세기 국경 방어 영주에게 부여하였으며, 공작 다음의 서열입니다. 그리고 백작(Earl)은 앵글로섹슨 시대 지역 통치권입니다. 그리고 자작(Viscount)은 15세기 백작 부관에서 승격, 남작(Baron)은 11세기 봉건 영지 소유자로 최하위입니다. 역사적으로 장원 관리와 군사 의무를 대가로 부여됐으나 현재는 상징적 지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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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백제, 신라의 흥망성쇠와 항쟁의 역사를 정리해주실수 있나요?
우리나라 국가 가운데 고대 국가로 발전한 것은 삼국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입니다. 삼국은 서로 경쟁하며 발전했습니다. 삼국 가운데 고대 국가의 기틀을 가장 먼저 마련한 나라는 고구려로 1~2세기 태조왕 때 계루부 고씨가 왕위를 세습하고 영역 국가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4세기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고 소수림왕 때 율령 반포, 불교 수용, 태학 설립을 통해 고대 국가를 완성하였으며, 5세기 광개토대왕, 장수왕 때 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백제는 3세기 고이왕 때 좌평 제도, 관등제를 마련하여 고대 국가를 기틀을 마련하고, 4세기 전성기를 이룹니다. 하지만 5세기 장수왕의 남하로 위기를 맞았으며, 6세기 동천왕, 무령왕, 성왕 때 중흥을 시도했습니다. 신라는 가장 늦은 4세기 내물왕 때 김씨 왕위 세습, 마립간 왕호 사용 등 고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6세기 법흥왕 때 율령 반포, 불교 수용을 통해 고대국가를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진흥왕 때는 한강 유역을 차지하면서 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6세기 말, 중국의 5대 10국을 통일한 수와 당의 침입으로 위기를 겪은 고구려는 연개소문의 활약으로 극복할 수 있었으나 연개소문의 사후 내분이 일어나 나당 연합군에 의해 668년 멸망하였습니다. 그리고 백제는 6세기 나제동맹으로 고구려를 견제했으나 신라의 배신을 겪게 됩니다. 신라는 7세기 중반 백제와 고구려의 압박에 나당 동맹으로 위기를 극복하려 합니다. 신라는 나당 동맹에 의해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켰으며, 676년 당나라의 야욕을 물리치고 삼국 통일을 완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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