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거발한이 세웠다는 배달국의 역사적 의의와 실질적 진위성은 어떻게 되나?
배달국은 전설에 의해면 거발한 혹은 커발환 환웅이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환국으로 내려와 신사에 세웠다는 국가입니다. 배달국은 인류 사회 초기에 홍익인간이라는 이념 아래 다양한 제도, 문화, 천신숭배 등을 펼쳤다고 합니다.환웅은 하늘의 뜻을 받아 민족의 시조로 내려오고, 그 뒤를 이어 단군 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것으로 이어진다고 하네요, 따라서 배달국은 고조선 이전의 상징적 시조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배달국 및 거발한 환웅의 존재는 한국 주류 역사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환단고기, 규원사화, 태백일사 등 일부 민간 사서 등에 설화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Q. 성경이 가장 많이 팔리고, 아직까지 인기 많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성경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입니다. 성경은 5~7억부 이상 팔렸습니다. 이는 기독교가 전세계적인 종교로서 인류 역사를 같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서양 문명의 근간이자 수많은 문학, 윤리의 기초로 작용해 왔으며 종교적 배경을 뛰어넘는 문화 전반에 깊이 스며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최초로 인쇄된 책이 성경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다수의 국가와 가정에서 필독서 혹은 전통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불확실성과 위기가 높아질때마다 성경 판매가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혼란 상황에 사람들이 영적인 안정과 위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Q. 부리야트족이 현존하는 부여, 부여족의 현존후손 이라는 역사적 근거는?
부리야트라는 종족이 부여, 불여, 불루, 비류 등과 음운과 의미적으로 관련 있다는 주장이 일부 연구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리야트 일부 집단이 고려, 고리, 고구려의 어원이라는 설, 곰을 토템으로 하는 전통에서 고구려, 부여와 민속적으로 연관성이 있다는 주장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문헌상으로도 등에 부여-고구려-몽골-거란 언어가 같다는 기록이 등장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코리-부리야트족'이 남하해 부여, 고구려, 백제 등 맥족 국가의 기원이 되었다는 민족 이동설을 제기하도 했습니다. 또한 두상, 얼굴, DNA 일부 계통이 부리야트인을 포함한 바이칼 일대 시베리아 원주민 몽골계, 한국인이 서로 가깝다는 것으로 보고된 연구도 있습니다.하지만 부리야트족과 부여족의 관련성은 민속, 언어, 문화적 유사상과 주장 수준에서 논이되고 있지만 역사적, 생물학적 현존 후손이라는 근거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Q. 조선시대의 지금과 같은 도서관 사서 인물
조선시대 도서관 역할을 한 것은 집현전, 홍문관, 규장각 등이 있습니다. 이들 기관은 국가의 중요 문헌과 서적을 보관, 정리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성균관, 서원, 향교 등 교육 기관도 책을 보관하고 열람하였습니다.그리고 사서 역할을 한 직책으로는 집현전의 전적, 존경각의 전적과 사예, 학정, 그리고 규장각에는 검서관이 있습니다.
Q. 왜 중국과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고대/중세에 결투 문화가 없나요?
우리나라에서 결투문화가 자리잡지 못한 이유는 삼국 시대 이후 대체로 중앙집권적 왕권과 공식 관료제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신분제, 관료제가 엄격했고, 분쟁이나 논쟁은 공식적으로 율령에 의해 사법, 행정적으로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즉 공권력 외에 명예, 재산 문제를 사적인 결투에 의해 해결하는 것은 위법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려, 조선으로 갈수록 유교적 질서가 강화되어 개인적 명예나 무역 과시가 공동체의 화합과 예, 질서에 어긋난다고 여겼습니다.
Q. 조자룡은 어떻게 유비를 따르게 되었나요?
조자룡은 삼국지에서 촉한의 충직한 장수입니다. 유비와의 인연은 관우, 장비와 달리 조금 복잡합니다. 조자룡은 기주 상신 출신으로 처음에는 하북의 유력자인 공손찬의 부하였습니다. 당시 유비도 공손찬 휘하에서 몸을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조자룡은 공손찬과 원소 전추 중에서 유비와 함께 싸우며 서로 알게되었으며, 유비의 인품에 반했습니다.두 사람은 이 시기부터 오랜 유대와 신뢰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후 조자룡은 형의 장례를 이유로 공손찬을 떠나 일시 귀향했으며, 이때 유비도 잠시 이별합니다. 조자룡이 원소를 잠시 거쳤다가 다시 유비를 찾아가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휘하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Q. 과거 하회탈같은 탈을 썼던 이유는 뭘까요?
과거 우리나라에서 하회탈과 같은 가면을 썼던 이유는 종교적, 주술적이고 신앙적 의식과 관련됩니다. 탈을 써서 사악한 영이나 잡귀를 쫒는 의식과 축제에서 사용하였으며, 장례식이나 마을 굿, 설날 행사 등에서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상징으로 쓰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신이나 죽은 사람, 동물, 요괴 등 비인간적 존재로 가장해서 주술적 힘을 얻거나 신성을 표시합니다. 그리고 사냥 전후 농경 사회의 의례에서 동물 모습 탈을 써 풍요를 기원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탈의 기능은 점차 탈춤, 공연과 문화 예술로 승화되었습니다. 하회탈, 각시탈, 사자탈 등 다양한 민속 예술로 발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