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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을 공유하고 모르는 것을 함께 공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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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준 전문가
맑은글터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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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태극기에서 왜 북한쪽은 빨간색으로 되어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태극은 고대부터 내려오던 상징이었습니다. 중국의 삼황오제 중 하나로 인류문명의 시조라고 불리는 태호 복희가 우주만물의 설계도인 하도를 하늘로부터 계시받아 팔괘를 만들었고, 주 문왕과 공자가 이것을 근본으로 하여 발전시켜 해설을 덧붙여서 주역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고대의 태극과 팔괘는 국기가 아닌 역학의 상징으로서 사용되었습니다. 대한 제국의 상징인 태극기는 1882년 박영효가 처음 도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이 처음 도안한 것입니다. 공식적을 처음 도입된 것이 1883년입니다. 중국이 황룡기를 쓰니까 조선은 청룡기를 쓰라고 하는 내정간섭을 무시하고 고대부터 내려오던 천지인 조화의 상징인 태극기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미지설명 :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고종황제의 외교고문을 지낸 미국인 데니가 1890년 청의 미움을 받아 파면되어 미국에 돌아갈 때 가지고 갔던 것으로 '데니 태극기'라고도 함]그러면 또 나서기 좋아하고 모든 것이 다 자기들만의 것이라고 하는 중국은 거봐 한국이 중국의 시조 중 하나인 태호복희의 팔괘를 가져다 쓴 것이니 태극기도 우리의 것이라고 하겠죠. 그렇다면 태호복희는 누굴까요? 중국의 역대 제왕록에는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태호복희의 성은 風이며, 고대 동이족이다.”그리고 중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부사년(傅斯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태호복희가 동이족이라는 것은 고대로부터 공인되어 온 일이다.”그러면 중국은 동이족도 중국의 한 소수민족이다라고 우기겠죠. 동이족은 신시 배달국을 거쳐, 고조선을 그 뿌리로 하고, 이후 부여, 고구려 등 대국을 이루었던 우리의 조상입니다. 우리의 고대사서인 환단고기(식민사학자에 의해 위서라고 치부되는 상황)에서는 "태호 복희씨는 5,700년 전 배달국의 5대 환웅인 태우의 환웅의 12번째 막내아들로 그의 성은 풍씨(風氏)요 이름은 방아(方牙)이며, 호는 크게 밝다는 뜻의 태호(太昊)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우리만의 것이다가 아니라 중국과 대한민국의 많은 고대 역사들이 공유되어있는 것은 사실이죠. 그 삶의 터전들이 겹쳤었고, 그만큼 관계가 많았던 이웃국가였으니까요. 태극과 건곤감리의 탄생역사는 이쯤에서 정리하고 본 질문에 대한 답으로 들어가면, 태극의 모형에는 삼태극과 이태극이 있는데 우리가 국기에서 사용하는 것은 이태극입니다. 여기서 적색과 청색은 남북이 아닌 음양의 상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이라는 뜻입니다. 원래 삼태극의 경우 천지인으로 적색, 청색, 황색의 세가지 색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과거 전통혼례에서도 여자인 음, 남자인 양을 뜻하는 것으로 적색, 청색 또는 청실홍실을 사용하였습니다. 이처럼 태극기의 적색, 청색은 음양의 조화를 나타내고, 하늘과 땅의 조화를 나타내는 것이지 북조선과 대한민국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태극기의 탄생사에서 말씀드렸듯이 현재 형태와 가장 가까운 태극기는 대한제국 시절 고종황제 때 사용되어졌었으니 적색이 공산당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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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시대 때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건국의 주축 세력인 신진 사대부는 명으로부터 건너 온 주자학, 즉 성리학자였습니다. 태조인 이성계는 고려의 무인이었으나 고려의 무인정권으로 인한 폐해가 고려 왕조를 몰락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하고, 정도전을 필두로 한 성리학 세력의 지지를 받아 그들이 계획한 국가 건립을 추진하였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국정의 운영은 무인보다는 문인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선 건국 후 완벽히 성리학의 나라로 이끌기 위해서 신진사대부들은 명을 상국으로 받들고,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유교사상을 들여오면서 과거 고려시대의 국교였던 불교와의 대립이 자명하였습니다. 이에 과거 고려시대의 불교가 너무 비대해지면서 국고를 많이 낭비하여 국력이 쇠퇴하게 되었고, 종교를 넘어 권력으로 자리잡아 민간에도 피해를 끼졌다고 보며, 더이상 불교가 비대해지는 것을 막고, 사찰 등의 숫자를 줄이고 승려가 가질 수 있는 권한을 대폭 축소하여 불교를 억압하는 대신 유교를 모든 국가 운영의 맨앞에 내세우는 '숭유억불'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조선은 고려와 달라야했기에 태조 이성계에 이은 그 이후 왕들도 왕가에서 불교에 심취한 왕과 왕족들이 있었지만, 이러한 국가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여 불교와 유교가 충돌이 나게 된다면 왕족 외 국정운영의 전반을 차지하고 있는 성리학자들의 반발로 인해 또다시 국가가 혼란이 올 수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국교였으나 학자들이 추구하는 성리학의 기반 또한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워낙 불교가 왕권과 유착하여 종교 이상의 권력을 가지다 보니 이에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왕도 더러 발생하였고, 조선 왕조에서는 그러한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신진사대부들의 전략이었습니다. 이후 이러한 주자학의 인의예지신의 좋은 뜻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쪽으로만 흘렀고, 이후 자신들만 관직을 독점하며, 당파 등 패거리정치를 하게 되고, 상인 계급 등을 천시하며, 일반 민중에게 무리한 관혼상제를 강요하는 등 폐해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래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조선은 성리학을 기반으로 세워진 나라라는 이유로 유교 만을 숭상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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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예술로 돈을 벌수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선 님을 통해서 좋은 음악이 나오기를 응원하고 기대합니다. 창작이라 하는 것은 참으로 고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내놓은 작품 또한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니 더욱 답답한 마음이 크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님은 음악을 다루고 작곡하는 놀라는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재능이 있으나 아직 님의 음악을 경험해보지 못한 많은 가수, 기획사, 청중이 없었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음악에는 대중가요, 광고음악, 영화음악 등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문화산업들에 해당되는 것이 많다고 합니다. 개인 SNS나 음원 클라우드 등에 업로드 하여 관심있는 뮤지션들이 찾아보고는 역으로 연락을 주어 대중에게 소개되는 경우도 최근에는 더러 있다고 합니다. 당장에 하시는 음악으로만 돈을 벌기가 어려워 생활이 힘드시다 하시면 생활을 위해 다른 일을 병행하시더라도 음악 창작의 일을 놓지는 마시고 끝까지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님의 멋진 음악을 경험할 기회를 제게서 빼앗으시면 님은 유죄입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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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발해는 우리나라로 봐야하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원래 고구려가 멸망한 뒤 대중상이 아들 대조영과 함께 건국하여 처음에 후고구려라 칭하고, 중광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후 대조영이 황제가 되면서 국호를 대진국이라고 변경했습니다. 당시 당나라에서 낮춰부르기 위해 중국 동쪽의 바다인 발해의 국왕이라는 식으로 발해국왕의 책봉을 내렸던 것으로 이후에는 국제적으로 발해국으로 통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도 고려왕이라고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임에는 틀림이 없어보입니다."대진국 발해는 당연히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대진국 발해는 고구려가 패망하고 고구려인이 주축이 되어 세운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고구려인이 지배계층이고 말갈인은 피지배계층이었나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고구려의 장수였던 대조영이 주축이 되어 세운 국가이기 때문에 대조영이 왕으로 추대되어 왕족이 되었고 골고루 등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모시몽, 오차지몽, 미발계 등 말갈계 발해 지배층이 기록으로 남아 있고, 대진국 발해가 차지한 영토는 원래 고구려의 영토로 고구려인들이 터전으로 삼았던 곳입니다. 대진국 발해는 고구려계와 말갈계가 혼재된 구조이나 고구려계는 지배층, 말갈계는 피지배층으로 구분되어있었던 것은 아닌 것이죠.그리고 대진국 발해의 지배층이 고구려인이나 말갈인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진국 발해의 귀족은 왕족인 대씨(大氏)를 비롯하여 고씨(高氏), 장씨(張氏), 양씨(楊氏), 두씨(竇氏), 오씨(烏氏), 이씨(李氏)의 여섯 우성망족(右姓望族)이라 불리는 유력 귀족집단이 존재하였고 이들이 발해의 외교, 군사, 정치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고, 장, 이는 고구려계, 오, 양은 말갈계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두씨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 외 하(賀), 왕(王), 임(任), 해(解),수(受), 율(聿), 배(裵), 박(朴), 최(崔) 등의 부여계, 고구려계, 말갈계를 비롯한 중국계, 신라계도 포함된 49개 족성(일반귀족)이 존재하였다고 합니다.중국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고구려와 대진국 발해의 역사를 자기네 중국의 속국 정도로 치부하며, 어이없이 현재 자신들의 중국 영토에서 존재하였던 모든 국가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몽골의 징기스칸도 자신들의 역사라고 하죠^^. 현재의 중국은 많은 외세의 지배를 받았던 혼란의 땅이었습니다. 여러 민족들이 중국의 땅을 지배했었지요. 중국이 한족이 주축이라고 한다면, 수, 당의 선비족, 원은 몽골족, 청은 여진족, 고조선때는 우리 민족이 현 중국 영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죠. 현재의 자기네 영토가 넓다고 해서 그 지역의 모든 역사가 자기네 역사라고 하며, 현재 독립국으로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다 중국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망언입니다. 최근 발견된 과거 대진국 발해 지역의 황후 무덤에서 비석에 발해의 '순목황후'라는 말이 나옵니다. 대진국 발해가 당시 당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었다면, 당의 황제가 있는데 황제의 아내라는 황후라는 말을 쓸 수 있었을까요? 해당 무덤에서는 고구려의 유물들이 출토되었고, 문자 기록이 있는 묘비가 있는데 자세히 공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유는 아마도 자신들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에 유리한 내용은 아닐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유리한 것이라면 벌써 발표하고 난리가 났겠죠. 고구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대진국 발해 모두 우리 조상들이 세운 자랑스런 우리나라입니다. 동북아시아의 여러 민족이 함께한 나라였던 것입니다. 고구려는 구당서에도 요서지방을 중심으로 동서로 3천1백리, 남북으로 2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식민사학으로 가득 찬 우리 교과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당시 고구려의 영토보다 훨씬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고 중국의 사서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학자들이 이상한 것이죠. 역사는 모든 나라와 연관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역사가 모두 자기네 역사는 아니죠. 사료들도 확실하지 않은 것들도 많고 없는 것들도 많아 증명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역사를 존중하며, 자기네 역사와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으로 역사의 조각을 맞춰 가야하는 것이지 모두 내 것이야 하는 중국의 행태는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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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글을 단순히 많이 쓰기만 해도 작문능력이 올라갈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정답을 모두 말씀하시고 있네요^^글을 잘 쓰려면 많이 쓰고, 그리고 그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서 전개가 유연하게 이어지는지 논리나 이야기의 흐름에 맞지 않는 부분은 없는지, 맞춤법이 틀린 곳은 없는지 고쳐나가는 퇴고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이전에 신문사설, 유명작가의 여행기, 에세이, 소설, 시 등 다양한 글을 읽어 기존 작가들이 글을 써내려가는 방법을 배워보는 것도 좋습니다. 좋은 글 쓰시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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