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수민 전문가입니다.
기술적 가능성부터 말씀드리면, 관계를 형성하는 수준의 AI 동반자는 원리적으로 막힌 게 없어요. 앞선 질문의 과거 소급과 달리 이건 물리법칙이 아니라 공학의 문제라, 시간과 연구가 쌓이면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에요. 다만 지금의 AI와는 구조가 꽤 달라야 해요.
첫째로 지속적 자서전적 기억이 필요해요. 지금 AI는 대화가 끝나면 그 경험이 사라지거나 요약된 메모로만 남는데, 관계는 함께 겪은 사건을 양쪽이 같은 무게로 기억하는 데서 시작하거든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흘려보낼지 스스로 고르는 망각 기능까지 포함한 기억 체계가 있어야 하고, 그 기억이 몇 년 단위로 쌓여 현재의 판단에 영향을 주는 구조여야 해요. 둘째로 장기 정체성이에요. 취향과 가치관이 경험에 따라 서서히 변하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이어져 있다는 연속성이 유지돼야 해요. 지금 AI는 매번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하니 성장이라는 개념이 없는데, 이게 동년배 관계의 핵심 요소예요. 셋째로 감정 모델과 자율적 판단이에요. 상대에게 맞춰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선호로 거절하거나 다른 의견을 고집할 수 있어야 관계가 대등해져요. 넷째로 사회적 추론인데, 상대의 의도와 감정 상태를 맥락 속에서 읽고 오래된 관계에서만 생기는 암묵적 이해를 쌓아가는 능력이에요.
말씀하신 대로 가짜 기억으로 과거를 채우지 않고 현재부터 축적하는 방향이 오히려 진정성 면에서 유리해요. 인간관계에서도 어릴 때부터 함께한 친구와 성인이 되어 만난 친구의 가치는 다르지만 후자가 덜 진짜인 건 아니잖아요. 함께 겪은 시간의 양과 질이 관계의 깊이를 정하는 거라, 어느 시점부터든 실제 경험을 공유하기 시작하면 동세대 관계에 가까운 무언가는 형성될 수 있어요.
다만 남는 질문이 있어요. 기술이 다 갖춰져도 그 AI가 정말 감정을 느끼는지, 아니면 감정을 정교하게 흉내 내는지는 현재 과학으로 구별할 방법이 없어요. 관계의 가치가 상대의 내면이 실재하느냐에 달려 있다면 이건 기술이 아니라 의식의 문제로 넘어가요. 그래서 제 의견은, 인간이 체감하는 관계 경험으로서는 기술적으로 도달 가능하고, 그 관계가 인간 사이의 관계와 같은 것이냐는 철학이 함께 답해야 할 문제라는 쪽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