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사화 갑진사화로 훈구파 사림파 가리지 않고 척살했던 연산군은 폭정을 일삼았습니다. 이 시기에 연산군의 사치는 극에 달했습니다. 이는 연산군이 즐기던 사냥과 연회에 쓰이는 비용과 총애하는 궁인들이나 기생들에게 후한 상을 내리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연산군은 사냥에 탐닉하여 아차산 정토산 창릉 경릉 일대에 새로운 사냥터를 개발하기 위해 민가를 철거하여 백성들의 원성을 사거나 사냥에 필요한 매를 기르는 일을 관리하는 응방의 인원과 규모를 획대하고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