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충흔 전문가입니다.
봄철 기온이 갑자기 올라가도 모든 나무가 동시에 꽃을 피우지 않는 이유는, 수종마다 개화를 결정하는 저온 요구도, 광주기, 그리고 체내 수분 상태에 대한 생리적 역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먼저, 식물은 가을이 되면 추위로부터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성장을 멈추는 내부 휴면 상태에 들어갑니다. 이 휴면을 깨고 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 이상의 축적된 추위를 겪어야 합니다. 저온 요구도가 다 채워진 후에야 비로소 따뜻한 기온에 반응해 눈을 틔울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따라서 겨울철 저온 경험량이 부족한 나무는 봄에 갑자기 날씨가 풀려도 꽃눈을 터뜨리지 못합니다.
두 번째 원인은 연중 변동이 없는 가장 정확한 시간 신호인 광주기에 대한 반응 때문입니다. 기온은 해마다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식물은 잎과 꽃눈에 존재하는 피토크롬 수용체를 통해 낮과 밤의 길이를 정밀하게 측정합니다. 정해진 일조시간 조건이 충족되어야 비로소 잎에서 개화 호르몬이 합성되고, 이것이 줄기 끝으로 이동하여 꽃눈을 형성합니다. 광주기 제어가 엄격한 수종은 초봄에 이상고온이 찾아오더라도 낮 길이가 원하는 수준만큼 길어지지 않으면 개화 유전자를 작동시키지 않고 대기합니다.
세 번째 원인은 체내 수분 상태와 물리적 수송 체계의 회복 속도입니다. 꽃눈이 부풀어 오르고 꽃잎 세포가 급격히 확장되려면 세포 내 수압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합니다. 겨울 동안 얼어 있던 토양과 나무 줄기 내부의 도관이 녹고, 도관 내 공기 방울이 생기는 기봉 현상이 회복되어 뿌리에서 꽃눈까지 수분이 원활하게 공급되어야 비로소 개화가 가능해집니다. 만약 초봄 가뭄으로 토양 수분이 부족하면 식물은 다시 ABA 호르몬을 분비해 수분 손실을 막고 세포 확장을 억제하므로, 기온이 높아도 꽃을 피우지 않거나 꽃눈을 떨어뜨리는 전략을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