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새로운 길(윤동주)와 연관된 작품 궁금합니다.
윤동주의 시 은 쉬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를 담은 서정시입니다. 아름답고 읽기 쉬운 시이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살펴본다면 걸어가는 길도, 길가에 만나는 여러 풍경도 사람도 다 새롭고 다른데 나라를 빼앗긴 이 현실만은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자괴하며, 조국에 대한 그리움, 독립에의 의지 세우는 상징적인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작가의 비슷한 의미와 상징을 가지고 있는 시는 가장 잘 알려진 , , , 이 있습니다. 대부분 자아성찰의 내용을 중심으로 서정적으로 풀어가며, 당대 지식인으로서의 조국 독립을 이루지 못한 자괴감과 통탄, 그리고 바람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암울한 현실을 직시하되 절망을 절망하지 않는 그리고 지극히도 자조적인 느낌을 줍니다. 시대적인 상황을 대입하면 윤동주의 시는 대부분 식민치하에서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를 노래하되, 이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만의 길을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Q.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에리시크톤 관련 이야기는 어떤 내용인가요?
에리시크톤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불경하고 무례함의 대명사인 테살리아의 왕입니다. 그는 식당을 지을 나무가 필요하다며 데메테르 여신에게 봉헌된 신성한 숲의 나무들을 잘라서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데메테르 여신의 화관이 달린 커다란 참나무를 아무도 감히 베려 하지 않자 직접 도끼를 들고 나가 나무를 찍었고 나무에서는 피가 흘렀습니다. 옆의 신하가 말렸지만 그는 신하의 목을 베어버리고 신성한 나무도 역시 베고 맙니다.이에 격노한 데메테르 여신은 기아의 여신 리모스에게 명하여 에리시크톤을 채워지지 않는 굶주림에 시달리도록 하였습니다. 잠자고 있는 그의 뱃속과 혈관에 허기를 뿌려 놓았고, 잠에서 깬 그는 마구 음식을 탐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고, 음식을 마구 사는 바람에 재산을 모두 날려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딸 메스트라를 많은 돈을 받고 구혼자에게 팔아버렸는데 그녀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사랑을 받는 이였고, 포세이돈은 메스트라의 바람에 응답해 그녀에게 변신의 능력을 주었고, 그녀는 어부로 변신하여 도망쳤습니다.그런데 딸이 집으로 돌아오자 그는 다시 딸을 구혼자에게 팔아 음식을 샀고 메스트라는 이번에는 말로 변신하여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러한 딸의 능력을 알아차린 그는 계속해서 딸을 팔아 음식을 조달하였지만 그의 배고픔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 심해졌습니다. 어느날 팔려간 딸이 평소보다 늦게 돌아오게 되고 더이상 배고픔을 참지 못한 에리스크톤 자신의 사지를 찢어 먹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치아만 남아서도 그 굶주림은 가시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이 이야기는 신의 나무까지 탐하는 탐욕과 자신의 딸을 팔아서라도 자신의 식욕을 채우고자 하는 에리시크톤의 모습에서 절제를 필요성과 과욕의 말로를 보여줍니다.
Q. '년도'와 '연도' 어떤 표현(맞춤법)이 맞는건가요?
두 표기의 차이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원래의 한자 표기는 '년도'입니다만 한자음 '녀'가 앞에 올 때는 두음법칙이 적용되어 '여'로 적는다는 한글맞춤법 제 10항에 따라 '연도'로 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해나 숫자 뒤에 올 때는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따라서 다른 말과 함께 쓰이는 경우에는 '회계연도, 제작연도, 설립연도' 처럼 '연도'로 쓰는 것이 맞고, 앞에 숫자나 해, 그를 나타내는 말이 오는 경우 '1975년도, 2024년도, 일 년, 내년' 처럼 '년도'로 쓰는 것이 맞습니다.두 쓰임의 문법적 차이를 보시면 '연, 연도'의 경우 독립해서 사용할 수 있는 명사이고, '년, 년도'의 경우 독립해서 사용할 수 없는 의존명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