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상담
좁은 업계에서 평판을 쥔 선배와 어떻게 거리를 둬야 할까요?
저는 첫 직장 상사와 퇴사 후에도 업계 선배로서 연락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분은 원래 성격이 굉장히 괴팍하고 고압적이며, 사람을 공개적으로 망신 주는 스타일입니다.
다만 첫 직장 시절 제가 조직에서 평판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을 때 먼저 술 한잔하자고 불러줬고, 업무 때와는 달리 술자리에서는 후배를 잘 챙기는 모습을 보여 저도 어느 정도 마음을 열고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오게 됐습니다.
문제는 이분이 업계 사람들의 평판과 가십을 수집하는 데 거의 집착할 정도로 관심이 많다는 점입니다. 업계 특성상 술자리가 많고 사람도 많지 않다 보니 소문이 빨리 도는데, 이분은 누구의 평판이 어떤지,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계속 알아와 만날 때마다 이야기합니다. 그것도 단순히 묻는 수준이 아니라 취조하듯 캐묻습니다.
저 역시 적응 문제 등으로 여러 번 이직을 했는데, 회사를 옮길 때마다 이전 회사 사람들을 통해 제 평판과 퇴사 배경을 알아보고 다녔습니다. 물론 업계가 좁아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최근 권고사직에 가까운 형태로 회사를 나오게 된 일이나 제가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들까지 알고 언급하더군요.
예전에 백수였을 때는 저를 보며 "백수 주제에 무슨 낯으로 날 찾아왔냐"는 말까지 했습니다.
최근에는 약 4개월의 공백기를 끝내고 새로운 회사에 입사했는데, 만날 때마다 "가는 곳마다 평판이 안 좋다", "사람들이 다 일을 못한다고 한다", "그 회사는 왜 널 뽑았냐. 평판 조회도 안 했냐"는 식으로 말합니다. 심지어 "너 또 평판 안 좋다는 얘기 들리면 버릴 거다"라는 말도 반복합니다.
물론 실제로 큰 실수를 해 권고사직에 가까운 형태로 나온 회사가 있었고, 그 일로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억울한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제가 설명하거나 해명해도 믿지 않는 분위기였고, 무슨 말을 하든 의심하거나 반박했습니다.
제가 "그래도 인성 문제로 욕먹은 적은 없지 않냐"고 묻자, 예전에 선배들에게 대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나였으면 반 죽였을 것"이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당시에도 억울한 부분이 있었지만 업계 선배이기도 하고 괜히 반박해봤자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 그냥 참고 넘어갔습니다.
더 불편했던 것은 "그 회사에도 나한테 정보를 주는 사람이 있다", "조심해라"는 식의 말을 했다는 점입니다. 마치 계속해서 제 동향과 평판을 확인하고 있다는 식으로 들렸습니다. 게다가 곧 제가 권고사직에 가깝게 나온 전 직장 사람도 만날 예정이라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제가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까지 또 듣게 될까 봐 걱정됩니다.
이분은 조금이라도 본인 기준에서 이상한 점이 보이면 바로 취조하듯 캐묻습니다. 논리적으로 납득시켜야 끝나는 스타일인데, 대화를 할 때마다 긴장하게 됩니다.
사실 관계를 끊기도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이분 성향을 보고 제 속마음을 숨기며 적당히만 이야기했는데, 그때마다 "네 속마음을 모르는데 내가 널 어떻게 믿냐", "네 동기는 나한테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한다. 너 같으면 누구를 더 믿겠냐", "넌 나잇값을 못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괜히 죄송한 마음도 들었고, 계속 의심받는 것이 싫어서 결국 제 약점이나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들까지 대부분 털어놓게 됐습니다. 오히려 먼저 말하지 않으면 나중에 어디선가 듣고 와서 더 심하게 몰아붙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그 분위기에 휘말렸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예전에 이분과의 약속을 피하려고 "지인들과 중요한 약속이 있다"고 둘러댄 적이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거짓말을 했다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 적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또 다른 고민도 생겼습니다. 이 상사와 저 사이에서 중간 정도 위치에 있는 선배가 있는데, 요즘 계속 저에게 연락해 같이 그 상사를 만나러 가자고 합니다. 그 선배는 상사와 같은 부서도 아닌데 자꾸 자리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고 싶어도 쉽지 않습니다. 그 선배의 제안을 계속 거절하기도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상사가 불편하다는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어렵습니다. 제 이야기가 결국 상사 귀에 들어갈 것 같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두려운 건, 제가 연락을 끊으면 오히려 뒤에서 더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다닐 것 같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제 동기가 이분과 조용히 관계를 끊었는데, 이후 여기저기 그 동기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모습을 직접 봤습니다.
반대로 계속 관계를 유지하자니 만날 때마다 제 과거 실수와 평판 이야기를 듣고, 취조당하는 기분이 들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듭니다.
물론 장점도 있습니다. 술을 사면 정말 통 크게 사고, 후배들에게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습니다. 한편으로는 잘 챙겨주지만, 본인이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순간 상대를 심하게 몰아붙이는 모습도 여러 번 봤습니다.
참고로 지금 제가 다니는 회사는 이분이 예전에 근무했던 회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혹시 제 평판을 계속 확인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회사 생활마저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가 쉽게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거쳐 온 회사들 중 상당수가 불명예스럽게 이직한 경우였습니다. 적응에 실패하거나 권고사직에 가까운 형태로 회사를 나온 적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잡음이 적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은 인간관계로 크게 싸웠다기보다는 업무 능력이나 적응 문제에서 비롯된 경우였습니다.
특히 추천이나 소개를 통해 입사한 회사도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저를 추천해 준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거나 배신감을 느끼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를 좋게 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만약 이 상사와까지 완전히 멀어지게 되면, 이미 좋지 않게 남아 있는 평판에 이분의 영향력까지 더해져 업계에 제 이야기가 더 퍼질까 봐 걱정됩니다. 업계가 워낙 좁다 보니 사람들끼리 연결되어 있고, 회사를 옮길 때마다 과거 이야기가 다시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결국 관계를 유지해도 스트레스이고, 관계를 끊어도 제 평판과 앞으로의 회사 생활에 더 큰 악영향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이분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맞는 걸까요? 아니면 뒤에서 무슨 말을 듣더라도 조금씩 거리를 두는 것이 맞을까요?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