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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영문학 및 신문방송학과 전공

성균관대 영문학 및 신문방송학과 전공

장경수 전문가
동화세상에듀코
Q.  신라 왕의 호칭에 대해 의문점이 있네요
안녕하세요. 장경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왕'은 중국식 호칭이에요. 신라는 '왕'이란 호칭을 사용하기 전에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어요.제1대 박혁서게는 '거서간'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밝은 태양'이라는 뜻이에요. 제2대 남해는'차차웅'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는데, 이는 '무당'을 뜻하는 말이에요. 이것으로 왕이 제사장의 역활까지 맡아 했는데, 신라 초기의 사회가 제정일치(종교와 정치 권력이 분리되지 않고 한 사람에게 집중된 정치체제) 사회였음을 알 수 있어요. 제3대 유리부터 제16대 흘해까지의 호칭은 '이사금'이었어요. 이사금은 '나이 많은 사람'을 뜻하는데, 나이 많은 사람은 이가 많다는 데서 나온 말이랍니다. 남해차차웅의 아들 유리와 사위인 탈해가 서로 왕위를 양보하다가 떡을 깨물어서 잇자국이 많이 난 유리가 먼저 왕이 되었다고 해요. 흘해이사금까지는 박,석, 김씨가 번갈아 가면서 왕위에 올랐어요. 박·석·김의 3부족이 연맹하여 그 연맹장을 3부족에서 교대로 선출하게 될 때에 연맹장이란 의미에서 이사금을 칭하였습니다. 제17대 내물부터는 왕호를 '최고위 우두머리' 또는 '높은 마루에 앉아 있는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진 '마립간'으로 고치고, 김씨에 의해 왕위가 세습되었으며,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했어요. 또한 눌지마립간 때는 왕위의 '부자 상속제'를 마련했지요. '왕'이라는 호칭은 503년, 제 23대 지증왕 4년부터 사용했답니다.
Q.  고려시대 문학과 건축의 특징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장경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 시대의 건축은 궁궐과 사원이 중심이었는데,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개성 만월대 터를 보면 당시 궁궐 건축을 짐작할 수 있다. 경사진 면에 축대를 높이 쌓고 건물을 계단식으로 배치하였기 때문에 건물이 층층으로 나타나 웅장하게 보였을 것이다.고려 전기에는 주로 주심포 양식이 유행하였는데, 13세기 이후에 지은 일부 건물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은 가장 오래 된 건물로 알려져 있고,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예산 수덕사 대웅전은 균형잡힌 외관과 잘 짜여진 각 부분의 치밀한 배치로 고려 시대 건축의 단아하면서도 세련된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려 후기에는 다포식 건물도 등장하여 조선 시대 건축에 큰 영향을 끼쳤다. 황해도 사리원의 성불사 응진전은 고려 시대 다포식 건물로 유명하다.고려 시대의 석탑은 신라 양식을 일부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인 조형 감각을 가미하여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다각 다층탑이 많았고, 안정감은 부족하나 자연스러운 모습을 띠었다. 석탑의 몸체를 받치는 받침이 보편화되었다. 개성 불일사 5층 석탑과 오대산 월정사 팔각 9층 석탑이 유명하며, 고려 후기의 경천사 10층 석탑은 원의 석탑을 본뜬 것으로, 조선 시대로 이어졌다. 지역에 따라서 고대 삼국의 전통을 계승한 석탑이 조성되기도 하였다.승려의 승탑은 고려 시대에도 조형 예술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고달사지 승탑처럼 신라 후기 승탑의 전형적인 형태인 팔각원당형을 계승하는 것이 많고, 특이한 형태를 띠면서 조형미가 뛰어난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등도 있다.고려 시대의 불상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독특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초기에는 하남 하사창동 철조 석가여래 좌상 같은 대형 철불이 많이 조성되었다.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이나 안동 이천동 마애 여래 입상처럼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지역 특색이 잘 드러난 거대한 불상도 조성되었다. 또, 영주 부석사 소조 여래 좌상같이 신라 시대 양식을 계승한 걸작도 있다.주심포식(柱心包式) 건물지붕의 무게를 기둥에 전달하면서 건물을 치장하는 장치인 공포가 기둥 위에만 짜여져 있는 건축 양식다포식(多包式) 건물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짜여져 있는 건물. 웅장한 지붕이나 건물을 화려하게 꾸밀 때에 쓰였다.
Q.  AI가만든 콘텐츠도 저작권이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장경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도화된 AI 기술은 방대한 양의 기존 저작물로 학습 또는 훈련을 한 후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하는데 이용된다. 이러한 생성형 AI를 이용하여 만든 콘텐츠가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 사람이 창작한 부분과 AI가 생성한 부분으로 구성된 콘텐츠에 대하여 저작권 등록이 가능한지, 등록 신청자가 저작권 청해 제출해야 정보는 무엇인지 등이 저작권 등록 과정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2018년 미국 저작권청은 '기계에서 작동되는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으로 생성된 것'이라는 설명이 기재된 시각 저작물 등록 신청에 대하여 인간의 창조적 기여 없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등록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지난 2013년 2월에는 AI 서비스 미드저니가 생성한 이미지와 인간이 작성한 텍스트로 구성된 그래픽 소설이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에 해당하지만 개별 이미지 자체는 저작권으로 보호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처럼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제작된 콘텐츠가 급증하는 가운데 미국 저작권청은 지난 3월 16일 AI를 활용하여 생성된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 심사 및 등록 기준을 가이드라인 형태로 발표했다.
Q.  조선시대 왕족들도 과거를 보고 관직에 나갔나요?
안녕하세요. 장경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원래 신라-고려-조선 초까지는 왕족들도 다른 신하들처럼 일반 관직에 나갔으나, 조선 성종 때의 구성군 사건 이후 '종친사환금지법'이 생기며 왕으로부터 5촌까지는 명예직 외의 관직은 하지 못하게 되고, 왕실에서 주는 봉록으로 먹고 살게 되었다. 고려의 경우는 왕족들의 힘이 가장 약했는데, 초기는 제법 강했으나, 이후 절간에 승려가 된다든가, 반란군의 얼굴마담이 된다든가, 원나라에 사신으로만 간다든가, 볼모로 잡히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특히나 대령후 사건의 경우는, 문벌귀족이 비대해짐에 따라 왕족의 권위가 얼마나 추락했는지 여실하게 보여준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로 인해 의종 시기를 거쳐 무신정권 때는 왕족의 권위가 더욱 바닥으로 추락했다. 왕의 권위가 실추됨과 동시에 왕족들의 권한도 덤으로 실추될 수밖에 없었다.조선의 경우, 중기 이후에는 경국대전의 종친사환금지법에 따라, 왕족은 과거를 볼수 없고, 실권직도 받지 못했다. 벼슬길에 오르더라도 명예직이나 한직으로, 청요직이나 당상관, 정승에 오를 수 없었으며, 5대 이상 지나야 종친에서 벗어나 과거를 볼 수 있었다. 조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왕족도 정치인이나 공무원이나 하원의원이 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되고 싶다면 신적강하나 후계권 내지는 왕족 포기나 평민이 되어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왕족들은 예술가, 군인, 성직자가 되거나 학자가 되는 길을 걷는게 다반사다.
Q.  조선시대에 가방이라는 기능으로 사용된 것에는 어떤 종류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장경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가방이라는 것은 물건을 담아 나른다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물건을 감싸는 것까지 포함하여 하나의 꾸러미로 만든다는 포(包)의 개념으로 발달하여 왔습니다. 따라서 보자기는 근거리 외출이나 장거리 이동에 관계없이 생활에 두루 널리 쓰인 운반 도구 역할을 하였으며 또한 물건을 담을 수 있도록 한 주머니는 작은 것은 패용하고, 큰 것은 어깨에 메거나 지고 다녔습니다. 버드나무나 대나무 따위로 결어 만든 다양한 종류의 상자도 일상생활에 있어 보관도구이자 이동시에는 운반 도구로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도 동북아시아 지역의 휴대, 운반의 부분은 비슷하다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양반 중심의 문헌 기록만으로는 구체적인 조선시대 가방의 사용 형태나 형식은 파악이 어려운것으로 나와있으며 실제 가방은 이동이 잦은 서민이나 천민들을 중심으로 발달 하였으며 그들이 착용한 가방은 형태에 따라 보자기, 자루, 상자로 나누어지며 상황에 따라 착용 방식이나 재질 등에 차이가 있습니다. 보자기로 꾸린 짐을 멜빵에 연결하여 등에 지고 다니는 전통 가방의 재질은 크게 포목(布木), 피혁(皮革), 짚· 풀, 종이로 나뉘며 포목으로는 보자기나 주머니, 자루 따위를 만들었으며 짚· 풀로는 상자형의 바구니나 망태를 엮어 사용하였습니다. 피혁으로는 자루나 상자 모양의 가방을 만들었고, 종이는 문인취향이 반영된 지갑으로 제작하여 사용하였습니다. 포목과 짚· 풀은 서민계층에서 사용이 주를 이루었고 피혁과 종이는 상류계층에서 가방의 재료로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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