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철기 시대에도 청동기를 이용한 이유가 뭘까요?
철기시대에도 청동기를 일정 기간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우선 철기 시대가 도입되었다 하더라고 철을 다루는 기술이 완전히 자리잡지 못해 청동기 제작 기술과 도구가 혼용된 것입니다. 게다가 철로 만든 무기가 품질적으로 완성되지 않아 숙련된 청동기 제작법이 병행되었습니다.그리고 한반도에서는 철기 시대에도 독자적인 청동기 문화가 계속 발전했습니다. 예를 들어 세형 동검, 거푸집 등의 출토를 미루어 볼 대 고유의 청동 제조 기술이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청동기가 단순히 실용성을 넘어 문화, 예술적 의미를 지녔음을 보여줍니다. 철기 시대에는 실용적인 도구와 무기는 철로 만들었지만 여전히 권위의 상징, 의식용 도구, 장신구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청동은 귀한 재료였고, 오랜 전통과 상징성을 지녔기 때문에 지배층의 권력 과시, 제사용으로 적합하여 지속적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Q. 후삼국 시대가 처음 시작된 시기는 언제인가요?
신라말 왕위 다툼과 진골 귀족간의 왕위 쟁탈전으로 왕권이 약화되고,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호족들이 등장하였습니다. 중앙 귀족과 지방 호족의 수탈로 백성들은 몰락하고, 곳곳에서 봉기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견훤이 900년 완산주에서 후백제를 세우고, 901년 궁예가 송악에서 후고구려를 세우면서 후삼국 시대가 시작됩니다. 이로써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 세나라가 한반도에 병존하게 되었습니다.
Q. 움집과 막집의 대표적인 차이는 무엇인가요?
막집은 구석기 시대, 움집은 신석기를 대표하는 주거 형태입니다. 막집은 땅을 파지 않고 평평한 땅 위에 나뭇가지, 풀 등을 재료를 사용하여 간단하게 지는 집이며, 이동 생활에 적합한 임시 거처입니다. 반면 움집은 땅을 움푹 파서 그 안에 기둥을 세우고 풀이나 나뭇가지, 갈대 등으로 지붕을 덮여 정착 생활에 적합하며, 보온을 위해 화덕을 설치하였습니다. 따라서 움집은 막집에 비해 견고하고 영국적으로 지은 주거 형태입니다.
Q.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우수했던 시기는 언제인가요?
한국 역사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우수한 시기에 대해 조선 초기 세종대왕 시기를 말합니다. 그 근거는 훈민정음 차제를 비롯해 측우기, 앙부일구, 혼천의 등 과학 기술의 혁신과 음악, 문학, 예술의 발전 등 독자적 문화가 발달한 시기입니다. 하지만 그 원료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기 독창적인 예술과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불교, 유교의 수용과 융합되었으며, 고분벽화와 석탑과 불상, 금관을 비롯한 공예 작품 등 많은 예술품을 남겼습니다. 특히 삼국 통일 이후 통일 신라는 삼국의 문화를 융합하여 민족 문화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