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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을 공유하고 모르는 것을 함께 공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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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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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려시대에 백두산이 화산폭발을 했다는데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백두산의 화산 폭발 시기는 과거 고려시대인 939년에 한번의 조짐을 보였다가 946년~947년 경에 본격적으로 폭발하여 화산폭발지수 7에 해당하는 정도일 것으로 추정되며, 폭발로 인해 분출된 쇄설물의 양이 83~117세제곱킬로미터는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947년 이후 총 16회의 화산분화 기록이 발견되었으며, 폼페이 멸망에 기인한 벳비오 화산의 100배, 아이슬란드 화산의 1000배에 달하는 강한 폭발이었다고 합니다.[기상청블로그 2019.2.12 참조]해당 기록은 우리 기록으로는 , 에 나와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일본의 한 사찰에서 발견된 연대기의 내용 중에서 ‘하얀 잿가루가 눈처럼 내렸다’는 946년 11월 3일의 기록이 있고, 당시 화산재가 일본까지 날아간 사실도 일본 지질조사단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고 합니다. 피해규모는 정확히는 기록되어있지 않으나 당시 폭발에 의해 백두산 천지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북한 / 미국 / 영국의 과학자로 구성되어진 공동연구진의 백두산 암석 분석 연구 결과에 따르면, 1815년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 폭발의 규모보다 컸고, 공기 중으로 방출된 황의 양은 4500만톤, 화산재는 상공으로 500km 솟은 뒤 반경 600km 지역을 3일 동안 뒤덮었으며, 약 8만명이 사망하고 지구의 기온을 1도 정도 낮췄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듬해 미국과 유럽까지도 여름이 오지 않아 곡물생산에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그리고 또 한 가지 제기되었던 가설로는 당시 백두산 폭발과 발해의 멸망과도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거란의 요사에서는 발해를 공격한 지 10일만에 926년에 발해가 멸망하였다고 기록되어있지만, 그것은 100% 사실이라고 믿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의 역사에 의하면 발해가 멸망하였다고 하는 해인 926년 이후 930년대에도 지속적으로 일본에 발해의 사신이 방문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에도 934년 발해의 태자 대광현이 수만명을 이끌고 고려에 투항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거란의 요사가 이후 400년이나 이후에 기록되었기에 그 연대가 정확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발해가 고구려인, 거란, 말갈의 다민족국가였기에 내부적인 문제가 발생했다고는 보이고 그로 인해 혼란의 틈을 타 거란이 침입하여 도성을 함락시켰던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그러나 당시 거란의 태조인 야율아보기는 정복 후 땅을 차지하지 않았고, 돌아오다 사망하였습니다. 이것으로 볼 때 침입하여 오랜 전쟁을 했다고 볼 수 있고, 결국 발해의 태자 대광현이 고려에 투항했던 934년에 지도층들이 완전 분열된 것으로 보이고, 이후 얼마지 않아 백두산이 폭발하면서 국가가 와해되어 최종적으로 멸망한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멸망의 주 원인이 백두산 폭발은 아니었겠지만, 마지막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의심해 볼 수 있는 사안이라고 봅니다. 이후로도 1413, 1597, 1668, 1702, 1898, 1903년에 분화했다고 Vocano Discovery 분화기록에 나와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도 백두산 아래에 존재하고 있는 마그마의 양은 1256제곱킬로미터로 서울시 면적의 2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백두산이 폭발하게 되면....생각만 해도 두려운 일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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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류는 어느 방향으로 발전이 되어지는 중일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인류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인문학자이자 역사학자 중에 유발 하리리가 있습니다. 그는 인류를 위협하는 3가지 요소로서 1. 세계 대전과 핵전쟁 2. 생태적 파괴 3. 파괴적 기술의 언급하고 있습니다. 특희 세 번째 파괴적 기술에 관련하여서는 생명공학,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에 관련된 기술은 인류의 물리적 생존만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의미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의문의 가지고 있으신 혁신적인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노동력을 덜 필요케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우리 인간은 수천 배로 발전된 환경과는 달리 그 만큼의 행복을 찾는 능력은 퇴화되었기에 불만이 많아지고 삶에의 의미를 잃어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가 만들어 낸 국가나 종교는 사실상 실체가 없는 허구로 인간들을 연결 시킬 수 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역사나 종교, 국가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의 역사를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이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 첫 번째 과제라고 봅니다. 발전한 과학기술은 인공지능이라고 하는 신적 능력에 버금가는 존재를 탄생시켰습니다.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비유기적인 생명체를 만들 수도 있고,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전능의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신의 영역이라 일컬어지던 창조와 파괴의 능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인공지능은 희노애락을 느낄 수 있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기억되고 모집된 데이터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인간의 감정을 파악하고 반응하는 능력은 날로 커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여러가지 정책, 운영, 개발 등의 판단을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에 의존하는 정도가 커질 것입니다.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볼 때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정보, 소득 등 기타 가치를 절대로 소수의 기득권 세력(엘리트)들이 아닌 모두가 나눌 수 있는 공동 소유의 개념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공동 소유라 함은 모두가 같은 양을 똑같이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단순히 기본 소득 분배 같은 것이 아니라 바뀐 세상에 적응하고 또 다른 직업을 영위해나가게 하여 인간의 존재 가치를 유지해나갈 수 있도록 교육을 통해 각자의 잠재력을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활용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현재 디지털 정보의 경우에는 미국과 중국의 두 강대국이 독점을 강화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파멸의 길을 자초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하나가 모든 것을 가지는 것은 전체주의의 시작입니다. 그러한 욕심으로 인해 더 많은 인류는 퇴보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자신들은 더 가졌다고 착각하겠지만, 그것 또한 더욱 발전할 인공지능에 의해 주도권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공유하고, 견제할 수 있는 인류의 힘을 키우는 것이 자연과 인류와 인공지능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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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려장이라는 말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건가요 ?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장이라고 하는 것은 나이든 노부모를 산에 버리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나라 사서의 어디에도 이러한 것이 빈번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불경의 '기로국이야기'나 중국의 '효자전' 등에서 설화처럼 전해올 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려장이라고 하는 행위는 사실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어디에서? 바로 일본에서 있었습니다. 사실 일본은 에도시대부터 우바스테야마라고 해서 늙고 병든 사람을 지게에 지고 산에 가서 버리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1882년에 발간된 윌리엄 E, 그리피스라는 사람이 '은자의 나라 한국(Corea, hermit nation)'에서 고려장의 내용을 언급하였습니다. 그는 일본의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과학의 필요성에 따른 일본의 초청으로 1870년 일본으로 가 1871년에 메이신칸에서 이화학을 가르쳤고, 1872년에는 동경제대의 전신인 카이세이에서 화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다 미국으로 귀국 후 일본을 연구하다가 조선을 알지 못하면 일본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판단해 조선을 연구하게 됩니다. 본 책은 한반도의 고대사부터 을사조약까지 다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작가는 일본을 중심으로 놓고 조선에서 미신과 전제왕권을 몰아내고 일본이 서구문명을 도입시켰다며, 아주 조선을 미개하게 보는 오류가 있었습니다. 상기와 같은 일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일부 발생하였던 불미스러운 일을 풍습처럼 묘사했던 것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조선을 가서 확인해보고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내용들도 오류투성이의 내용이라고 합니다. 조선왕조는 유교 국가이므로 효를 중요시하는데 이러한 일이 일반적이었다면, 분명 사서에서 다루었을 것인데 그러한 내용은 조선왕조실록 등에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드물게 생활고로 인해 벌어진 범죄행위일 가능성이 큽니다.고려장이라는 내용이 본격적으로 제시된 것은 1919년 '전설의 조선'이라는 책에서 미와다 마키가 조선의 전설을 묶어서 발간한 책에서 입니다. 그리고 192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된 조선동화 '부모를 버린 사내'라는 구전동화를 내놓았고, 1926년 나카무라 료헤이가 집대성한 조선동화집에도 비슷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일제 강점 시기에 왜 본격적으로 이러한 내용이 나오는지. 어쩌면 효를 중요시하여 부모를 섬긴다는 조선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에도시대부터 우바스테야마로 늙고 병든 사람을 지게에 지고 산에 가서 버리는 풍습을 덧씌움으로써 아주 미개한 민족이라는 것을 강조하여 자신들이 조선을 개혁시켜 식민지화 한 것에 대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함이 아니었는지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외국의 공동묘지 문화나 일본의 자택 사당에 유해를 안치하는 것과 달리 사망 시 양지 바른 산간에 매장하는 풍습을 가진 우리의 풍습을 산 채로 버리는 모습으로 둔갑시켜버린 것은 아닌지 의심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화장하여도 집안의 선산 묘터에 매장하는 풍습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더욱 존중하여 좋은 자리에 조상들을 함께 모시고 후대의 가족들을 더욱 돈독하게 하는 것이지 산 사람을 지게에 지고 가서 버리고 파묻는 미친 짓이 아닙니다. 어릴 때는 우리도 학교에서 어떤 의도를 가진 선생님의 말씀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러한 고려장의 풍습이 있었다고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많은 사서와 기록들을 살펴보아도 고려장의 풍습이 횡행하였다는 내용은 없는 듯 합니다. 어느 시대든 그러한 범죄적 사건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풍습이었다면 반드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정말로 구전되던 전설을 일본에서 집대성하여 출간한 것이라면, 그러한 내용은 불효가 얼마나 악한 것인지 반증하기 위한 것이지 풍습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과거 텔레비전 방송에 방영하였던 전설의 고향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부모님의 병환을 살리기 위해 아이를 뜨거운 물이 끓는 가마솥에 던져 부모를 구했다는 설화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끓인 물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산신령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그랬고, 결국 부모님의 병환은 나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부모의 손으로 죽였다는 슬픔에 빠져있었는데 갑자기 아이가 살아서 나타났고, 놀라서 가마솥을 열어보니 커다란 산삼 한 뿌리가 있었더라 하는 이야기로 부모에 대한 효를 산신령이 시험하기 위해 그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과거에 우리 민족이 아이를 삶아먹는 식인의 풍습을 가졌다고 할 수 있었을까요^^. 나쁜 의도를 가지고 곡해하려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고려장에 대한 오해가 일본이 의도한 것이면 아주 사악한 것이고, 그렇지 않고 단순히 전설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면, 그냥 거기서 주는 교훈을 내포한 이야기로서 취급하면 될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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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역사 공부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당연히 역사공부는 자국의 역사를 먼저 공부해야 합니다.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시기별로 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고대사를 공부하다보면,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주변국들과의 관계나 정세 등이 제시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고로 그 관계국의 관련 역사를 참조하여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대부분은 동양 즉 중국, 일본, 러시아 일부일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제국(조선말기)부터 현대사에 들어가면 동양권 뿐만 아니라 서양의 열강들과의 관계도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서양사와 함께 접목하여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이렇게 우리 한국사를 먼저 공부하여 주변의 역사를 관계별로 중간중간 보다 보면 이후 관계국 전체 역사가 궁금해 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관심이 있는 쪽을 선정하여 동양사든 서양사든 전체적으로 살펴보심이 좋을 듯 합니다. 한국사를 접할 때 교과서적인 부분만을 보는 것은 지양하시고, 다양한 견해의 역사서를 탐독하시기 바랍니다. 현재의 교과서는 여전히 식민사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합니다. 예를 들어 고구려의 영토에 대한 문제만 하더라도 중국의 구당서 등에서도 동서 3천1백리, 남북으로 2천리에 달한다고 하고 있으나, 실제로 일부만 반영함으로써 정작 몽골지역에서 고구려토성터 등이 발견되었는데도 그 영토를 한정하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최근 많은 사료들이 검증되어 있습니다. 너무 오래전의 사료들이나 우리가 작성한 국뽕의 역사가 아니라 경쟁국이었던 중국의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이므로, 보통 자신들의 더 크게 생각하고 상대를 낮추는 경향이 있는 중국을 감안할 때 기록된 것보다 더 넓을 수도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내용입니다. 역사공부에 관심을 가지시는데 대해 기쁨과 독려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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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무슨 뜻 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81년 조계종 종정으로 취임할 당시에 성철스님이 하신 사람을 통해 글로 적어 전한 말씀이 그 유명한 "뚜렷한 깨달음 널리 비치니 고요함과 없어짐이 둘이 아니라.보이는 만물은 관음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이라. 보고 듣는 이것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여기 모인 대중은 알겠느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입니다. 이것은 성철 스님이 처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중국 송나라 때 발간된 에 나오는 중국 승려 청원유신이 남긴 말입니다. 이것은 그냥 해석하면 존재 그대로를 인정하고 순리에 맡기라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만 그리 간단한 내용은 아닌 듯 합니다.불교적으로 해석해보면 보고 듣는 것이 실제이고 그 함의가 관념이라고 둔다면 실제는 색(色)으로, 관념은 공(空)으로 대의하면. '색은 공이요, 공은 색이로다'라고 하는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구절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끊임없이 변화하며,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불의 등 구별도 경계도 없으므로 선과 악, 귀천도 없으며,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진리를 설법한 것으로 생각됩니다.당시의 시대상이 1980년 군부정권의 계엄령으로 사회가 경직되어있었을 때라 우회적으로라도 정부를 비판하고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말을 기대하였던 터라 굉장히 독특하고 놀라운 설법이었고 당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현실도피처럼 느껴졌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본다면 현실도피보다는 세상에 대한 자각, 깨달음의 쉬움, 문제의 근원에 대한 인식, 선악의 구분함의 무의미함을 함의로 이야기하며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알고 행동해야 하며 행동할 때는 사람에 대한 선악의 구분이 아닌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논의해야 하며, 그것은 물과 산처럼 그 존재 그대로를 인정하며 흐르고 변하는 시간처럼 돌아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는 원리를 이야기한 듯 합니다. 법어이다 보니 해석에는 다양한 것이 있을 수 있으니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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