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우리나라는 경제성을 가진 석유가 매장된 것이 전혀 없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굉장히 조금이지만 대한민국도 산유국에 포함된다. 석유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름이 나오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수지타산이 맞는가?'이다. 지하자원 자체만 놓고 보자면 한반도는 '자원의 표본실'이라 할 정도로 자원이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그 종류도 다양하다. 다만 품질이 조악하고 양이 적어서, 이를 채굴하는 것보다 차라리 외국에서 수입하는 게 싼 것이다. 양이 많았으면 표본실이 아니라 창고라고 불리었을 것이다.한국석유공사에서 2004년부터 울산광역시 남동부 해역의 동해 가스전에서 하루 평균 5,000만 ft³의 천연가스와 1,000 배럴의 초경질유를 2021년 연말까지 생산했다. 울산광역시, 부산광역시, 경상남도 일부 수요를 겨우 충족시키는 수준이었고, 급격한 고갈로 결국 중단되었지만, 석유 한 방울도 안 나는 나라였던 대한민국 최초의 유전이라는 의미가 있다.2006년 발견되어 2016년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한 동해-2 가스전은 동해-1의 10분의 1 수준의 매장량이라 2022년 6월부로 생산 종료가 예정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산유국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안보와도 연관이 있는데 사우디와 중동 산유국들은 비산유국에게 유전개발이나 국제입찰 등에서 차별을 두는 경우가 있어 산유국 지위는 국가적으로 중요하다. 생산 종료 이후 해양플랜트는 해양풍력발전 시설로, 가스를 시추하고 남은 공동에 이산화탄소 약 1,200만 배럴을 30여년에 걸쳐 저장하게 된다.2014년 동해 8광구 및 6-1광구 탐사 결과 동해-1 가스전보다 9배 큰 규모의 가스전(최대 3,600만t)이 발견되어 개발이 진행 중이다.2021년 6월 동해 울릉분지 6-1광구 중, 동부지역에서 시추를 개시하며 대륙붕 개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해당 지역의 추산 매장량은 7억 배럴수준으로 기존 동해가스전에서 생산한 양보다 15배 많은 수치이다.
Q.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 전문내용과 명언에 대해 궁금한게 있어서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 87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이 대륙에 자유의 정신으로 잉태되고 만인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신념을 바쳐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지금 우리는 바로 그 나라가, 아니 이러한 정신과 신념으로 잉태되고 헌신하는 어느 나라이든지, 과연 오래도록 굳건할 수 있는가 하는 시험대인 거대한 내전에 휩싸여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전쟁의 거대한 싸움터인 이곳에 모여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바로 그 싸움터의 일부를 이 곳에서 제 삶을 바쳐 그 나라를 살리고자 한 영령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봉헌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이 헌정은 더없이 마땅하고 옳습니다.그러나 더 큰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는 이 땅을 헌정할 수도, 축성할 수도, 신성화할 수도 없습니다. 여기서 싸웠던 용맹한 전사자와 생존 용사들이 이미 이 곳을 신성한 땅으로 축성하였기에, 보잘것없는 우리의 힘으로 더 보태고 뺄 것 따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은 오늘 우리가 여기 모여 하는 말들을 별로 주목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을 것이나, 그분들이 이곳에서 이루어낸 것은 결단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오히려 이 자리에서 살아 있는 자들이, 여기서 싸웠던 그분들이 그토록 고결하게 전진시킨 미완의 과업을 수행하는 데 우리 스스로를 봉헌하여야 합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그 위대한 사명, 즉 고귀한 순국선열들이 마지막 신명을 다 바쳐 헌신한 그 대의를 위하여 더욱 크게 헌신하여야 하고, 이분들의 죽음을 무위로 돌리지 않으리라 이 자리에서 굳게 결단하여야 하며, 이 나라가 하나님 아래에서 자유의 새로운 탄생을 누려야 할 뿐 아니라, 국민의,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통치가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는 그 위대한 사명에 우리 스스로를 바쳐야 합니다.2. ‘국민의 정치’는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에 의한 정치’는 국민에 의해서 정치가 이루어져야 하며, ‘국민을 위한 정치’는 모든 국민이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정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Q. 이탈리아에 르네상스가 등장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발전한 이유는첫째, 이탈리아 반도는 로마제국의 중심지였고, 그 전통이 기독교 세계로 편입된 이후에도 남아 있었다.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로마 유적만 봐도 알 수 있듯 고대 로마의 문화는 여전히 이탈리아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또한 오랫동안 동로마 제국과의 활발한 교류로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파괴되었던 고대 로마의 문헌과 기술력을 거의 복원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스만 제국에 의해 동로마가 멸망했을 때 서방으로 피난한 동로마 예술가 기술자 등 지식인 대부분이 이탈리아로 향했다. 피렌체 공화국의 정치가 코시모 디 조반니 데 메디치가 동로마 제국의 학자 게오르기오스 게미스토스 플레톤과의 교류를 통해 동로마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망명하는 동로마 그리스 학자들의 보금자리를 제공하며 연구를 도와 학문의 진작에 큰 역할을 했다는것이 대표적인 예시. 그래서인지 피렌체가 있는 토스카나는 오늘날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구적인 지역으로 손꼽힌다.둘째, 중세 유럽을 지배하고 중세 사람들의 삶을 결정짓던 대표적인 체제인 봉건제가 유독 이탈리아에서는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반도가 나폴리와 교황령을 제외한 수많은 도시국가와 소국들로 분열되어 강력한 군주가 나타나지 못했던 것이다. 교황령의 존재도 이탈리아 지역을 안정적으로 가르는데 영향을 주었다. 한편 유럽 중심지에서는 영국령 프랑스령 사이 백년전쟁(1337~1453), 산간 도서 밀라노 지역을 제외한 유럽본토의 중세 흑사병(1346~1353) 등으로 인해 문화부흥은 커녕 인구수가 갈려나가고 있었다.셋째, 12세기부터 이탈리아의 각 도시들은 무슬림 해적을 소탕하는데 성공을 거두었고 그 후에 지중해를 장악하여 중계무역의 중심지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중계무역 특성상 여러나라의 문화에 대한 접근성이 높기 때문에 많은 문물이 이탈리아 반도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도시의 상인들은 부와 힘을 얻고 교양과 문화적 수준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상인들은 특유의 이해타산적 계산으로 인해 기독교 등 종교의 꼬드김, 상업에 방해가 되는 윤리적 규범에도 넘어가지 않았고(심지어는 제4차 십자군 원정으로 아군을 패며 한 몫 두둑히 챙기기도 하였다.), 자신들과 비슷한 속성(자신의 재능을 기반으로 성장한 인물)의 직종들인 예술가, 철학자, 인문학자, 수학자들에게 큰 후원을 해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많은 예술가들이 여유롭게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넷째, 아비뇽 유수(1309~1377)가 끝나고 로마로 돌아온 교황은 교권을 다시 세우고, 황폐화 된 로마를 재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와의 이탈리아 전쟁(1494~)으로 북부 이탈리아가 털리기 시작할 즈음 율리오 2세(1503~)는 교황령 확대를 꾀하며 전쟁에 나선다. 막대한 군자금이 필요하므로,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막대한 헌금(면죄부)을 끌어들였으며, 또한 이 돈으로 이탈리아 각지의 유명한 르네상스 기술자들을 로마로 불러들여 천지창조, 아테네 학당 등이 제작되었으며, 더 나아가 성 베드로 대성당(공사기간: 1506~1626) 등을 재건하기에 이른다. 중세의 끝에 논란이 있고, 중세가 끝났는데 교회의 권력이 오히려 더 강해 보이는 이유, 그리고 르네상스가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의 복원을 추구한다면서 역설적으로 가톨릭 분위기가 풍기는 르네상스 작품들이 다수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후에 피렌체에서 발달했던 초기 르네상스는 16세기를 기점으로 베네치아에도 전파되기 시작한다. 이 두 도시는 교황들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에 새로운 문화적 중심지가 되었다.
Q. 광해군은 반정으로 폐위 되고 나서 상당히 건강하게 장수 했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광해군은 66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수명으로만 따지면 조선 역대 국왕 중 네 번째로 장수한 임금이다.이렇듯 광해군이 죽음을 당하지 않은 것은 이미 이이첨, 기자헌 정인홍 유희분, 박승종, 유몽인, 임취정 박홍구를 비롯한 북인 영수들이 대부분 숙청으로 죽어서 그의 세력에 대해 거의 씨를 말렸기 때문이고 반정의 명분으로 내세운 유교 예법상 세자때부터 30년을 군주로 섬긴 광해군을 죽이는건 시해(弑害)이기 때문이다. 왕이 패륜을 저질러서 신하들이 왕을 내쫓을 수는 있으나 죽일수는 없다는 것은 유교 고전에서 걸주 임금 뿐만 아니라 조선조 중종 반정때 연산군의 예가 있다. 실제로 폐위를 주도한 서인들도 광해군 폐위의 근거로 선조독살설을 넣거나, 또는 광해군을 죽여야 한다는 것에 절대로 반대했다.다른 의견으로는 이미 광해군은 10년에 걸쳐 민심을 잃었기에 복위의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유교의 예법으로도 '폭군을 내치는 법은 있어도 주륙하는 예는 없다' 는 것이었고 인륜을 기치로 든 인조 정권이 광해군을 죽일 경우 반정의 명분이 꺾일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폐주'라고 해도 죽여버린다면 인조의 반정 명분에 크게 흠을 입게 되는 것이라 폐위시키는 선에서 끝낼 수밖에 없었던 것. 게다가 연이은 전쟁에서의 패배로 무능하다는 평판을 받고 있었던 당시 인조가 광해군을 죽인다는 것은 한마디로 자신의 지지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 인목대비가 "광해군의 목을 베고 살을 씹겠다."란 말을 했을 때도 이들은 계속 말리며 반대했다.
Q. 뮤지컬 노트르담 대성당&노트르담 드 파리의 누적 관객수는 얼마 정도 되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5세기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배경으로한 빅토르 위고의 동명의 고전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프랑스 뮤지컬. 1998년에 초연되었으며, 이후 20년 동안 전 세계 20개국에서 총 4,000회 이상 공연, 1,500만 이상 누적 관객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