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발해의 지방체제는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발해는 5경 15부 62주, 현의 4단계 행정 체제로 구분하여 넓은 영토를 통치하였습니다. 5경은 상경, 중경, 동경, 남경, 서경으로 왕족이나 귀족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15부는 지방 행정의 중심 단위로 각부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도독이 장관으로 다스렸습니다. 62주는 부 아래 행정 단위로 각 주마다 자사가 파견되었으며, 현은 말단 행정 단위로 현승이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말갈족 등 일부 지역은 촌장이 다스렸습니다.
Q. 왕건이 후고구려의 왕이 된 시기는 언제인가요?
궁예는 901년 송악의 유력 호족 왕륭의 도움을 받아 후고구려를 건국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륭의 아들 왕건은 후고구려(태봉)에서 문하시중으로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궁예의 폭정에 반발한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 신하들이 918년 궁예를 축출하고 왕건을 새왕을 추대하엿습니다. 왕건은 즉위와 함께 국호를 고려로 바꾸고, 수도를 송악으로 천도하였습니다.
Q. 백제가 왜와 활발히 교류한 이유는 뭘까요?
백제가 왜와 활발히 교류한 목적은 고구려와 신라의 압박 속에서도 국가적 안정을 위해 동맹을 맺은 것입니다. 고구려, 신라와 관계가 복잡할 때 백제는 왜를 파트너로 삼아 우호 관계를 유지하여 정치적 입지를 높였습니다. 백제가 멸망한 이후에도 왜는 대군을 보내 백제 부흥군을 지원했습니다. 또한 일본 왕실이 혈통적으로 백제와 연관되어 있어 백제와 일본의 관계가 긴밀하였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계를 바탕으로 백제는 선진 문물을 왜에 전해주며 일본 문화 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 왕인, 아직기 등 학자와 장인, 승려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학문과 예술, 불교를 전파하여 일본 아스카 문화의 기초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