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가디마이 축제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가디마이 축제는 네팔 남부 바라 지역 바리야푸르의 가디마이 신전에서 5년마다 열리는 힌두교 전통 의식입니다. 이 축제는 여신 가디마이에게 복을 빌며, 재앙을 막기 위해 수십만 마리의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종교 의식입니다.약 250 여년전 한 지주가 꿈에서 가디마이 여신을 만나 "피를 받치면 번영을 얻는다'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인간 대신 동물을 제물로 바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전통이 이어져 오늘날까지 내려온 것입니다. 5년에 한번, 이틀간 물소, 염소, 돼지, 닭, 비둘기 등 다양한 동물이 희생되었습니다. 한번에 희생되는 동물 수가 20만~50만 마리에 달할 만큼 규모가 큽니다. 그러나 동물권 보호 단체와 국제 사회에서 강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Q. 남극 조약은 어떤 배경에서 체결되었나요?
남극 조약은 1950년대 냉전 시기, 남극에 대한 여러 국가의 영유권 주장과 자연 탐사 경쟁, 그리고 과학 연구의 필요성이 맞물리면서 체결되었습니다. 즉 남극에서의 영토 분쟁과 군사 활동이 국제적 갈등으로 번질 우려가 커지자 평화적 이용을 위해 체결된 것입니다. 남극 조약은 1959년 12월 1일 미국 워싱턴에서 12개국이 남극 조약에 서명했고, 1961년부터 발효되었습니다. 남극 조약의 주요 내용은 영유권 주장 동결, 군사 활동 및 핵실험, 방사성 폐기물 처분 금지, 과학 연구의 자유와 국제협력 보장, 모든 국가에 자유로운 과학 조사와 정보 교환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Q. 방통이 죽지않았다면 촉한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방통은 제갈량과 함께 촉한을 대표하는 지략가로 꼽힙니다. 익주 정복을 유비에게 적극적으로 건의하고 실제로 그 전략을 실행을 주도하였습니다. 방통은 임기응변에 능하고 기발한 계책을 잘 내는 인물이며, 촉한의 근거지 확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방통이 생존했다면 형주 방어 체계를 강화하고 관우의 단독 행동을 견제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방통의 현실적 전략 감각으로 오나라와의 갈등을 조율하여 형주 상실을 방지하고 북벌하고, 북벌 시 동남 방면에서 지원군을 동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갈량이 5차 북벌을 실패한 이유가 후방 보급과 전략적 지원 부족이었는데, 방통이 있었다면 제갈량과 협력하여 군량 조달과 병력 동원이 원활했을 것입니다. 위의 압도적 국력과 지리적 이점을 고려할 때 촉한의 통일은 어려웠지만 방통의 생존으로 한중, 형주 동시에 공세와 오나라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중원 진출의 기회를 늘릴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