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시를 읽다보면 은유법이 나오던데 은유법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은유법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상태나 움직임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수사법입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비유하여 표현하는 수사법의 하나입니다. 비유법에는 은유를 포함하여 직유, 풍유, 제유, 환유, 의인, 의성, 의태, 중의가 있습니다.은유법은 시에서 많이 사용되는데 어떠한 사물등을 다른 것에 빗대거나 에둘러 표현함으로써 그 의미가 드러나지 않게 감추어 감동을 증폭시키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김동명의 시 '내 마음은'을 보시면, 내마음은 호수요/그대 노저어 오오/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내 마음은 촛불이요/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 없이타오리다.//내 마음은 나그네요/그대 피리를 불어주오/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나의 밤을 새이오리다.//내마음은 낙엽이요/잠깐 그대의 뜰에 머물게 하오/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그대를 떠나오리다밑줄 친 표현들은 원관념인 '내마음'과 보조관념인 '호수, 촛불, 나그네, 낙엽'을 동일시 하여 보조관념이 가진 함축적 의미를 원관념인 '내마음'에 부여하는 방식으로 활용합니다. 이것과 반대되는 개념으로는 '~같는 ~'의 구조적인 표현구를 가진 직유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곰 같은 힘', '비단 같이 고운 피부' 등은 직접적으로 동일 비교하는 방식으로 표현되므로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시를 어렵게만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를 읽으실 때는 작가가 어떠한 의도로 표현했든 상관없이 독자가 읽고 느껴지는대로 감상하시면 됩니다. 간혹 이 시가 무엇을 뜻하는 것이지라고 골몰하며 후벼 파다보면 작품의 직관성이 떨어져 흥미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분석은 전문가의 영역입니다. 그 전문가라도 작가의 의도를 모두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시는 그냥 읽혀지는대로 읽고 직관적으로 드는 느낌대로 감상하시면 됩니다.
Q. "어느"가 자립형태소로 쓰인 예문에는 무엇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느'는 관형사로 자립 형태소입니다. 이것은 이것으로만 문장을 구성하거나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형태론적으로 자립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햇살이 좋은 어느 날 예쁜 구두를 신고 내게 오세요.'라고 독립적으로 단독으로 쓰인 것도 있지만'어느덧 결정의 그날이 다가왔다.', '어느새 석양은 붉게 물들고 어둠이 저만치 온 듯 했다.'처럼 합성어로 쓰인 것도 있는데 둘 다 자립형태소입니다. 보통 단일 형태소(독립적으로 띄어 쓸 때)로 이루어졌을 때 자립 형태소는 명사, 대명사, 수사, 관형사, 부사입니다. 용언의 어간, 어미, 조사, 접사는 의존 형태소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Q. 동양의 신체발부 수지부모 관련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身體髮膚는 受之父母니 (신체발부 수지부모)不敢毁傷이 孝之始也니라 (불감훼상 효지시야)라고 효경에 나오는 말입니다.내용인 즉 몸과 털, 피부는 부모로부터 나온 것이니, 감히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뜻입니다.주자학을 신봉하는 조선시대 신진사대부들에 의해 더욱 이러한 사상이 강하게 전파되어 조선시대에는 더욱 생활의 근본이 되었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머리카락이나 수염을 전혀 손질하지 않고 계속 길렀던 것은 아니라, 모든 것이 부모에게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일부 지저분하게 보이던가 하는 것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을 훼손하는 것이라 보고 단정하게 자르거나 다듬었습니다.다만 이러한 몸을 단정하게 정리한 잔여물마저도 소중히 여겨 그냥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일정한 날을 정해 태운다던가 했다고 합니다.하지만 이러한 것은 거의 양반들에게만 엄격하게 지켜졌고, 다른 계급층에서는 그렇게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조선 초중기에는 엄격하였을 것으로 보이고, 구한말에 이르러서는 많이 자유로웠던 것으로 보입니다.아래의 사진은 구한말 사진으로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맨 왼쪽은 양반, 중앙 상단은 노비, 중앙 하단은 백정, 맨 오른쪽은 계층은 확실치 않고 여성아이입니다.포털사이트에서 사진을 찾아보시면, 대체적으로 양반들의 경우 수염도 길게 기르고 관리한 것으로 보이고, 다른 계층에서도 대부분 그렇긴 하지만, 짧은 머리도 간혹 보이곤 합니다. 다만 여성들의 경우는 계층에 상관없이 머리를 길러 따거나 결혼한 경우 올리는 것으로 보입니다.여기서 볼 때 효경의 내용을 어느 정도 따르기는 하였으나, 엄격하게 제제하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효경은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머리카락 하나도 소중히 여기라고 하는 것이지 단순히 머리를 자르지 않거나 수염을 무작정 길러야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는 것부터가 효의 시작이라는 가르침 같습니다.[사진출처 - 네이버 이미지]
Q. 과거 삼국시대를 보면 한강을 포함한 나라가 항상 번성하였는데 한강이 왜 그리 중요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과거에 강을 끼고 있는 지역은 분쟁의 중심지였습니다. 이유는 첫번째로 강을 끼고 있는 지역은 비옥한 토양으로 농사에 적격입니다. 수렵과 농축산업이 주를 이루었던 과거로서는 농사에 필요한 물과 가축을 먹일 물, 그리고 사람들이 먹을 물이 풍부한 지역, 먹거리들이 필요했습니다. 그 주변의 땅들은 물을 머금어 영양분이 많은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따라서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했던 과거로서는 식량의 전초기지를 확보하는 것이 삶의 영속성을 보장할 수 있었기에 꼭 필요했습니다. 강을 끼고 있는 곳에는 항상 평야가 존재합니다. 김포, 김해, 나주 등 전통적인 곡창지대입니다. 당시 식량은 곧 국력이었습니다. 지금도 뭐 다를 것은 없지만. 둘째로 큰 강을 끼고 있는 지역은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강을 끼고 있으면 적으로부터 전쟁 시 방어하기가 용이합니다. 강은 일종의 성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에서 북한이 쳐들어왔을 때 밀리면서 한강다리를 폭파시켜 적이 건너오는 속도를 늦춘다든지, 낙동강 전선에서 적과 대치하여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전략을 세우는 시간을 번다든지 여러가지 활용할 것이 많았기 때문에 국가의 존립을 위해 필요했습니다. 외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고 대부분의 문명은 강을 중심으로 생겨나고 확산되었습니다. 황하문명은 황하, 이집트문명은 나일강, 인더스문명은 인더스강, 메소포타미아문명과 그 이전에 존재했던 수메르문명은 티그리스 & 유프라테스강 등 주요한 큰 강을 끼고 성장하였으며, 비옥한 토지, 온화한 기후, 배를 이용한 이동의 편리성에 의한 무역, 평지로 주거의 편리성 등 장점이 이루 말 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대부분의 주요 국가와 도시들은 강을 중심으로 발달하였고, 가장 중요한 지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