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록의 승진판과 조정 판자가 동일한 게 맞을까요? 그리고 동일한 날 일어난 게 맞을까요? 숙종 24년 12월 26일요..
두 기록 모두 숙종 24년 12월 26일 단종 신주를 종묘에 입안 하는 의식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승진판'은 <화은집>에서 사용된 용어로 신실 천장의 장식용 판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간재만록>의 '조성판자'의 표현 역시 세조 신실 앞 천장에 장식 판자를 말하니 같은 의미로 이해됩니다. 같은날 큰 바람으로 인한 신실 판자로 피해를 입은 것을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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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는 왕세자 책봉을 보통 몇살때부터 했었나요?
고려시대의 태자 책봉은 대략 6~10세 무렵으로 추정합니다. 예종의 경우 8세, 덕종은 6세, 충목왕은 6세, 충정왕은 10세에 태자(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태자 책봉은 원자가 2~3세부터 시작하지만 관례 전후인 6~10세에 집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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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인도는 언제부터 교류하기 시작했나요?
졸은 질문입니다. 우리나라와 인도의 교류는 고대부터입니다. 인도 아유타아 왕국의 공주 허황옥이 금관가야의 수로왕의 왕비가 되었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된 설화가 있습니다. 이는 가야와 인도가 무역, 또는 교류를 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4세기 백제 침류왕 시기 남조 동진에 건너온 인도 승려 출신 마라난타가 불교를 전래했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는 여러 절을 세우고 제자를 양성하며, 불교를 전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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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유배지가 영월 우리나라왕들의일대기
단종은 조선의 6대왕으로 세종의 손자이자 문종의 유일한 적통입니다. 하지만 문종이 사망하자 12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했지만 할머니, 어머니마저 보호할 힘이 없었습니다. 특히 단종을 지키는 김종서, 황보인 등의 신권은 매우 커 왕권을 약화시켰습니다. 이에 숙부 수양대군은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이들을 제거하고 단종마저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스스로 즉위하였습니다. 결국 단종 복위 운동을 빌미로 금성대군, 사육신 등을 제거하고, 1457년 유배된 단종을 사사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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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어갈 때 혜경궁 홍씨 집안은 왜 아무것도 하지 못했나요?
정확한 지적이고, 역사적 감각입니다. 당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을 당시 세자비인 혜경궁 홍씨의 친정은 소극적으로 대처했습니다. 당시 장인인 영의정 홍봉한 등이 소극적으로 행동한 이유는 사도세자를 포기하고 세손(정조)를 지키는데 집중한 것입니다. 자칫 구명을 하다가 잘못하면 연좌제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고, 이는 세손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오히려 영빈 이씨에게 사도세자를 제거하는 청을 올려 세손을 지켰습니다. 또한 홍봉한 등 홍씨 집안 노론으로 소론과 밀접한 사도세자와 정치적으로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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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고 할 수 있는 민란이 있나요?
우리나라에서 역사을 바꿀 정도의 민란에는 신라하대 9세기에 민중 봉기입니다. 중앙 진골 귀족의 왕위쟁탈전, 지방 호족의 성장으로 이한 농민들의 이중 수탈에 저항하여 곳곳에서 농민 봉기가 있었는데, 결국 신라가 후삼국으로 분열되는 계기가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려 무신 정권 시기 무신의 수탈에 대한 대규모 민중 봉기가 있었습니다. 만적의 난, 망이 망소이의 난 등이 있었으며, 이는 무신 체제를 강화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선 시대에도 조선 후기 세도 정치로 인한 삼정의 문란으로 전국적인 임술농민 봉기가 일어났으며, 이는 조선말 개혁과 근대화의 물꼬를 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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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의 차이점에 대하여 알고 싶어요?
우선 불교는 인도, 기독교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발원하여 유럽으로 전파되어 유행했습니다.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기독교는 하나님 중심의 유일신, 불교는 무(비)신론적 입장에서 초월적인 신을 부정합니다. 인간의 문제는 기독교는 죄, 불교는 고통으로 보았습니다. 구원을 위해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은혜, 불교는 팔정도 수행로 해탈을 추구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천국에서 영생, 불교는 열반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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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당시 일본 문화에 백제가 많은 영향을 줬나요?
삼국 가운데 일본의 고대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나라는 벡제입니다. 백제는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워 근초고왕 시기 외교 관계를 맺고 사신 교환을 하였습니다. 또한 고구려,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일본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백제가 일본에 미친 영향으로 성왕 때 불교를 전파하였으며, 학문적으로 왕인, 아직기 등이 한자, 논어, 천자문 등을 전했습니다. 예술적으로 건축, 조각, 회화, 토기 등을 전파하였습니다. 일본에 전파한 백제 문화는 쇼토쿠 태자 당시 아스카 문화를 바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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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사남의 단종은 실제 어떠한 역사적 기록이 있나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실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단종은 조선의 6대 왕으로 문종 사망 이후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했으나 1453년 숙부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으로 폐위되엇고 결국 사사됩니다. 이와 같은 단종의 비사는 조선왕조실록의 <단종실록>, <세조실록> 등에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영하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만 단종이 유배지 백성들과 상화작용하거나 교감하는 설정은 상상력을 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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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형 동검과 세형동검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비파형 동검은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동검으로 고조선 문화권에 해당하는 요령, 한반도 북부 지방에서 주로 발견됩니다. 검신 아래 블록한 비파 모양으로 폭이 넓습니다. 반면 세형 동검은 철기 시대 청동검으로 좁고 길쭉한 모양으로 날카롭습니다. 한반도 일대에서만 발견되어 한국식 동검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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