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조선시대에 조씨(趙氏)들이 간신이 많고 뒤통수를 잘 쳤다는 말,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궁금한 점이 있어 질문드립니다.

주변 지인 중 한 분이 "조선시대에는 조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뒤통수를 잘 치고 간신(奸臣)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하시던데, 이것이 실제 역사적 사실인지 궁금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조씨 가문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광조처럼 개혁 정치로 높이 평가받는 인물도 있었고, 반대로 권력 다툼 과정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받는 인물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정 성씨 전체를 두고 "간신이 많았다"거나 "배신을 잘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가 실제로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또한 조선시대 정치사를 보면 성씨보다는 당파, 가문, 정치적 이해관계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데, 역사학적으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조씨 성을 가진 인물들 가운데 실제로 간신으로 평가받는 인물이 특별히 많았나요?

다른 성씨와 비교해 조씨 가문이 유독 배신이나 권력 암투에 많이 연루되었다는 근거가 있나요?

아니면 일부 유명 인물에 대한 인상이 확대되어 생긴 편견에 가까운 이야기인가요?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의 설명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개의 답변이 있어요!

  • 조선시대 조씨 성을 가진 인물들이 배신자가 많았다는 것은 역사적 근거가 없는 편견이라 여깁니다. 반역, 모반자들은 여러 성씨, 가문에서 있었고, 조씨 가운데는 평가가 양극단입니다.

    예를 들어 조광조는 개혁가이고, 오히려 중종반정 과정에서 발생한 훈구 간신을 위훈삭제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명종 때 남명 조식은 북인의 영수이고, 그의 제자들은 임진왜란 중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독립운동가로 조만식, 조봉암 선생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19세기 세도 정치 시기 풍양조씨 가문이 안동김씨와 세도를 부려 백성들을을 수탈한 사실이 있으며, 고부 군수 조병갑은 동학 농민 운동을 촉발시켰습니다,

    따라서 성씨로 간신을 평가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으로 판단합니다. 당파, 가문 이해관계가 조선 정치의 핵심 요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