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국제 사회에서 고구려는 어느 나라의 일부로 인식되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사실 중국이 고구려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하는 것은 과거에는 전혀 없던 생각이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민족주의 등의 영향으로 자국의 역사를 확립, 확대하면서 현재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토에 대한 권리 등을 생각하며 고구려의 역사 또한 자신들의 영토에 있었으니 중국의 역사로 만들려 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는 잘 알려진대로 중국만의 주장에 가까우며, 남한 뿐만 아니라 북한 또한 이러한 정치적인 역사왜곡에 대항하고 있으며 북한 내에는 과거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정당성이 이어져 있고, 중국의 논리라면 부여 계통인 고구려, 백제가 모두 자신들의 역사라고 해야하는데 단지 고구려만 자신들의 역사로 우기는 것은 영토가 기준이 되기 때문이죠. 근데 고구려의 수도가 북한에 있다라면 또다른 오류가 발생하죠.
Q. 병자호란 이후, 소현세자 아들 대신에 봉림대군이 왜 왕이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역사를 공부한 분들이라면 소현세자의 독살설 등은 참 많이 들어본 이야기라 생각되는데요. 소현세자가 독살설에 휩싸인 이유가 바로 아버지 인조에게 굴욕을 주었던 청나라와 친하며, 서양의 문물을 적극 도입하려 하였다는 것이죠. 당시 조선의 경우 친명배금을 기본으로 명나라를 부모로 섬기며 따랐던 상황에서 청나라에 굴욕을 당한 상황에 세자라는 국가의 서열 2인자가 청나라와 친해보이니 얼마나 미워보였을까요. 그러나 반대로 봉림대군은 형과는 다르게 신중하고, 오히려 반청사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인조의 입장에서 소현세자 보다는 봉림대군이 자신을 이해해주고, 생각의 방향이 같으리라 생각한 것이죠. 결국 소현세자의 3아들 중 1명이 아닌 봉림대군을 청에서 불러들여 세자에 책봉한 것입니다.
Q. 역대 가장 찬란했던 한국역사 아니 한반도역사가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한반도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기는 아마 지금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고구려의 영광이 빛이 났었고, 조선에서 세종대왕 시기에 여러 제도가 개선되고 개발되면서 많은 것들이 발전하였죠. 하지만 지금 현대의 한반도, 대한민국은 그 어느 시기보다 문화에서 부터 기술 등에서 찬란한 빛을 내고 있습니다. 물론, 정치 사회 면에서 트러블들이 있었지만 그러한 일들은 과거에도 이어져 왔었으니 조금은 차치하더라도 케이 문화, 케이 반도체, 조선, 방산은 어느 나라도 쉽게 따라오지 못하는 그런 것이죠.
Q. 을사늑약때 왜 조선은 끝까지 저항하지 못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을사늑약이 맺어지던 시기는 이미 조선이 일본에 의해 털릴대로 털린 상태였고, 그 외 서양 국가들로부터도 일본이 조선을 먹는 것에 대한 어느정도 인정되기도 하였죠. 물론, 그 전에 청나라,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에 붙어서 위기를 타개해보려 하였으나 이미 망조가 들어선 국가에서 더이상의 방법은 없었습니다. 특히나 친일파가 아주 철저하게 일제에 협력하면서 조선은 더 빠르게 무너져 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