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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02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어느 시점부터 전쟁에서 '총'이라는 무기를 사용하게 되었나요?

임진왜란때에도 조총 이라는 무기를 사용했다고 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어느 시점부터 전쟁에서 '총'이라는 무기를 사용하게 되었나요?그리고 어디에서 전해받았던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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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굉장한비오리121
    굉장한비오리12123.06.02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방아쇠와 탄피 중심으로.. 리볼버나 기타 다른건 곁다리라고 치고..

    15세기쯤에 방아쇠를 통해서 심지에 붙인 불을 "원하는 시점"에 화약으로 옮겨주는 장치를 개발하면서 총이 개발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이시기의 물건을 매치락(match lock)이라고 하고 무겁고 강력한 머스켓, 가벼운 아퀘부스, 아퀘부스가 인도와 일본을 거쳐가면서 이스팅가, 조총이 만들어집니다.

    이 초기형 화약총들이 활약한 전투는 1525년 파비아 전투.

    심지에 불붙이는게 힘드니까, 좀 더 다른 방식으로 불을 붙여보자고 나온게 휠락(wheel lock)인데, 언제 개발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매치락이후 얼마지나지 않아서 개발이 되었습니다. 휠락의 기본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추정... 기병대가 이런걸 선호했는데, 말타면서 불을 못붙이니까.. 마찰로 불꽃을 내는 휠락을 쓰는 권총을 기병대 물건으로 쓰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부싯돌(flint)가 등장하고, 금속기술이 좋아지면서 플린트락(flint lock) 총이 등장합니다. 우리말로 수석식 소총이라는게 이것. 17세기 이후인데, 18세기 초반까지 사용했습니다. 청나라와 영국의 아편전쟁(1840년) 당시 영국군의 주무장이 이 플린트락 소총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방아쇠 당겨도 한박자 늦게 발사되는 특성탓에 사냥총으로는 많이 불만스러웠고, 장거리를 쏘기에는 탄자 안정성이 너무 떨어졌습니다.

    1807년에 영국의 포사이스란 목사 아저씨가 하라는 성경공부는 안하고 사냥총으로 방아쇠를 당기면 즉시 불이 붙은 개념을 고민하다가 퍼커션캡(percussion cap)이란 초창기 뇌관을 개발하는데 성공합니다. 영국군은 1842년에 이걸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기존의 화승총들의 발사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시기에 클로드-에티엔 미니에란 프랑스 군인아저씨가 강선에 맞물려서 제대로 쓸 수 있는 탄을 개발했습니다. 그게 미니에 탄(1848년)입니다.

    그리고 1807년에 퍼커션 캡이 나온 시점에서 뇌관용 민감화약인 뇌홍이 본격적으로 퍼지면서 탄피개발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종이탄피이긴 했지만 1841년에 드라이제 소총이 등장하면서 회전노리쇠를 채용한 "볼트액션"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전술도 크게 변화했는데, 바로 "엎드려쏴"가 가능해졌습니다.

    1860년에는 금속탄피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헨리 라이플"이라는게 등장했습니다. 이 물건은 위의 미니에탄/퍼커션캡 방식의 소총들과 함께 미합중국 군(미국 북군)의 주무기로 미연합군(남군)을 쓸어담았고, 남북전쟁을 북군의 승리로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총들은 단발장전이었고, 헨리 라이플 같은 "레버액션"은 관형탄창때문에 탄의 형태를 제약받았고, 재장전도 빡셌습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이 되어서

    볼트액션+금속탄피+스프링 탄창+무연화약의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가 아는 현대적인 소총들이 등장합니다.

    리-엔필드, 모신나강, 르벨 M1886, 스프링필드 M1903 등등..

    그리고 이런 총들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할 때 쯤에 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사람들을 많이들 학살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총을 처음 제조한 시기는 고려 말엽인 1377년(우왕 3)경으로, 최무선(崔茂宣)의 건의로 화약무기 연구와 제작을 맡은 화통도감(火熥都監)이 설립되면서 중국의 것을 모방하여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화약의 제조법은 최고의 비밀이었기 때문에 중국의 화약기술자로부터 많은 어려움 끝에 중요한 기술을 배워 화약제조에도 성공하였다고 합니다. 그 뒤 조선 초기까지 최무선과 그의 아들 해산(海山)이 대를 이어 우리나라의 화약무기를 발전시켰으나, 중국의 총을 모방하여 만든 당시의 총은 성능이 좋지 못하였고 1447년(세종 29)에 이르러 세종의 지시에 의하여 대개혁을 이룩함으로써 우수하고 독창적인 우리 고유의 화약무기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총을 처음 제조한 시기는 고려 말엽인 1377년(우왕 3)경으로, 최무선(崔茂宣)의 건의로 화약무기 연구와 제작을 맡은 화통도감(火熥都監)이 설립되면서 중국의 것을 모방하여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화약의 제조법은 최고의 비밀이었기 때문에 중국의 화약기술자로부터 많은 어려움 끝에 중요한 기술을 배워 화약제조에도 성공하였습니다.

    그 뒤 조선 초기까지 최무선과 그의 아들 해산(海山)이 대를 이어 우리나라의 화약무기를 발전시켰으나, 중국의 총을 모방하여 만든 당시의 총은 성능이 좋지 못하였습니다. 1447년(세종 29)에 이르러 세종의 지시에 의하여 대개혁을 이룩함으로써 우수하고 독창적인 우리 고유의 화약무기 체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경희고소총통(慶熙古小銃筒)은 세종의 화기(火器) 대개혁 전에 사용되었던 총으로 현재 경희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