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히라가나 가타카나는 어떻게 발명되었나여? 답글 바랍니다만…?
일본은 본래 한자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5~7세기경 한자의 뜻이 아니라 음을 빌려 적는 만요가나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9세기 헤이안 시대 히라가나는 헤인안 시대 만요가나로 쓰인 한자를 흘려 쓴 초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궁중 여성들이 일기와 문학작품을 기록할 때 주로 사용하여 '여자의 글'이라는 온나데라고 불렸습니다. 또한 9세기 헤이안 시대에 한자의 일부만 떼어 만든 것이 가타가나입니다. ‘加’의 일부에서 カ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주로 승려들이 한문 불경을 읽을 때 한자 옆에 발음이나 읽은 법을 표기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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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 때 공노비를 해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선은 본래 성리학적 통치 이념에 따라 양반 중심의 신분 질서였습니다. 법제적으로 양인과 천민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양반, 중인, 상민과 천민으로 구분되었습니다. 특히 천민의 대다수는 노비로 조선 경제의 상당부분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 양반 중심의 신분질서가 흔들리고, 하층민이 양반으로 신분 상승 비중이 컸습니다. 상민의 세금의 대분을 부담했으나 상민층이 축소되면서 정부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했습니다, 따라서 노비들을 상민화하여 세금을 부담하게 한 것입니다. 영조때 노비조모법을 시행하여 노비의 자식도 어머니가 양인이면 양인화하여 조세를 부담하게 한 것이며, 1801년 순조 대 공노비 해방도 같은 의도에서 시행된 것입니다. 즉, 공노비 해방은 정부의 재정 확충을 위해 노비를 상민화한 정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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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 신화는 신라 건국에 어떤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나요?
박혁거세는 신라 건국의 시조입니다. 그런데 박혁거세 신화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단순히 탄생 이야기에서 머물지 않고 왕권의 정당성과 신성성을 의미합니다. 하늘 빛과 알에서 태어났다는 자체가 박혁거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하늘과 연결하여 하늘의 뜻을 받은 존재임을 과시하는 것이며, 신성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또한 여섯 촌장이 등장하는데, 이는 여러 집단이 합의하여 하나의 국가를 만든다는 연맹체 왕국의 성립을 말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지배 질서의 정당화를 말해줍니다. 따라서 알에서 태어났다는 설정은 왕이 하늘의 선택을 받은 신성한 존재라는 점과 여섯 촌이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었다는 사실을 동시에 상징한다고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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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억은 역사 기록보다 신뢰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기억은 직접 경험에 바탕을 두었기에 장점이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에서 멀어지고, 왜곡될 우려가 큽니다. 하지만 역사 기록은 완전히 객관적이지는 않지만 시기, 장소, 작성자를 명확히하고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자와 권력자의 관점이 반영될 수 있고, 사건의 일부만 남긴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따라서 기록도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기록도 신뢰를 강호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사건이 일어난 때와 가까운 시기에 기록이 되어야 하며, 구체적인 요소(날짜, 시간, 인물, 작성 목적)가 반영되어야 합니다. 또한 진본이어야 하며, 작성 이후 내용이 임믜로 변경되면 안됩니다. 그리고 다른 요소들(문서, 유물, 고고학 자료 등)과 교차 검증을 통해 신뢰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결국 역사적 사실을 가장 잘 보존하는 방법은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되, 기록을 절대적인 진실로 믿지 않고 서로 다른 자료를 지속적으로 교차 검증하여 신뢰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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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는 북흉노와 남흉노가 존재하는데 남흉노는 정확히 어떤 존재이고 고고학으로 어떻게 나오나요?
흉노는 몽골 초원에서 오랫동안 한족 왕조를 괴롭힌 유목민족입니다. 그런데 남흉노는 별개의 새로운 민족이라기 보다는 서기 48년 흉노 제국이 내분으로 갈라지면서 후한에 복속한 흉노 세력을 말합니다.남흉노의 지배층은 흉노 왕실과 귀족이었지만 구성원과 전체가 하나의 순수한 혈통 집단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흉노 제국 자체가 여러 부족과 지역 집단을 묶은 정치적 연맹이었습니다. 남흉노 역시 여러 부족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남흉노가 후한에 복속하는 대신 변경 방어와 군사 지원을 담당하였습니다. 이후 삼국의 통제를 받으며 여러 지역에 나뉘어 배치되었고, 점차 한화되었습니다. 또한 4세기 초 남흉노 출신 유연이 전조를 세우면서 5호 16국 시대를 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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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 민족과 문명은 어떻게 알게 되었고 얼마나 지속되었을까요?
히타이트는 현재 아나톨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성장한 고대 문명입니다. 기원전 17세기경부터 기원전 12세기까지 약 500년간 존속한 국가입니다. 히타이트는 전차를 효과적으로 운용해 이집트 등과 경쟁했는데, 카데시 전투는 두 국가의 대표적인 전쟁입니다. 또한 철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사용한 문명으로 주변 문명에 철기를 전달한 국가입니다.하지만 히타이트는 성경과 이집트 기록에 이름만 남아 있어 오랫동안 실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오스만 제국에서 유적과 비문이 발견되면서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1887년 이집트 아마르나에서 히타이트와 이집트 사이의 외교문서가 발견되면서 존재가 확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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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라는 국가는 왜 이상하게 유적이 거의 안나오는건가요?
부여는 본래 현재 중국 송화강의 지류를 중심으로 성장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부여 유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은 부여가 존재하지 않았기 보다는 위치와 보존, 연구 여건이 어렵기 때문입니다.우선적으로 부여가 중국 지린성 일대 등 만주에 있어 한국 역사 연구가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점이 큽니다. 그리고 부여의 왕성이 지린시 일대의 동단산 남성자고성 등이 거론되지만 단정하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전쟁과 도시 개발, 홍수, 퇴적 등으로 유적이 훼손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며, 고구려 유적과 비슷하여 부여 유적으로 판별하기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는 부여의 존재를 보여주는 토기, 철기, 성곽 등의 자료가 일부 확인되지만 왕성, 도성 등이 명확하기 않아 접근 조차 쉽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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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우리나라 기업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기업은 무엇인가요?
현존하는 기업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업은 두산입니다. 두산은 1896년 박승직이 서울 종로에 세운 박승직 상점에서 출발합니다. 박승직상점은 무명, 면포 같은 옷감과 포목을 주로 팔았습니다. 이후 일본, 영국산 면직물과 모직물을 주로 취급햇습니다. 그리고 사업이 커지자 곡물, 소금, 방적사, 솥, 저울, 도량형기 등 생활용품으로 판매 범위를 넓혔습니다. 1915년 여성용 화장품인 '박가분'도 만들어 팔았다고 합니다. 이후 상호를 두산상회 바꾸고 사업을 확장하여 오늘날 두산그룹이 된 것입니다. 1897년 동화약품, 신한은행의 전신인 한성은행도 오래된 기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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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장은 장보고의 부하였는데, 무슨 이유로 장보고를 암살했나요?
염장은 본래 장보고의 부하였습니다. 염장은 838년 장보고가 김우징을 도와 왕위 쟁탈전에 나설때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참전해였습니다. 그러나 장보고가 자신의 딸을 왕비로 삼으려 하면서 중앙 귀족·왕실과 갈등을 빚자, 염장은 중앙정부 편에 섰습니다. 즉 조정은 장보고의 강력한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그의 옛 부하였던 염장을 이용한 것입니다. 염장은 장보고에게 다시 투항하는 것처럼 속여 접근했고, 장보고가 마련한 연회에서 그를 암살했습니다.염장이 장보고를 배신한 것은 개인적인 원한보다는 신라 왕실과 중앙 귀족의 포섭때문이라 해석됩니다. 그 대가로 관직을 받은 인물로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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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어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이고, 전쟁의 결과는 어떻게 되나요?
보어전쟁은 영국과 네덜란드계 이주민인 보어인 사이에 벌어진 두차례 전쟁입니다. 보어인들은 네덜란드계 정착민의 후손으로 영국의 지배를 피해 내륙으로 이동해 트란스발 공화국과 오라네 자유국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영국은 케이프를 중심으로 식민지를 확대하려 하여 갈등하였습니다. 특히 트란스발에서 금광, 오라네 지역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면서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제1차 전쟁에서는 보어인이 승리했지만, 제2차 전쟁(1899~1902)에서는 영국이 승리했습니다. 그 결과 트란스발과 오라녜 자유국은 영국에 병합되었고, 훗날 남아프리카 연방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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