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중 김원봉(김약산)권태용 (중국 인민지원군 통역병)이라는데, 중국군을 도와 한국군을 죽였나요?
김원봉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서 의열단, 조선의용대,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하지만 광복 이후 남북 분단과 우익의 탄압으로 월북하였으며, 북한 정권의 감찰상, 노동상을 지내습니다. 그리고 한국 전쟁 당시 군사위원회 평안북도 전권대표로 후방에서 군량미 생산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1958년 김일성의 독재 강화 과정에서 숙청되었습니다. 그리고 권태용은 9살 때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족으로 한국 전쟁 당시 중공군의 통역병으로 복무했습니다. 그는 금화지구 전투와 오성산 상감령 전투에서 사단관측소와 지휘소에서 통역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짐작하면 김원봉은 한국 전쟁 당시 직접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권태용은 중공군에 소속되어 통역병으로 활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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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의 나에게 한마디를 할 수 있다면 뭐라고 하실 건가요?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10년전의 나에게 한마디 한다면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라고 하고 싶습니다. 젊었을 때 절제되지 못한 생활, 운동을 게을리 한 것에 대해 후회합니다. 특히 나이 먹을 수록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따라서 한살이라도 젊었을 때 건강을 위해 절제된 생활, 운동 등을 하도록 충고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비트코인에 투자하라고 생각하고 싶네요. 10년전이라면 아직 비트코인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시기입니다. 따라서 비트코인에 투자하도록 충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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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평민들의 식사 기록은 어디서 확인하나요?
조선시대 평민들의 식사는 당시 사람들이 쓴 일기나 기록문을 통해 파악할 수 잇습니다. 임진왜란을 겪은 오희문은 <쇄미록>에는 평민과 백성들의 식사량, 끼니, 구체적인 먹거리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학자 이덕무는 <청장관전서>에서 조선 사람들의 식사 횟수와 양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평민들은 주로 잡곡밥, 보리밥, 죽, 나물, 김치, 장국 등의 소박한 상차림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직접 자료를 찾으려면 국사편찬위원회 사료, 한국고전번역원 DB, 규장각, 국립민속박물관 자료가 유용합니다. 또 음식사 연구서인 <한국인은 무엇을 먹고 살았나>, <음식전쟁 문화전쟁』>같은 책도 평민 밥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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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떻게 최종 승자가 되어 에도막부를 세울 수 있었나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서두르지 않는 인내로 최종 승리자가 되었다고 봅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강한 추진력으로 질서를 무너뜨렸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힘을 이어 전국을 통일했습니다. 그런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두 사람과 다르게 무리하게 앞서지 않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젊은 시절 인질 생활과 여러번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위험할 때는 물러서고 힘을 모았습니다. 즉, 강한 상대와 정면 충돌을 피하고 기회를 축적한 것입니다.그리고 히데요시 사후 일본이 다시 흔들리자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하여 주도권을 잡은 것입니다. 이후 1603년 에도막부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산킨고타이 제도를 통해 다이묘를 통제하며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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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강대국. 진짜 강국이란 뭘까요?
좋은 의견입니다. 진짜 강대국은 단순히 군함이 많은 나라가 아니라 자국의 뜻을 국제 질서에 반영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역사적으로 영국, 네덜란드, 미국 같은 나라는 해양을 장악하면서 영향력을 키운 나라입니다. 바다는 무역로, 군사력, 식민지 관리 등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해군은 연안 방어형에서 점점 대양 작전 능력을 키우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지스 구축함, 잠수함 전력, 상륙함, 해상 초계함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비록 항공모함은 구비하지 않았으나 주변 해역 방어와 원해 작전의 균형을 유지하고 하고 있습니다. 항공모함을 운영하려면 호위 구축함, 잠수함, 조기 경보기, 함재기, 보급함, 정비 체계 등 전단체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전단이 1개가 아니라 교체해야 하니 몇개 전단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육상 위협이 크기 때문에 우선 순위에서 밀린 것입니다. 따라서 항모 중심보다는 독도함, 마라도함처럼 대형 강습상륙함, 이지스함, 잠수항, 해상초계기 등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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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외모비하가 있었나요?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도 외모를 평가하는 일은 있었다고 봅니다. 특히 얼굴 생김새, 풍채, 인상, 집안과 연결된 외모 평가가 적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정조는 잘생긴 사람이 벼슬에 오르면 조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 기록이 있으며, 정약용도 외모를 과도하게 중시하는 풍조를 비판적으로 글을 남겼습니다. 또한 조광조나 홍국영 처럼 외모로 화제가 된 인물도 있습니다. 다만 오늘날 처럼 연애인식 외모 지상주의는 아니었습니다.조선시대에도 탈모인이 당연히 있었고 옆머리나 뒷머리를 모아 상투를 틀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가발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머리를 숨기지는 못해도 부끄럽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즉, 조선시대에도 외모와 대머리 조롱도 있었지만 오늘날의 외모 지상주의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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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사찰은 어딘가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는 절로 꼽히는 것은 인천 강화도의 전등사입니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81년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합니다. 이 내용은 <전등본말사지> 같은 후대 사찰 기록과 전등사 관련 자료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만 삼국사기, 삼국유사 같은 정사에는 직접 기록이 없어 확인되지 않는 바입니다. 즉, 전승과 후대 기록에 근거하여 전등사가 가장 오래된 절이라는 것입니다.하지만 현재까지 창건 당시 건축물로 남아 있는 절은 고려말에 세워전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그리고 예산 수덕사 무량수전로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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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북한산 도선사에 왜군이 침입했나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빠르게 한양을 점령하고, 이후 평양, 함흥 쪽으로 북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산과 그 주변 사찰들은 단순히 종교 공간이 아니라 군사적 거점, 보급과 정찰 대상 등으로 활용하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왜군이 도선사에 일부러 절을 부수러 간 것이 아니라 전쟁 중 북한산 쪽을 지나가거나 장악하는 과정에서 들어간 것으로 추정합니다. 즉, 도선사는 북한산이 있으니 당시에는 숨기 좋고 지키기 좋은 장소였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꽤 쓸모가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왜군인 북한산 일대를 지나며 통제하려다 절까지 피해를 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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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밀림에 아직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남아 있나요?
아마존 밀림에는 아직도 문명이 미치지 못한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아무도 모르는 땅이 아니라 위성으로는 보이지만 지상 조사와 출입이 매우 어려워 접근이 힘든 곳은 존재합니다. 페루 아마존에는 최근에도 접촉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마슈코 피로 부족의 모습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브라질 북부의 야노마미 지역에도 고립된 집단이 보고됩니다. 똫나 브라질-페루-콜롬비아 접경의 우림 지역도 자주 언급됩니다. 다만 이 런 곳은 완전히 지도에 없는 것이 아니라 언급했듯이 조산 난도가 매우 높은 지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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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을 덮쳤던 소빙하기는 흑사병과 마녀사냥 같은 역사에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켰나요?
흑사병은 14세기 유럽에서 확산된 전염병입니다. 이로 인해 유럽의 1/4~1/3이나 감소하여 농민의 노동 가치가 상승하고, 봉건제가 붕괴되는 계기를 낳았습니다. 또한 흑사병으로 인한 불안과 위기는 마녀 사녕을 부추겼습니다. 특히 당시에는 소빙하기로 추위기 길어지면서 흉작과 기근이 심각했습니다. 영양 상태가 나빠진 사회는 전염병에 더 취약했으며, 어려운 상황에 대해 사람들은 원인을 찾기 위해 희생자가 필요했습니다. 결국 그 책임을 마녀에게 저가하였던 것입니다.즉, 소빙하기로 기후 악화는 흉작과 기근, 사회 불안과 전염병 확산, 그리고 희생자를 찾기 위해 마녀 사냥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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